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2
(1)
무명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무명등거리 하나만을 입고서 뒤주짝만한 풀무를 밀고당기는 해동이 얼굴에는 줄땀이 흘러내리였다.
쇠를 달구어내는 풍로에서는 시퍼런 불길이 일어섰다가 잦았다 하면서 연해연방 춤추듯하는데 해동이 몸도 그와 같이 풀무채를 밀며 앞으로 숙였다가 뒤로 당기면서 몸을 솟구어올리며 풀무타령을 구슬프게 뽑아냈다.
미세 당기세 풀무야 풀무야
불길이 너훌너훌 춤을 추누나
한번 밀면 장칼이 구워지고
한번 당기면 장창이 나오누나
《그참, 그 녀석 타령이 정말 애달프웨.》
모루우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긴칼을 올려놓고 쌍메질군의 메아래 잽싸게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는 늙은 장공인이 코멘소리로 하는 말이다. 쌍메질군들도 두눈을 슴벅이며 드세게 메질을 하였다.
해동이의 타령이 저도 모르게 구슬피 흘러나오는것은 지난 2월에 세상을 떠난 마님생각에 젖어있었기때문이였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가 나란히 묻혀있는 묘곁에 풀막을 짓고 할머니와 함께 불쌍히 살아가던 어린 해동이 자기를 데려다가 이날이때까지 제 자식처럼 키워준 마님을 이제부터는 자기가 친부모를 모시듯 하리라고 하였건만 그 지성을 다할수 없게 되여 슬픔을 이겨낼수 없었던것이다.
조헌은 완기와 함께 야장간옆에 지어놓은 창고에서 벼려놓은 창날을 창대에 맞추고있었다. 그는 해동이의 풀무타령에 마음이 비감해졌다.
그는 야장간을 차려놓는데 써야 한다고 안해가 끝내 먹으려 하지 않던 인삼을 팔아서 모루와 메를 장만하는데 보태였다. 그 어느것을 보아도 거기에는 안해의 갸륵한 마음이 어려있어서 가슴을 저미는 아픔을 자아냈다.
어질고 착하였으며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마음씨를 지니고 나라를 위해 한생토록 혼신을 다해가는 남편을 도와 32년동안이나 생사를 함께 하면서 가난한 살림에 고생하다가 돌아갔다. 남편의 지팽이가 되여주겠다던 안해, 그대신 남편은 나라의 지팽이가 되여달라던 안해, 이 부탁은 조헌이 슬픔을 눌러딛고 일떠서는 힘이 되였다.
조헌은 량반선비들의 집들에서 하는 옛 규례대로 한달이 지나서 안해의 장례를 치르려다가 하루를 열흘로 쳐서 3일장으로 간략하여 장례식을 지냈다.
슬픔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같았지만 그렇다고 그 괴로움과 고통속에 잠겨있을 때가 아니였다. 왜놈들이 언제 이 나라에 달려들지 모르는 위태로운 날과 날이 하루하루 흘러가고있었던것이다.
그는 그날밤 안해의 령위앞에 초불을 밝히고 술을 부었다.
(부인, 미안하오. 부인과 너무 서둘러 영결하였소. 거상기간도 없애려고 하오. 다 왜놈탓이요. 호시탐탐 우리 나라를 노리는 간악한 왜놈들때문이요. 부디… 용서해주오.)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마치 살아있는 안해에게 하듯이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부인이 병마에 시달리면서 나에게 한 말이 이제는 유언으로 남았구려. 옥에 갇혀있는 김여물목사가 놓여나오도록 형조판서대감에게 편지를 쓰면 어떨가 하던 부인의 말이 유언으로 될줄을 어찌 알았겠소, 내 곧 그 편지를 쓰겠소.)
그는 안해의 령위앞에서 붓을 들었다. 왜적이 쳐들어올 기미가 불보듯 명명백백히 드러나서 나라의 방위를 걱정하며 자나깨나 몸부림치는 남편을 늘 보아온 안해였기에 남편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싶어서 한생의 마지막 당부를 유언으로 남겼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눈물이 비오듯하였다.
《형조판서 리중에게
… 공산에서 만난지도 어느덧 10년세월이 흘렀습니다. … 그리운 회포를 금할길 없습니다.
이 조헌은 집안에 앙화가 미쳐 안해가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32년동안 가난한 살림에 고생을 함께 하다가… 떠나보내고보니 정상은 외롭고 비통하여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슬픔보다 나라에 닥쳐올 슬픔이 더 클것이기에 안해의 령위앞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왜가 대마도에 군사를 집결시킨것만큼 우리 나라로 향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켜낼만한 용맹한 장수로는 꼽아보아야 두서넛에 불과합니다.
사면으로 적과 맞다들게 될 그 자리에 누구를 시켜 막아내겠습니까.
김의주(김여물)로 말하면 활쏘고 말달리는 재주가 오늘날 둘도 없는 거벽(학식이나 재주가 뛰여난 사람)입니다. 그가 임금과 사냥길을 따라달리고 열심히 호종한것은 평시에 충의지심이 있었기때문입니다.
강포한 적이 옆에서 우리를 엿보고있는데 장수가 옥에 갇혀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공이 임금앞에 특별히 나서서 그가 석방되도록 말씀드려주십시오. 그리하여 그가 령남바다가를 지켜낼수 있게 한다면 활 하나로 적의 무리를 쏘아눕혀 넋을 잃게 만들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남쪽바다가의 소식을 듣자니 왜적의 형세가 이전의 경오(1510)년이나 을묘(1555)년 좀도적과는 대비할바가 아니라고 봅니다.
무기를 잡고 나라를 보위하는 일을 지휘하는것은 누구나가 다 할수 없습니다. 시골에 묻혀있는 사람으로서 자나깨나 남모르는 심각한 근심을 가실 날이 없습니다.
형조판서라는 직분이 임금과 가까운 직책인것만큼 국가장래의 원대한 대책을 제때에 고해올리기를 바랍니다. 》
글자 한자한자가 눈물에 젖고 글줄 한줄한줄이 눈물에 젖는 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