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7

(4)

 

얼마후에 왜놈들이 한강대안으로 쓸어들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만산편야였다. 강변이 새까맣게 왜놈들로 덮이고 왜칼, 왜창들이 해빛에 번쩍번쩍 란무하는데 조총소리가 꽝꽝 터져나와 파아란 연기를 구름처럼 휘몰아왔다. 철알들이 강을 건너와 우박처럼 떨어졌다.

교활한 놈들은 조선군사들이 애초에 겁을 먹게 하여 달아나도록 하려는것이였다.

과연 왜적의 허장성세계략은 맞아떨어졌다. 도원수 김명원과 수성대장 리양원은 왜놈들이 바라는대로 겁을 먹고 도망쳤다.

신각은 왜놈들의 얕은 꾀를 대번에 알아차리고 비장들을 불러 전군에 싸움준비를 갖추도록 명령을 내리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싸울 군사가 없었다. 종사관과 비장들이 급히 달려와 보고하기를 김명원이 도망하면서 부원수의 군사들까지 데리고 갔다고 하였다. 남아있는 군사는 겨우 수십여명밖에 안되였다.

왜놈들은 수만이였다.

신각은 통탄하였다. 김명원이 앞에 있다면 한칼에 목을 잘라버리고싶었다. 자기가 거느리고있는 7천군과 김명원이 거느린 1만 5천군, 리양원의 군사 2만이 강가에 진을 치고 헤염쳐오는 왜놈들을 활로 능히 쏘아잡기도 하고 우리 군사들이 싸움배를 타고 헤염쳐오느라고 맥이 빠진 놈들을 몽둥이를 가지고도 어리친 물고기를 때려잡듯 할수 있었겠는데 김명원이 그 배들을 불태웠었다.

김명원은 수리개의 날개를 잘라버리듯이 신각의 날개를 잘라버린것이다.

신각은 종사관 심우정의 손을 꽈악 그러쥐고 비장하게 말하였다.

《우리 군사 수십명이 왜적 수만명과 싸울수는 없소. 아, 통분토다. 우리는 이제 곧 양주 해유령으로 가서 그곳 군사들과 함경도남병사 리혼의 군사들과 힘을 합쳐 오늘의 이 원한과 수치를 반드시 씻어야 하겠소.》

《알겠소이다. 거기라면 림진강계선으로 나가는 적들을 얼마든지 무찌를수 있소이다.》

신각은 양주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양주의 군사들과 한강을 지키던 군사들을 집결하였다. 그리고 함경도남병사 리혼의 군사들과 련합하였다. 지휘는 신각부원수가 맡았다. 련합부대를 편성한 그날 신각은 전체 군사들을 힘있게 고무하였다.

《군사들, 왜놈들을 겁내지 말라. 그놈들은 먼길을 오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먹을것이 없어서 허덕이고있다. 겉보기는 살기등등해보이지만 실지로는 속이 비고 맥이 빠진 놈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달려들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우리 군사들이 왜놈들이 온다는 말만 듣고도 도망쳐서 왜놈들이 무인지경을 걸어왔기때문이다.》

군사들은 신각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여기저기서 머리를 끄덕이며 부끄러워하였다.

《우리가 어리석었지. 왜놈들이 조총을 쏘아대는 바람에 겁을 먹었댔어.》

《적의 허실을 알아야 하는건데 알아보지도 않구 인제야 다시는 바보노릇을 할가.》

《글쎄나말이여. 제놈들이 병쟁기를 안구 갑옷에 투구를 쓰구 짐을 지구 산을 넘구 강을 건느노라고 오죽이나 맥이 빠졌겠나. 그런놈들을 치기야 식은죽먹기인데.》

《우리가 미처 그걸 생각못한게 탈이야.》 하고 모두 적과 싸워이길 신심을 부쩍부쩍 돋구었다.

신각은 빙그레 웃으며 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경적필패라 하였거늘 이놈들을 허수히 보지 말고 힘과 지혜를 다하여 쳐야 한다.》

《알겠소이다!》

군사들의 우렁찬 대답소리가 해유령을 들었다놓았다.

하루이틀이 지난 어느날 한낮이였다. 왜놈들이 온다는 망원초의 보고가 들어왔다. 신각은 령기슭의 좌우산발에 군사들을 재빨리 매복시키고 왜놈들이 다가들기를 기다렸다.

이윽하여 왜놈들의 무리가 꾸역꾸역 고개길을 올라왔다. 이놈들은 해유령을 넘어 림진강계선으로 나가는 놈들중의 자그마한 무리였다.

먼길에 로독이 올라 발을 절뚝대는 놈, 더위에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투구를 벗어 들고오는 놈, 조총을 어깨에 꺼꾸로 메고 한손으로 물병을 기울여 먹으면서 오는 놈, 우리 군사들에게 무섭게 보이느라고 구렝이나 귀신낯짝을 그려넣은 가면을 그대로 쓰고오는 놈에 별의별 오구잡탕놈들이 다 있었다. 이런 놈들이 령길 굽이굽이에 서리맞은 뱀처럼 구불구불 늘어섰는데 70여놈이 될것같았다.

마침내 놈들이 매복구간에 들어섰다.

신각은 강궁에 활을 메워 말탄 왜장을 겨누어 쏘았다. 왜장이 말잔등에서 떨어졌다. 이때를 기다렸던 고수가 북을 세차게 울리였다. 그와 동시에 우리 군사들이 이미 준비해두었던 돌사태를 일으키였다. 또 화살을 퍼부어댔다. 또다시 북소리가 둥둥 울리였다. 우리 군사들이 북소리에 화답하여 《와야-》 하고 함성을 웨치며 쏟아져내려갔다.

왜놈들은 전멸당하였다.

양주 해유령의 싸움은 큰 싸움은 아니였으나 임진년에 왜적을 처음으로 쳐이긴 싸움이여서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큰 힘을 안겨주었다.

신각은 승전첩보를 조정에 띄웠다. 임금이 얼마나 기뻐하시랴 하고 그는 더 큰 싸움을 벌려나갈 억척같은 의지를 굳게 다졌다.

그러나 신각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덮쳐들었다. 신각이 승전하고 본진으로 돌아오는데 선전관이 찾아와서 임금의 어지를 내놓았다. 어지에는 신각이 한강을 지키지 않고 도망하여 한성이 함락되였다고 그 죄를 따져 참형에 처한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이것은 김명원이 도원수로서 수도를 버리고 도망한 자기의 죄를 신각에게 들씌워 자기대신 신각을 죽이려고 임금에게 상주문을 먼저 올렸기때문이다.

종사관 심우정도 덕보도 군사들모두가 김명원이 먼저 도망한 까닭에 싸울 군사가 없어서 사세부득이 퇴각한것이지 도망한것이 아니라고 선전관에게 하소하였다. 또 해유령에서 큰 승리를 떨쳤으니 《죄》를 감면할수도 있지 않느냐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허나 선전관은 《본관은 사연이야 어찌되였든 제 마음대로 어지를 변경시킬수 없다.》고 하였다. 이 어지는 임금이 지난 5월말 중화땅을 떠나 평양에 들어온지 사흘째되는 날에 김명원이 악랄한 흉계로 꾸민 장계를 받아보고 내린것이였다.

어지는 그날로 즉시 집행되였다.

덕보는 그날 신각의 군막에 들어가서 그의 유물을 정리하며 온종일 울었다. 종사관은 자기의 처소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군사들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바로 이런 때 왜적이 불시에 달려들었다. 우리 군사들은 뒤늦게 병쟁기를 잡고 왜적과 용감하게 싸웠지만 지휘관을 잃은 부대는 맥을 쓰지 못하였다. 부대는 여지없이 패하여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

조헌은 신각부원수의 최후에 대한 덕보의 이야기를 다 듣고 한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리였다. 아까운 인재가 왜적을 끝까지 족쳐댈수 있었는데 너무나 일찌기 김명원의 참소에 희생되였으니 나라가 어찌 바로 설수 있으랴. 그는 신각의 죽음이 결코 남의 일같지 않았다. 자신도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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