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4

 

윤선각은 한개 도를 지켜내야 할 막중한 임무를 지닌 충청도관찰사로서 불의지변을 당하여 당황하였다. 도안의 군사들을 통솔하는 순찰사의 임무까지 겸임한 조건에서 국란이 닥쳐온 때에 할일이 너무도 많았다. 각 진의 군사들을 불러들이고 각 고을의 군사들을 모아왔다. 또 각지의 군량미를 끌어들이고 활과 창, 싸움칼을 정비한다, 군적에 등록된 백성들을 모조리 군사로 휘몰아온다 하였지만 어느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군적상으로는 7만이 가까운데 실지 인원을 모집해놓고보니 1만도 차지 않았다. 평시에 군량과 군포를 받아 리욕을 채우느라고 갓난아이나 칠십이 된 로인조차 군적에 등록해놓고 또 녀자들을 남자로 바꾸어 등적해놓았으니 이렇게밖에 될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새로 받아들인 9 000여명의 군사들은 다 굶주린 백성들이였다. 이 사람들에게 병쟁기를 자체로 마련해가지고 오라고 해서 도끼와 낫, 걸이대 같은것을 들고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나저러나 윤선각은 2만에 가까운 군사를 거느리게 되였다. 어쨌든 이것은 큰 병력이였다. 그러나 윤선각은 왜놈들의 승세에 겁을 먹었다.

윤선각이 들으니 부산첨사 정발과 동래부사 송상현도 왜놈의 칼에 다 죽고 부산, 동래가 함락되고 또 다대진 첨사 윤홍신도 패하여 죽고 좌수사 박홍은 도망치고 좌병사 리각은 먼저 애첩과 가장집물을 실어보내고 새벽에 도망하였다고 한다.

윤선각이 또 들으니 경상감사 김수는 왜적을 막기는 고사하고 관하에 전령하여 군사들과 백성들을 피난하라 하고 자기도 도망하였다 한다.

왜적이 만산편야라고 산에 차고 들을 덮으며 세갈래로 나누어오는데 모두 충주를 목표로 온다하니 윤선각이 더욱 급해났다.

충주는 한성의 동남쪽으로 300리 되는 곳에 있다. 충주고을은 한강의 상류에 있는 까닭에 물길로 한성에 왕래하기가 편리하다. 한성의 사대부들이 예로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대부들의 정자와 루각이 많고 선비들이 모여들어 배와 수레가 사방에서 와닿는다. 경상좌도에는 죽령을 거쳐 통하게 되고 경상우도는 조령을 거쳐 통하게 되여 두 령의 길이 모두 충주읍에 모이고 물과 물길이 충주에 모여 한성에 통하게 되므로 충주읍은 하나의 중요한 요충지이다. 일단 유사시에는 싸움터로 되는 곳이다. 충주를 지키면 곧 한성을 지키는것이다.

윤선각이 조금이나마 지략과 담력이 있었다면 령남에서 충주로 통하는 죽령과 조령에 각각 만명씩 진을 치고 매복해있다가 적을 치면 충주를 지켜낼수 있었을것이요, 큰 공을 세울수 있었을것이였다. 그러나 윤선각은 지략과 담력이 없고 그대신 겁이 많아서 여기에 진을 칠 생각을 버리고 충주와 멀리 떨어진 온양에 군사들을 집결시키였다. 그것은 왜놈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배신행위였다.

그는 이 배신을 교묘히 감추기 위해 조정에 장계를 띄우기를 《임금을 호위하려 한성에 가려고 온양에서 군량미를 마련하면서 한편으로는 군사들을 조련시키고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왜적이 충주를 강점하였고 임금이 한성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뒤였다.

윤선각은 당황하였다.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었다. 그는 군량미핑게, 훈련받지 못한 군사들핑게, 백성들을 모아 군사로 만든다는 핑게를 내대고 5월 한달을 흘러보냈다.

옥천고을원 구만석은 관찰사 윤선각의 령대로 군량미를 싣고 온양에 찾아갔다. 윤선각이 대뜸 성을 내여 구만석을 꾸짖었다.

《옥천은 왜 군량미를 제때에 제 수량대로 바치지 못하는가. 왜 그렇게 꾸물거리고있는가, 응?》

《방금 100섬을 실어왔소이다.》

《그래야 겨우 200섬을 바친셈인데 아직 300섬이 남지 않았는가. 두었다가 왜놈에게 줄셈이요? 말해보오. 왜 아직도 어리어리해서 일을 늦잡느냐말이요.》

구만석은 어리어리해서 돌아친다는 윤선각의 욕설에 저도모르게 심한 모욕을 느끼고 화로를 뒤집어쓴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실어온 쌀 100섬도 헐하게 실어올수 있는것을 실어왔는가. 란리통에 마소달구지를 구할 길 없었고 싣고갈 군사도 없었으며 하나에서 열까지 고을원자신이 말갈데 소갈데 다 돌아다니면서 실어오지 않았는가,

《황송하오만 고을에 군량미 300섬이 없소이다. 남아있는것이 겨우 100섬이 될가말가 하옵는데 고을군사들과 관속들이 먹으면서 고을을 지켜야 하오리다.》

《그렇다면 200섬은 고을원이 다 먹어버렸소? 왜 없다고만 하는가?》

《지난해 백성들이 성을 쌓으면서 농사를 짓지 못한거야 관찰사님도 잘 아시면서 괜히 꾸중이시오이다.》

《백성들은 짜내면 짜낼수록 나오는게야. 무능해서 그러지. 나머지 100섬을 빨리 실어오시오. 령대로 하지 않으면 군률을 당할줄 아시오. 군률이 무엇인지 알겠지. 본관은 관찰사로서 란시에 선참후계해도 된다는거요.》

윤선각이 이렇게까지 위협하니 구만석은 겁이 더럭 났다. 참말이지 이 미욱한놈이 내 목을 치고 란시에 명령에 불복하여 그랬다고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판이다.

《그리고 내 듣자니 조헌이 의병을 뭇는다고 한다는데 그것을 방임해둔단 말인가. 지금 군사들이 없어서 왜적을 감당키 어려운데 조헌이 다 빼앗아가도록 할테요? 게다가 조헌이 의병을 먹일 군량미를 내라고 한다니 도대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그자리에서 칼로 자르듯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감영의 승인을 받으면 군량미를 내겠다고 하였느냐 말이요? 군량미는 한섬도 내줄수 없소. 만약 내주는 날에는 군률을 당하는 날인줄 뼈에 새기시오.》

《예, 알았소이다.》 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구만석은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것처럼 몰아대는 윤선각이가 매우 불만스러워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래, 옥천원은 고을에서 군적에 등록된 백성들을 몇백명이나 군사로 모집할수 있느냐?》

《글쎄올시다. 군적대장을 따져봐야 하겠소이다.》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란시에 이제야 따져보겠다? 좌우간 얼떨떨해. 구만석은 고을원재목감이 못되니 스스로 물러나는게 좋겠소.》

구만석은 윤선각의 말에 불끈 치솟는 반발심을 꾹 눌러참았다.

(고을원의 재목감이 못된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렇다면 너 윤선각은 관찰사의 재목감이 되는가. 왜 군사들을 모아놓고 군량미만 먹어대고 왜놈들이 쳐들어올 요충지를 피해있는거냐. 군량미도 그렇지. 농사철에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성쌓기에 내몰라고 한것은 네가 아니냐. 군량미를 충당치 못하게 한게 바로 윤선각이 네가 아닌가 말이다. 조헌이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쓴 편지를 너에게 가져간 사람이 내가 아닌가. 민심은 하늘이 준 기회보다 낫고 유리한 지형지물보다 낫다고, 인자무적이라는 조헌의 충고도 내가 날라다주었는데 다 듣지 않고 이제 와서 잘못을 이 구만석에게 다 넘겨씌우려하니 그게 관찰사가 할짓이냐.)

구만석은 속으로 이렇게 윤선각을 규탄하였으나 윤선각은 북채를 잡은 격이고 자기 구만석은 북통을 멘 셈이여서 치면 치는대로 소리를 내야 하므로 울며 겨자먹듯 윤선각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일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놈들이 무서웠고 윤선각도 두려웠고 백성들도 두려웠다.

구만석은 근심과 패배감을 두어깨에 무겁게 지고 옥천으로 돌아왔다.

도망치고싶었다. 살고싶었다. 왜놈들이 아직 옥천땅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았을 때 미리 피난하지 않으면 여불없이 죽을것만 같았다. 고을의 군사만 그대로 가지고있으면 그래도 왜놈들과 싸우는 시늉이라도 하다가 조헌이 뭇는다는 의병들과 합세하면 살수가 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윤선각이 다 불러가고 열두엇밖에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제는 윤선각의 지시대로 군적에 올라있는 백성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군사로 만들수밖에 없었다.

구만석은 륙방아전들과 남아있는 군사들을 급히 불러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이냐. 병방, 호방, 형방은 벌써 도망가고 리방, 례방, 공방만이 보였다. 또 군사 다섯이 온데간데 없었다. 도망간자들은 다 백성들의 원망풀이를 당할가봐 뺑소니를 친것이였다.

《란시에 도망친자들은 역적이니만큼 군률을 당하리라.》

구만석은 이렇게 남아있는 사람들앞에서 무섭게 두눈을 부릅뜨고 위협부터 먼저 하였다. 그것은 윤선각이 자기에게 한 말이다.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을 나타내는지 자신부터 직접 당해본것이다.

《병방, 호방, 형방을 잡아다가 목을 치리니 누가 그놈들이 간곳을 아느냐? 만약 알고도 고발하지 않으면 고발하지 않은 죄로 형벌을 받으리라.》

관속들과 군사들이 수군거렸다. 도망친자들이 어디로 갔는지, 또 그곳을 안다 해도 잡으러 갈 사람들이 있기는 한가, 잡으러간다고 하다가 그마저 도망치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하는것같았다.

구만석은 그 심리를 모르지 않았다. 이제는 고을원의 호령도 먹어들어가지 않는구나. 이런 놈들을 데리고 무슨 일을 치르겠는가 하고 락심하였지만 내색치 않고 없는 위엄을 다 짜내여 불호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이제 당장 관내 마을을 가가호호 샅샅이 참빗질을 해서라도 군적에 올라있는 백성들을 다 끌어내여 관가에 데려오도록 해라. 왜적이 코앞에 왔는데 누가 나라를 지키겠느냐. 밤에는 홰를 달아가지고서라도 찾아내라. 래일까지 대령케 하되 만약 령을 어기면 군률을 당할줄 알아라.》

《예이-》

대답이 그전보다 씨원치 못했지만 모두들 헤쳐갔다.

구만석은 동헌마루에 서서 삼문밖으로 나가는 아전들과 군사들을 바라보며 저들까지 도망할지 몰라 몹시 불안하였다. 그는 래일 일이 어떻게 되여가는가를 보다가 일이 틀리면 자기도 도망해야지 별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군량미를 감영에 바치러간다고 하고 수레를 몰아 산속으로 숨어버리면 식량도 있으니 한동안 아무일도 없을것이였다.

구만석은 동헌안방으로 들어갔다. 도망칠 준비를 해야 했기때문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