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2

(3)

 

완기와 해동이는 조헌이 어디로 가든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였다. 왜놈자객사건이 있은 뒤에는 아버님의 신변이 걱정스러웠기때문이다. 그도 그렇지만 량반이 출입할 때에는 하인이 동반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량반의 체모를 잃고 막사람처럼 보이기 쉬웠다. 어찌 우리 나리님을 그렇게 모시겠는가. 해동의 심정은 이같이 지극하였다.

관가는 10여리밖에 있었다. 길도중에 마을사람들도 만나고 린근동네사람도 만났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조헌에게 깊이 머리숙여 절을 하고는 하나같이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는것이였다.

《나리님, 왜놈들이 부산, 동래를 다 불태우고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있다는게 사실이오까?》

《왜놈들이 쳐들어오는데 우리 군사들은 무엇을 하고있소이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이까?》

이렇게 모두 조헌을 믿고 그의 말을 들어보기를 소원하였다.

그때마다 조헌은 가던 길을 멈추고 일일이 대답해주었다.

《왜놈들이 부산과 동래를 먹고 살인방화를 마음대로 하고있소이다. 그러나 무서워할것은 없소이다. 모두 왜놈들과 용감하게 싸워야 하오이다. 그러자면 의병을 뭇고 손에 병쟁기를 들어야 하오이다. 왜놈들에게 한톨의 식량도 내주지 말고 귀중히 간수하여 우리가 먹고 싸울수 있게 해야 하오이다. 우리 집과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다지면 왜놈들을 어떻게 쳐야 한다는 계책이 떠오르고 힘이 솟아날것이오이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신심을 안겨주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관가에는 해가 질녘에 들어섰다.

고을원 구만석은 조헌을 보더니 살수가 난것처럼 황황히 맞아들이였다.

《왜놈들이 벌써 경상도지경을 절반나마 차지하고 며칠안에 전라도를 치려 하오니 어쩌면 좋겠소이까?》

구만석은 손님을 맞는 인사례절 같은것도 다 잊고 겁이 잔뜩 낀 눈으로 조헌을 바라보았다.

조헌은 말없이 먼저 의자를 찾아 앉았다. 그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고을군사가 몇이요?》

《본래 120명인데 감영에서 근 절반이나 떼가고 또 이렇게 저렇게 부득이 떼낸 군사가 적지 않아서 60여명이 되나마나 하오이다.》

《감영에서는 왜 그 많은 군사를 떼갔소이까?》

《글쎄… 무슨 별당을 짓는다던지…》

《군량미로 받아들인 량식은 얼마나 있고 조세로 받아들인 쌀과 환곡은 얼마나 있소이까?》

조헌은 고을원을 지낸적이 있어서 고을관가의 형편을 잘 알고있었다.

《내 생각엔 7백~8백섬은 될터인데.》

《장부상에는 그렇게 기장되여있겠지만 현물이…》

구만석의 대답이 어정쩡하였다.

《다음은 군기소에 창과 칼, 활과 화살은?》

《글쎄 뭐, 씨원치 못한가 보오이다.》

《구체적인 수자는? 창과 칼은 몇자루고 활과 화살을 몇개인가 하는것이요.》

구만석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조헌은 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을원이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고을을 지켜내겠는가. 고을은 고을마다 다 옥천과 대동소이할것이니 나라에 덮쳐드는 재앙을 어떻게 막을가부냐.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고을원을 꾸중하고 질책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정의 높고낮은 관리들이 다 제 직분을 다하지 못하고 부귀영달만 꾀하면서 당파싸움만 하고있으니 아래관리인들 그 썩은 물에 젖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관장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왜놈을 막아낼 계책을 찾아야 하리다. 호랑이입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싹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오늘 당장 감영에서 빼간 군사를 돌려받고 이렇게 저렇게 빠져있는 군사들을 불러들여 점고하여 군사를 정비하는것이 급선무이오이다. 다음은 병쟁기들을 수습하여 군사들을 무장시키며 군량미를 잘 보관하여 군사들을 먹이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하리다. 그리고 군기소야장간을 빨리 살려내서 병쟁기들을 수리하고 왜놈들과 싸울만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하리다.》

구만석은 한개 선비에게 훈시닥달을 받는것이 부끄러워서 관장의 체면을 세워보려고 하였다.

《본관도 다 그런 계책을 생각하고있소이다. 감영의 지시를 기다리고있을뿐이지…》

사실 구만석은 왜란이 터졌다는 소리에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런 궁리도 떠오르지 않았었다. 조헌의 말을 듣고야 비로소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밝아진것이다.

《그렇다면 됐소이다. 그러나 계책만 가지고있어서는 안되오이다. 빨리 그것을 실천에 옮겨놓아야지 감영의 지시만 기다릴수는 없소이다.》

《하오나 어쩌겠소이까. 그래서 고을우에 감영이 있고 관찰사가 있는게 아니겠소이까. 기다릴수밖에…》

조헌은 구만석이 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관장은 감영의 지시를 기다리고있다가 왜적이 덮쳐들면 어찌하겠소? 왜적에게 나는 감영의 지시를 기다리고있는중이요- 하겠소이까. 허허… 그래선 안되오이다.

내 하나 옛이야기를 하겠으니 들어보소이다. 옛날에 붕어 하나가 수레자국의 고인 물속에 들어있었는데 날이 가물어서 물이 말라가고있었소이다. 붕어의 등지느러미가 드러나고 아가미가 드러나니 붕어가 죽어버릴 시각이 각일각 다가오고있었소이다. 이때에 마침 길손 하나가 지나가길래 붕어가 그 길손에게 간절히 빌었소이다. <여보시오. 날 살려주소, 물 한바가지만 부어주시오이다. 그러면 난 살아나 은혜를 꼭 갚겠소이다.>고 했더니 그 길손이 <네가 차마 불쌍해서 보지 못하겠구나. 내 물 한바가지가 아니라 강물을 끌어다가 물을 대주겠다.> 하고 멀리 강을 찾아가는게 아니오이까. 붕어는 그에게 말하였소이다. <그럴사이면 내가 말라죽어 어느 집 술안주감으로 상에 오르리니 강물을 기다릴 사이가 없소이다.> 하였다오. 결국 붕어는 말라죽었다 하오.》

조헌은 허허 웃으면서 구만석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 고을이 붕어신세와 엇비슷하는지라 감영의 지시만 기다리고있을 시간이 없소이다. 우리 고을은 우리가 지켜내야 하오이다. 그래서 관장은 관장대로 급히 서두르고 소인은 소인대로 의병을 뭇겠소이다. 관군과 의병이 합세하면 왜놈들을 막아낼수 있소이다.》

조헌은 마디마디에 그루를 박아 엄숙하게 말하였다.

구만석은 《아 그랬으면야, 그랬으면야…》하고 련이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자면 의병이 먹고 싸울 식량이 있어야 하오니 고을에서 얼마간이라도 떼주면 좋겠소이다.》

《하기는 그래야지요. 그런데 얼마나?》

《300섬은 있어야 하리다.》

《300섬을?!》

구만석은 깜짝 놀라 뒤로 벌렁 넘어질듯 물러나앉았다.

《그렇게도 많이?》

《그게 많은것이 아니오이다. 의병들이 모여들면 2 000~3 000이 되겠는데 그게 몇달 량식이 되겠소이까.》

구만석은 또 한번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오겠소이까? 하늘에서 떨어지겠소이까. 땅에서 솟겠소이까?》

《나라를 지키는데 떨쳐날 백성들이 왜 없겠소이까. 고을원은 나의 말을 허술히 여기지 말구 마음을 크게 먹소이다.》

《아니, 그렇게는 못하겠소이다. 감영의 지시없이는 한섬도 내지 못하겠소이다.》

《언제 내릴지 알수 없는 감영의 지시를 기다릴 시간이 없소이다. 왜놈들이 달려들어서 우리 백성들과 군사들이 먹을 군량미를 타고앉아 먹어치우게 할테요? 남의 나라에 쳐들어간 침략자는 군량을 가져가지 않구 쳐들어간 곳의 식량을 먹는다는 말을 못들으셨소?》

구만석은 대답을 못하였다.

웃방에 올라가면 령감의 말이 옳고 아래방에 내려가면 로친의 말이 옳다고 어느 말을 들어야 할지 아래우 망짝에 곱새등이 될것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 중대한 일을 당하여 감영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벼슬이 위태함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오만 감영에 기별하여 지시를 받아야 하리다.》

조헌은 이 무능한 구만석과는 손잡고 왜놈들을 맞받아칠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빨리 감영에 기별하소이다.》

조헌은 관가를 나와버렸다. 완기와 해동이는 아버님의 뒤를 말없이 따라섰다. 그들은 고을원을 쩔쩔매도록 다그어대는 조헌을 보고 경탄하였다. 우리 아버님이 여기 옥천고을원이라면 왜놈들이 옥천땅에 얼씬하지도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아버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리라고 또다시 굳게 속다짐하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