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5
조헌의 집안방에는 사람들이 그득히 모여앉았다. 조헌의 편지를 받고 멀리 공주에서 온 제자들인 김약, 김질들이 뜻있는 선비들에게 련계를 취하여 몇몇 사람들을 더해가지고 왔고 전라도 금산에 사는 선비도 조헌의 편지를 받고 제가 아는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와서 방안이 비좁았다. 완기와 해동이 그리고 옥수동에 머물러있는 피난민초막동네의 소임을 맡고있는 중로배는 자리가 없어서 열어놓은 방안의 문가에 앉았다.
조헌은 서쪽길로 쳐들어오는 왜적이 김해, 성산, 금산을 거쳐 추풍령을 지나 청주로 곧추 가면서 아직 옥천과 서쪽바다가의 고을을 다치지 못하고 지나갔다는것과 왜적이 이같이 행동한것은 조선임금을 생금하려고 한성으로 급히 가는데 총력을 기울였기때문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시급히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끝까지 싸우자고 열렬히 호소하였다.
《의병을 못자면 먼저 의병대의 골간 즉 의병장, 비장, 선봉장, 좌군장, 우군장과 같은 장수들을 선발, 임명해놓고 거기에 의병들을 소속시켜 군사규률과 질서를 엄격히 세워놓아야 하리다. 자, 이제부터 의논해봅시다.》
사람들은 일치하게 의병대장으로 조헌을 선출하였다. 조헌이 엄숙하게 일어섰다.
《여러분들의 믿음에 이몸을 기꺼이 바치겠다는것을 맹약하오이다.》
그의 두눈에 결연한 의지가 활활 불타고있었다.
잠시후에 비장, 선봉장, 좌군, 우군의 장수들이 선출되고 임명되였다. 장수로 임명된 사람들도 하나같이 의병대와 사생동고를 서약하였다. 방안에는 높뛰는 심장들의 고동소리와 열기를 내뿜는 숨결로 가득찼다.
《다음은 도내 각 고을의 백성들에게 우리가 의병대를 뭇는 취지와 호소를 담은 격문을 내서 하루빨리 옥천으로 모여들도록 해야 하리다. 그러자면 격문을 써야 할것이고 그 격문을 가지고 사람들이 사방으로 가야 할것이오이다. 각 고을, 각지마다 방문처럼 공시하기도 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읽어주기도 하면서 사람들을 불러일으켜야 하리다.》
공주의 제자들도 금산의 정암수선비도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세차게 끓어오르는 흥분을 안고 조헌을 바라보았다.
조헌은 서탁에 놓여있는 흰종이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격문은 여기 있소이다. 소인이 읽을테니 들어보고 무엇을 더 써넣으면 좋겠고 무엇을 빼버리면 좋겠는지 의논해봅시다.》
그는 격문을 읽었다.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치기 위한 격문
임진(1592)년 6월 12일 전 제독관 조헌은 8도안의 문무관 동료들과 산골에 묻혀사는 지사들 그리고 스님들과 백성들, 젊은이, 늙은이, 호걸들에게 삼가 고하노라.
하늘과 땅의 큰 은덕은 삶을 준것이다. 세상만물은 각각 제가 안정되여 살 곳을 찾는다. 그러나 왜적은 우리 백성들의 살 곳을 삼키려 한다. 이 왜적들은 의리도 없는 오랑캐족속인지라 사람을 죽이기를 풀베듯하여 원한이 온 나라에 꽉 찼다. 악행을 끝없이 하였으니 악한자의 뒤끝이 있을리 없다. …
태평세월이 오래 계속되여 적을 막아낼 준비가 없었으니 적의 사나운 발굽이 이렇게 마구 짓밟고 란탕칠줄은 몰랐구나.
새재(조령)를 지켜내지 못한것이 비통하고 임금의 수레가 멀리 떠난것이 슬프도다. 멀리 북방으로 간 임금을 우러러 비통한 마음 달래노라.》
조헌이 비분강개하여 격문을 읽어가자 사람들은 가슴을 찢는 슬픔과 저주와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격문의 자자구구, 구절구절을 뼈에 새기며 눈물을 머금었다. 피난민초막동네소임 중로배는 수염발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씻을념없이 으흑으흑 어깨를 떨었다.
《백성들의 원한이 날로 쌓이고 분노 또한 달을 따라 하늘에 치솟는데 신하된자로서 어찌 도망할 생각을 할수 있으랴. … 금띠, 은띠를 두른 벼슬아치들은 어찌하여 임금의 지시를 받들지 않느냐. 령남, 호남을 맡은자들은 어물거리면서 대적이 수도를 강점하도록 도망하였다.
아득히 먼곳에 있는 임금은 전방의 패전소식에 오죽이나 통탄하였으랴. 이 나라 백성들은 재생의 길이 끊어졌으니… 례의지국의 강산이 영영 오랑캐의 땅으로 되고말것이냐.》
조헌은 여기서 잠시 읽기를 중단하였다. 누구인가 《아하야- 어이구, 어이구-》 하고 참고참았던 곡성을 터뜨리니 선비들이 방바닥을 치고 제 가슴을 치면서 모두 목놓아 곡을 하였기때문이다.
조헌이도 눈물을 씻으며 한동안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격문을 읽었다.
《하늘이 조선을 도와서 아직 호서(충청도), 해서(황해도) 일부 지역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많은 지역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백성들이 있거니 어찌 한몸바쳐 싸울 영웅이 없을소냐. … 환난을 당하여 후환을 남길소냐. … 산이 평지되고 강이 말라붙을 때까지 원쑤격멸전에 떨쳐나서자!
서로의 힘을 합쳐 나라의 위급함을 구원할 날은 바로 이때로다!
평생에 지닌 재주를 다하여 난국을 타개할 날이 바로 오늘이다!
뜻을 같이하는 선비들이여, 천재일우의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
용감하고 슬기로운 백성들이여, 위태로운 이 나라의 운명을 건져내라!
활을 메우고 먼저 적의 괴수의 멱통을 겨누라! 창을 벼리고 방패를 갖추어 적의 군마의 발목을 찍으라! …
오늘의 싸움이 후손만대에 복을 안아오는 영광의 전투임을 알리로다.
이 격문이 가닿는 즉시로 나라를 위하여 적을 물리칠 대책을 의논하여 각자가 지닌 힘과 마음을 다하라!
식견과 지략이 있는 사람들은 계책을 내놓고 용맹을 지닌 사람들은 용력을 다 바치라!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군량을 보장하라!
더는 때를 놓치지 말고 이 호소에 다같이 호응하라!
만약 고성에서나 김해에서처럼 왜적을 치지 않고 도망치는자가 있을 때에는 적을 도와주는자로 지목하는 동시에 전란이 끝나는 날에 그들의 죄행을 성토하여 극형에 처하리라!
맹세코 오랑캐무리들을 우리 강토에서 소멸하고 이 조국강산을 완전히 회복하자!
조헌은 피끓는 의기를 다하여 호소하면서 기어이 왜적을 칠것을 기대한다!》
조헌은 드디여 격문읽기를 끝마치였다. 좌중이 격동하여 부글부글 끓었다.
《중봉선생! 참말 피가 통하고 힘이 뻗치오이다. 이 격문이 나가면 백성, 선비들이 너도나도 달려와 의병이 되리오이다.》
정암수는 흥분을 터뜨리며 조헌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공주의 제자들이 《의병장님, 왜적을 격멸할 의병장님의 진정이 칼이 되고 창이 되고 화살이 되여 쏟아져나가는것같소이다. 선생님-》 하고 조헌의 품에 안겨들었다.
사람들은 그자리에서 격문을 저마다 한부씩 써가지고 삼녀가 차려주는 점심을 든든히 치른 후에 곧바로 자기가 살고있던 곳으로 떠나갔다. 이 격문은 고을마다 마을마다 불씨처럼 의병참군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줄것이였다. 그들은 늦어도 열흘안으로 돌아오되 있는 힘껏 사람들을 불러모아가지고 오리라고 굳게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