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상편

대궐주추돌을 피로 물들이다

제 3 장

또다시 올린 상소문

5

(2)

 

옥천군사들은 이미 형장을 되게 맞아서 피에 젖은 옷들을 입고있었다.

《너희놈들이 어찌하여 왜놈자객놈을 압송하다가 죽이였느냐?》

윤선각이 마른 하늘에 벼락치듯이 을러메였다. 형틀에 매인 군사들은 머리를 들 힘조차 없어서 간신히 대답하였다.

《그놈이 스스로 강물에 뛰여들었소이다.》

《이놈들 보아라? 여봐라, 저놈들을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에잇, 알아들었소이다.》

형리들이 첫 형틀에 묶인 사람을 넙적한 버드나무곤장으로 《하나요, 둘이요.》 하고 떡치듯 하였다. 곤장 열대안팎에 첫 사람은 의식을 잃었다. 다음 사람도 그렇게 되였다. 고을에서 맞은 형장우에 감영의 지독한 형장이 더해지니 견디여내지 못하였다. 윤선각은 세번째 군사에게도 형장을 혹독히 쳤다. 그 군사는 마지막힘을 다 모아 웨쳤다.

《이놈들아, 네놈들은 왜놈들보다 더 악독한 놈들이로구나.》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윤선각은 당황하였다. 군사가 죽은것도 그렇거니와 그가 죽으면서 소리친것이 더욱 불안케 하였다. 소문이 안날리 없는것이다. 조헌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옥천의 장계를 뒤집어놓으려고 죄없는 군사를 형장을 쳐서 죽인 사실을 그가 어찌 모르겠는가. 죽은 군사들의 부모처자가 옥천고을 구만석에게, 관찰사 윤선각에게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남편을 살려내라 곡성을 터뜨릴것이고 조헌을 찾아가 이를 어쩌면 좋겠느냐고 설분을 쏟아낼것이다.

다음날 비장 하교남은 윤선각에게 아무 일도 없은듯 간사한 웃음을 띄우고 귀뜀하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옵시오. 관찰사님께서 큰일을 다루시다가 실수하여 사람을 죽일수도 있소이다. 또 죽은 군사가 이미 옥천에서 반주검이 되여 올라왔으니 죽은 장소가 바뀌인것에 지나지 않소이다. 이 사실을 소신이 보증하리다.》

윤선각은 물에 빠진자가 짚검불이라도 잡는 격으로 하교남의 말에 위안은 되였으나 불안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허나 백성들이 퍼뜨리는 소문은 무엇으로 막겠느냐.》

《소문같은것은 소낙비가 한창 퍼붓다가 뚝 그치는것처럼 이내 잦아들것이오이다. 그런 념려는 할것 없지만 긴한것은 조헌의 입을 막는것이오이다.》

《어떻게?》

《조헌에게 편지를 보내서 그를 칭찬하오이다. 왜놈들이 조헌을 모살하려고 한것은 그자체가 벌써 조헌이 애국충신이라는것을 보여준다고 하옵고 나라에 공을 세운 조헌에게 충청도관찰사의 명의로 상을 내린다는 뜻으로 례물을 내려보내면 만사무사하리다.》

윤선각은 그도 그럴듯하여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건 그렇다치고 장계는 올려야 할것이 아니냐.》

《장계는 한동안 깔아두고 기회를 보다가 적당히 장계내용을 좀 돌려놓아서…》

《응, 그리하자.》

윤선각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듯 후유- 긴숨을 내쉬였다.

며칠이 지나서 구만석은 관가의 아전들을 거느리고 조헌의 집을 찾아왔다. 그들의 뒤에는 무엇인가 싣고오는 수레가 뒤따랐다.

홀로 집을 지키던 할멈은 고을원을 보자 엎드려 절을 하고 나리님은 젊은이들과 함께 옥수동에 갔다고 아뢰였다. 조헌은 옥수동가재골에 야장간을 한창 짓고있었던것이다.

《어험, 너의 주인이 돌아오면 내가 왔다가 돌아갔다고 하여라. 그리고 관찰사께서 상으로 내려보내는 쌀 다섯섬과 콩 다섯섬을 가져왔다고 하고 아울러 관찰사께서 직접 쓰신 편지를 전해주어라.》

할멈은 《황송하오이다.》하고 파뿌리처럼 하얗게 센 머리를 들지 못하고 편지를 받았다.

저물녘에 집에 온 조헌은 대문간에 그득히 쌓여있는 쌀섬, 콩섬을 보고 이게 웬것이냐고 할멈에게 물었다. 할멈은 고을사또님이 찾아왔던 자초지종을 말하고 관찰사의 편지를 내주었다.

조헌은 윤선각의 편지를 보고 한동안 말없이 뜨락을 거니였다.

완기, 해동이, 덕보는 쌀섬, 콩섬을 바라보며 반가와하였다.

이번에 왜놈자객을 잡아낸 공으로 관찰사가 상을 내렸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누구보다도 반가와하는 사람은 삼녀였다. 넉넉치 못한 식량을 가지고 때식을 끓여왔는데 이제는 햇곡이 날 때까지 밥을 무둑무둑 담아 식구들에게 드릴수 있게 되였다.

조헌은 윤선각이 왜 그리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편지를 썼는지, 왜 많은 식량까지 상으로 내려보냈는지 몰라하였다. 왜놈들의 흉계를 알아낸것은 나라의 방비대책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누구에게나 부딪치면 다 그렇게 할 일이 아니냐. 자기를 죽이려던 왜놈자객을 제손으로 붙잡은것은 너무도 응당한것이다.

조헌은 윤선각의 편지에 나라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긴급히 대처할수 있도록 임금께 긴급장계를 띄웠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는것이 불만스러웠다. 상을 내리는것보다 긴요한것은 왜놈들의 흉계를 조정에 알리는것이다. 그는 아무리 해도 윤선각이 리해되지 않았다.

《나는 이 식량에 손을 대지 못하겠노라. 고을에서 왜놈자객을 압송도중에 고의로 죽이지 않았느냐고 압송군사들을 반주검이 되도록 매를 치고 올려보냈는데 감영에서도 형장을 치지 않았느냐. 어쩐지 그들이 피흘린 값을 우리가 먹는것같아서 께름직하구나.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냐?》

《우리는 그걸 미처 생각지 못하였소이다. 그러면 저 쌀과 콩을 관가에 돌려보내면 어떠하오리까.》

완기가 진중히 말하자 해동이와 덕보도 그리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러면 깨끗하겠지만 고을과 감영에서 우리를 이상히 여길것이다. 차라리 야장간을 짓는데 팔을 걷고나와 일하는 장공인들에게 나누어주면 좋겠노라. 앞으로 의병을 무으면 군량미로 보탤수도 있지 않겠느냐.》

《네, 그참 좋은 생각이옵니다.》

완기네들이 이같이 말하면서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덕보가 한성으로 떠나는 날이 왔다. 그가 옥천에 신각의 편지를 안고온지도 벌써 열흘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는 이번에 큰 일을 하였다. 그가 아니였다면 중으로 변복한 왜놈자객을 어떻게 잡아낼수 있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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