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7

(3)

 

날이 훤히 밝아왔다. 홍제원을 지나 벽제참에 닿았을 때에는 비가 더욱 억수로 퍼부었다. 임금을 따르는 문무관리들과 호종군들의 옷과 의관이 비에 모두 젖어들고 련을 메고가는 사람들이 진흙탕에 미끄러지고 넘어져서 능히 행차하지 못하였다.

보기에 너무나도 참담하였다.

충주를 함몰한 왜놈들은 날랜 렴탐군을 조선군사로 변복시켜 한성에 들어가 성안을 내탐케 하였다. 조선왕이 북쪽으로 떠났다는것을 확인한 왜적은 한 부대는 양지, 룡인을 거쳐 한강으로 나왔고 다른 한 부대는 려주, 리천을 거쳐 룡진으로 쳐나갔다.

바로 이럴즈음에 한강 제천정다락에서 도원수 김명원, 부원수 신각, 류도대장 리양원 그리고 여러명의 대장, 편장, 종사관들이 적을 막을 계책을 의논하고있었다.

한강을 지키고 한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적에게 먹히우느냐.

나라의 존망이 한강을 지키는가 못지키는가에 달려있었다.

각일각 닥쳐드는 무서운 위기를 싣고 몸부림치며 흐르는 한강, 북악산이 그 물결우에 비껴들어 흐느끼고 인왕산이 어려들어 철썩철썩 기슭을 치면서 일어나라, 일어나 싸우라, 력사지국아 하고 부르짖는것같았다.

원수 김명원은 처음부터 겁에 질려 어찌할지 몰라하였다.

원수 신각은 도원수가 먼저 계책을 내놓을것을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신통한 수가 나올것같지 않았다.

《도원수께선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신각이 답답하여 이렇게 물으며 김명원을 마주보았다.

《내 중군을 데리고 지체없이 측면에 진을 치고있다가 기각지세로 적을 앞뒤에서 휘몰아 칠테니 부원수는 종사관과 함께 강변에서 왜적의 도하를 방비하도록 하오.》

이것은 자기가 왜놈들이 한강을 건너온 다음에 싸우겠다는것인데 적을 막을 계책이 아니라 형편을 보다가 도망하겠다는 속심인것이다.

《도원수는 측면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강을 마주한 앞면에서 도하하는 왜적을 쳐야 한강을 지켜낼수 있소이다.》

《무엇이라구? 방자스럽기 그지없다. 부원수는원수의 명령에 복종할뿐이다. 그렇게 하오.》

김명원이 성이 독같이 나서 팔소매를 떨치고 다락에서 내려 어데로인가 사라져버리였다. 신각은 이 싸움에서 한강을 지켜낼 큰 군력이 떨어져나갔다는것을 절감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맥을 늦출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든 죽더라도 왜놈들이 한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방비해야 한다.

그는 종사관 심우정과 함께 한강을 지켜낼 계책을 의논하였다.

《아뢰오, 도원수대감이 전선(싸움배)을 모두 불태우고 군기와 군량을 불태우고있소이다.》

군사 하나가 막 급히 달려온듯 숨을 헐떡이며 뒤를 가리켜보이였다.

신각과 종사관은 와뜰 놀라 다락을 내렸다. 도원수가 불지르는 곳으로 뛰여갔다.

식량창고가 불타고있었다. 또 강변의 싸움배를 끌어다가 도끼로 부셔서 장작개비처럼 불속에 던져넣고있었다.

《이놈들, 빨리 불을 놓지 못할가. 왜 꾸물거리느냐.》

김명원이 군사들을 극악하게 호령하였다.

신각과 종사관은 《이 무슨짓들이요? 군사들, 불을 끄시오-》 하고 달려들어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군사들은 도원수의 명령이라 마지못해 이런 천하의 불망나니노릇을 하고있었는데 마침 부원수의 령이 떨어져서 거기에 복종하였다.

김명원은 성이 상투끝까지 치밀어올라 신각에게 손을 뻗쳐대고 소리쳤다.

《부원수는 이 식량과 배들을 고스란히 왜적에게 넘겨줄셈인가. 어찌 무엄하게 도원수의 명령을 가로채서 적을 도와주려고 하는가?》

《도원수는 한강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미리 도망치려고 식량과 싸움배를 불태우고있소이까. 우리가 한강을 지켜내면 식량도 싸움배도 한성도 다 지켜내는것인데 어찌하여 도망칠 잡도리를 하오이까. 임금께서는 도원수와원수에게 한강을 지키라 하셨는데 어찌하여 어명을 그르칠 작정을 하였소이까.》

김명원은 신각이 들이대는 창끝같은 물음에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아하, 이놈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내가 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번개쳤다. 허나 지금은 어쩔수 없었다. 신각의 말이 임금의 어명과 그른데 없었기때문이다.

신각의 전령군사로 따라다니는 덕보는 신각부원수의 대바른 언행에 무한히 감격하였다.

종사관 심우정도 강직하고 리치가 분명한 신각의 주장에 합세하였다.

《이 나라 한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여있거늘 도원수는 성안 17만 생명이 일조에 왜놈의 칼에 고기밥이 되여도 무관하오이까?》

김명원은 또다시 왈칵 삿대질을 하였다.

《그대들이 도원수의 령을 거역했다가 어찌되는가를 두고보겠다.》

그는 말에 올라 비장들을 달고 성안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덕보는 도원수 김명원앞에 무릎을 꿇으며 제발 가지 말라고 빌고싶었다. 수많은 군사를 거느린 도원수가 왜놈들과 싸워보지도 않고 어찌 물러설수 있단 말인가.

원수가 앞장에 서서 왜놈들을 친다면 군사들도 목숨을 내대고 원쑤들을 무찌를것이고 도원수가 적이 두려워 피신하면 군사들도 겁에 질려 흩어질것이니 종당에는 한강을 지켜내지 못할것이였다.

덕보는 도원수앞에 우뚝 나서서 《도원수님께서 가시려거든 저를 죽이고가소서.》 하고 그의 길을 막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번개치듯하였다. 하지만 일개 하졸군정이 감히 나설 처지가 못되여 가슴을 찢는것같은 아픔을 안고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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