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4
(2)
마님이 위독하다면 모두 이렇게 무술을 익히고있을 경황이 없을것이기때문이였다.
《가만, 게 누구시오?》
조헌이 대문간을 향해 나직이 소리쳤다. 완기네들이 일제히 대문간으로 눈길을 보내였다.
덕보는 그때에야 반갑게 《덕보오이다.》 하며 마당 한가운데로 나와 조헌이 앞에 엎어지듯 무릎을 꿇었다.
《이게 누구냐?! 덕보로구나!》
조헌이 얼굴 가득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덕보를 일으켜세웠다.
《마님께서 위독히 앓고계신다하온데 지금은 어떠하오이까?》
지극한 념려가 어린 덕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너무 걱정말게. 근간에는 숨결도 고르로와지고 열독도 내렸네. 지금은 약을 들고 잠들었으니 깨나시거든 뵙게.》
삼녀는 《마님께서 깨여나시면 쇤네와 함께 들어가 뵈오이다.》 하고 랑군님이 반가와 방긋이 웃었다.
아침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덕보는 품속에 지니고온 한통의 편지를 꺼내여 조헌에게 드리였다.
《신각어르신님의 편지옵나이다.》
《수고했느니라, 그분께선 무고하시냐?》
조헌이 편지를 반갑게 받아들었다.
《예, 신각어르신은 무고하시나이다. 그분은 나리님이 내신 상소가 나라와 백성들을 구원할 글이라고 하시면서 크게 감복되였다 하셨소이다.》
조헌은 신각이 보내온 편지를 완기, 해동이, 삼녀 그리고 덕보앞에서 소리내여 읽었다.
《…공이 백면서생으로 이번에 다시 간신무리들을 처단하고 왜나라사신놈들을 목베야 한다고 한것은 누구나 할수 없는 대장거이고 나라와 백성을 위한 시행세칙처럼 뚜렷하여 온 나라를 크게 뒤흔들어놓았소이다.
…위급한 안해를 돌보는 침상앞에서 상소문을 쓴것은 안해의 위급한 형세보다 나라의 위급한 형세를 더 근심하는 충의지심이 아니고서는 행할수 없는 일이오이다.》 신각은 이렇게 조헌의 충의지심을 높이 일러주고 계속하여 선견지명이 있는 선비들과 애국충신들은 공을 사모하오니 임금이 아직 공의 제의보다 간신무리들의 말에 치우쳐있다 해도 락심말고 청렴강직함을 잃지 말라고 고무하였다.
신각은 자기도 조헌의 상소문을 지지하여 글을 올리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감에 시 한편을 보내주었다.
조헌에게 주는 시
땅속에 묻혀도 옥은 옥이듯이
초야에 묻혔어도 조헌은 조헌일다
아하야, 그대 옥천땅 조공이여
그대 충의 금석에 새겨져
천고에 길이 전해지리라
조헌은 아니 받아야 할것을 받은것처럼 너무나 송구해 어쩔줄 몰라하였다.
덕보는 사방을 경계하듯 주위를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추어가지고 조헌에게 가만히 여쭈었다.
《나리님께서 래일이나 모레에는 어떤 삿갓중 하나를 만나게 될것이오이다. 제가 그 삿갓중을 객점에서 만났는데 나리님이 어디에서 사시느냐, 나리님을 한번 만나보는것이 소원이라고 하였소이다. 헌데 그 삿갓중이 수상하오이다. 그 삿갓중이 반드시 올것이니 이리이리하면 어떨가 하오이다.》 하고 누가 들을가싶게 귀속말로 여쭈었다.
완기와 해동이 그리고 삼녀는 낯빛이 긴장하여 머리를 끄덕이고 조헌이도 《그래? 보자.》하고 승낙하였다.
아니나다를가 다음날 저녁에 그 삿갓중이 찾아왔다.
연지, 분으로 곱게 화장한 삼녀가 나아가 스님은 무슨 일로 오셨는가고 공손히 물었다.
《소승은 보은사로 가는길인데 날이 저물어 하루밤 쉬고갈 집을 찾는중이오이다. 나무아미타불-》
중은 두손을 턱가까이 올리고 합장하였다.
《아이구나, 스님에게 미안하오만 오늘은 안되겠나이다. 안방에는 나리님 한분밖에 안계시고 사랑방에는 이 소녀가 홀로 지키기에 스님이 주무실 방이 없소이다.》
삼녀는 방실 웃으며 부끄러운 태를 지어보였다. 다 이미 약속된 말이고 행동이였다.
《소송은 헛간도 좋고 처마밑도 좋으니 밤이슬만 맞지 않으면 아무데서도 되옵니다.》
삿갓중이 고운 삼녀의 자태를 엿보고 또 고개를 숙이고 합장하였다.
《아이고, 이런 변 보았나. 이 집이 이렇게 괴괴하도록 사람이 없는데 스님이 녀자 홀로 있는 집처마아래서 자다가 어떤 일을 행할지 알수 없고 무사히 지냈다 해도 소문이 나기마련이오니 얼른 다른 집을 찾으시오이다.》
삼녀는 또 수집게 웃으며 대문을 닫는척 해보였다.
《부처님께 맹세하오만 지금껏 녀자를 엄금하는 불가의 계률을 지켜온 소승이오니 별다른 일은 있을래야 있을수 없소이다. 제발 하루밤 묵어가게 허락해주소이다.》하고 중이 빙긋이 웃는데 음심이 내배인 눈길이 벌써 삼녀의 봉긋한 가슴을 더듬는다.
《그렇다면 안심이 되는데… 어쩔가… 참,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시오이까?》
《소승은 청주성밖 안심사의 주지오이다.》
《저녁밥은 어찌하시려는지…》
《주면 좋고 안주어도 좋소이다.》
중은 (옳지, 이년이 색에 굶주렸는가보다. 꼬리치는것을 보니. 오늘밤엔 너 좋고 나 좋게 놀아볼것같구나.)하고 생각했는지 고양이눈깔처럼 동그란 눈이 열기가 올라 반짝거리였다.
이리하여 녀자가 홀로 지킨다는 방에 들어간 중은 삶은 통닭과 연연한 록두나물, 파랗게 색이 그대로 있는 햇고사리가 놓여있는 둥글상앞에 나앉게 되였다.
《어, 이런 음식을 어느 사이에…》
중은 너무 좋아서 머리에 썼던 삿갓을 벗어서 옆에 놓았다. 빡빡깎은 머리가 하얗게 드러났다. 덕보의 말대로 해빛 한점 보지 못한 머리다. 삼녀는 이놈이 중으로 가장한 놈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스님은 먹을 복이 있는가보오이다. 자, 좋은 술도 있사오이다.》
삼녀가 커다란 사발에 술을 붓자 중은 고맙다고 거듭거듭 사례하며 마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