(제 52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3

(1)

 

풍신수길(도요또미 히데요시)은 본시 막된자였다. 어릴 때부터 누가 애비, 에민지 모르고 자라났다.

하지만 그의 머리통에는 흉악한 꾀가 가득차있어서 어떤 때에는 상대에게 곰살궂게 놀기도 하고 총명해지기도 하였다. 밥을 빌어먹는 나날에 눈치가 여물어지고 밤눈이 밝아 어둠속을 환히 내다보는 고양이처럼 사람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교활한 눈알이 박혀들었다.

당시 일본봉건령주들은 국내에서 실제적인 최고통치자로 행세하던 아시까가막부의 통치에서 벗어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전쟁을 벌리고있었다. 이른바 《전국시대》라는 때였다.

도요또미는 자기의 앞날을 요리조리 타산해보고 서부일본에서 큰 세력을 가지고있는 대봉건령주 오다 노부나가의 노복으로 들어갔다. 그는 주인의 눈에 들도록 온갖 꾀를 다 써서 몇달만에 수많은 노복들의 우두머리가 되였다가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병의 대장으로 승탁되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도요또미를 깊이 신임하였다. 그럴수록 도요또미는 자기의 상전을 극진히 섬겼다. 몇해안팎에 오다 노부나가의 대리인격이 되여 대봉건령주의 군사를 이끌고 크고작은 싸움터에 나가군 하였다.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이기고 돌아와 빼앗은 령주들의 땅과 노비를 오다 노부나가에게 바쳤다. 일본땅 절반이상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복종되고 그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승세하였다. 도요또미는 싸움터에 나갈 때마다 오다 노부나가의 의장기구와 령기를 앞세우고나갔다. 다른 령주의 사졸들은 오다 노부나가의 령기와 의장기구만 보아도 뺑소니를 치거나 자진하여 오다 노부나가의 병졸로 의거하여왔다. 오다 노부나가는 왜왕을 대신하는 실제적인 통치자인 관백으로 자칭하게끔 되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도요또미가 마음속에 켕기였다. 자기의 10만 군졸을 통솔하고있는 도요또미가 딴꿈을 꾸면 위험한것이다. 그는 도요또미를 슬그머니 없애치울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제가 먼저 죽었던것이다.

도요또미는 자기가 오다 노부나가가 지녔던 지위를 계승한다고 공포하였다. 그후 그는 전 일본땅을 통합하고 일본의 실제적권력자 관백의 자리에 정식으로 올랐다.

도요또미가 봉건령주들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는데서 직접 피흘려싸운것은 사무라이(무사)들이였다. 그러나 전국을 통일한 뒤에는 도요또미가 그들에게 약속한대로 만족할만한 정도의 땅과 재부를 나누어줄수 없었다. 사무라이들은 도요또미정권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되였다.

봉건령주들의 불만도 팥죽끓듯 하였다. 도요또미한테 격파당한 그들은 많은 토지와 리권을 빼앗기고 그에게 복종하게 된것을 통분히 여기였다.

도요또미는 사무라이들의 불만, 봉건령주들의 불만, 인민들의 하나같은 불만을 무마시켜야 자기의 정권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러자면 그들의 치부욕을 충족시켜줄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조선과 명나라를 침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도요또미는 조선침략준비를 다그치는 한편 침략구실을 찾기 위하여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도발하여왔는데 그중에 하나가 우리 나라와 명나라사이에 리간을 붙이는것이였다.

조헌의 상소문에 왜놈들의 흉계를 명나라에 알리자고 한것은 매우 긴요하고 중대한 제기였다. 교활무쌍한 도요또미가 제놈들이 한번 뛰여넘어 명나라 400여개 주를 집어삼키는데 조선이 길을 빌려주고 군사를 동원하여 저들을 돕지 않으면 용서치 않겠다고 위협공갈한것은 다 음흉한 잔꾀가 들어있는것이다.

그것은 우리 나라와 명나라사이에 리간을 시키고 어부지리를 얻자는것이였다. 도요또미는 이러한 효과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해 일본에 드나드는 명나라 장사군들을 부추겨 《조선이 일본국에 길을 빌려주어 명나라를 치게 한다.》, 《일본관백의 위협에 항복한 조선은 일본과 합세하여 명나라를 치기로 공약하였다.》, 《조선에서는 이미 굴복하여 300명이 와서 길을 인도할 배를 한창 만들고있다.》라는 소문을 명나라의 거리와 마을에 퍼뜨리게 하였다. 또 명나라의 지방관청과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명나라지경의 군영에 은닉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으며 명나라조정에도 비밀리에 알리도록 남을 속여넘기려는 요사스런 꾀를 쓰면서 뢰물도 주었다.

도요또미는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드나드는 중 겐소의 간사스런 책략을 받아들여서 우리 나라 백성들의 민심을 돌려놓도록 모략을 꾸미였다.

이리하여 쯔시마의 장사군들과 밀수업자들, 조선말을 아는자들을 조선사람으로 변장시켜 비밀리에 각 도로 보냈다.

조헌은 왜놈들의 이런 간악한 흉심을 꿰뚫어보고 백성들이 나라의 근본이므로 민심을 잃는자 천하를 잃는다는것을 여러번 올린 상소에 매번 제의하였었고 옥천원 구만석에게도 충청도관찰사인 윤선각에게도 민심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충고하였다.

그러나 윤선각은 조헌의 간곡한 당부를 아이들의 코방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아직도 누구를 가르치려는 버릇은 떼지 못하였구나. 그만큼 욕을 당하였으면 정신을 차릴것이지. 사람이 왜 그리 어리석은지 모르겠군.》하고 여전히 가을에도 성쌓기에 백성들을 깡그리 내몰았다.

그리고 옥천고을원에게 특별히 지시를 내려서 조헌의 집에서도 성쌓는데 나가도록 하였다.

조헌의 편지에 대한 회답을 이렇게 한것이다.

조헌은 나날이 기울어져가는 안해의 병세와 나라근심으로 하루하루 해를 지우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느날 집에 찾아온 고을 병방아전을 보게 되였다. 아전은 찾아온 사유를 말하기 어려워 우물쭈물하였다.

《저, 말씀올리기는 황송하오나… 래일부터 이 집의 종이나 하인이든 아무 사람이라도 한명 성쌓기에 나와달라는 분부오이다.》

조헌은 혹 윤선각에게 보냈던 편지의 회신을 가지고오지 않았을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아전을 바라보았는데 그와는 정반대로 성쌓기에 나오란다. 그는 근엄한 눈길로 아전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내 너의 사또에게 농번기철에는 성을 쌓거나 갖가지 부역도 그만두고 농한기에 쌓자고 그만큼 일렀는데 아직도 성쌓기라더냐?》

《그건 소인이 모르오이다. 그만 돌아가겠나이다.》

아전을 돌려보낸 조헌은 생각이 번거로왔다. 이해에도 농사를 이미 망쳐놓았는데 농사를 잘 짓지 못하여 굶주리는 백성들이 성을 쌓으면 얼마나 잘 쌓으랴. 어찌 제집 울타리처럼 지성껏 쌓으랴. 제집을 지키듯이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이 없이야 성을 철옹성처럼 쌓아올릴수 있으랴. 적들이 백번천번 달려들어도 깨뜨릴수 없는 성은 백성들의 인심이 하나하나의 성돌이 되여 이루어지는것인데 윤선각이 왜 알려고 하지 않느냐. 아니, 윤선각이 왜 이것을 모르겠는가. 알고도 목전의 부귀영화에 눈이 어두워 임금께 잘 보이려는것이다. 성쌓기실적을 어느 도, 어느 관찰사보다 앞세워 높은 벼슬품계를 따보려는 야심이 가득차서 백성이야 굶주리든 나라야 어찌되든 상관할바가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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