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4 장

임진년 4월

10

(1)

 

관찰사 윤선각의 비장 하교남은 옥천에서 의병대에 들어간 백성들을 관군에 끌어가려다가 의병장 조헌의 신랄한 규탄과 충고를 받고 빈손으로 감영에 올라왔다.

《그래 어찌 되였느냐?》

윤선각은 하교남이 미처 보고도 하기 전에 먼저 다그쳐물었다. 그는 금시라도 토끼를 집어삼킬듯이 노려보는 호랑이상이 되여 수염을 거칠게 일으켜세웠다.

하교남은 거기에 놀라지 않고 자기가 할노릇을 다했다는듯이 대답하였다.

《황송하오이다. 옥천고을에서 의병대에 들어간 백성들의 가족들을 다 잡아다가 구슬려도 보고 매질도 하였사오나 소용이 없었소이다.》하며 그는 의병장 조헌이 고을원과 자기를 무섭게 질책하던 이야기를 모두 고해바쳤다.

《만약 관찰사님이 왜적을 칠 생각은 없고 왜적을 치겠다고 나선 의병들을 잡아가고 백성들을 매질하고 가혹한 형벌만을 일삼는다면 충청도의병장의 자격으로 임금님께 상주문을 올려 성토하겠다고 하였소이다.》

윤선각은 불맞은 짐승처럼 길길이 뛰였다.

《뭐라고? 임금께 상주문을 올리겠다고?》

《그렇소이다. 그가 능히 그럴수 있소이다. 그는 우리가 왜적이 조령을 넘어 충주로 쳐나올 초시기에 막지 않았다는것과 그후에 신립이 충주 탄금대앞에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막아나설 때 그를 돕지 않아서 충주가 함락되고 한성을 빼앗겼다고, 또 룡인에서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쳐 적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내포땅에 들어와 의병들과 백성들을 해치고있다고, 그것은 역적행위나 다름없다고 하였소이다. 그러니 그가 분명 임금께 상주문을 올릴것같소이다.》

윤선각은 자기가 한 일이 있어서 가슴이 띠끔띠끔하였다.

《음, 조헌이 상소를 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니 틀림없겠다.》

그는 성급히 표범가죽을 씌운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하고 방안을 성급히 이리저리 오가기도 하였다.

《헌데 조헌이 마지막에 하는 말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서 왜놈들을 칠 생각을 하라고, 개심군자라는 말이 있듯이 고치면 된다고 하였소이다. 그런걸 봐서는 상주문을 올리지 않을수도…》

《아니다. 조헌은 상주문을 올릴것이다.》

윤선각은 자기가 저지른 죄행이 임금에게 드러나기 전에 그 상주문을 빼앗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무섭게 치솟았다.

《조헌이 언제쯤에 그 상주문을 띄우겠는가. 아마 감영을 거치지 않고 저의 의병들을 보내겠지?》

《그렇소이다. 아마 수일내에는 상주문을 가진자들이 임금이 계신 평양으로 갈것이오이다. 그들이 지나갈수 있는 길목마다 나루터마다 우리 심복들을 파하여 지나가는 길손이나 피난민, 군사들 할것없이 단속하면 그물에 걸려드는 고기처럼 영낙없이 잡아낼것이오이다. 념려마시옵소. 소신이 다 조처하겠소이다.》

《음, 잘 생각하였다. 그렇게 해라. 만약 놓치면 비장이 군률을 당할줄 알라.》

아닌게아니라 이틀이 지나서 공주고을 근처에 있는 금강나루터에서 젊은 량반 두사람과 그들의 견마잡이군들을 단속하였다.

나루터를 지키는 단속군사들은 흰 도포자락에 검은 통영갓을 쓰고 마상에 앉아있는 량반들이 어려워 견마군에게 물었다.

《량반님네들이 이 란시에 어디로 가시는게냐?》

《허, 이 군정이 별걸 다 묻는군. 량반님네들이 어디로 가시든 너와 같은 하졸이 감히 무엄하게 놀아날 까닭이 무엇이냐?》

견마군 하나가 반롱담격으로 빈정대며 씩 웃었다.

《아니, 견마군주제에 단속군사가 묻는데 대답이 그 꼴이야?》

《하하… 군정님의 말이 옳소이다. 자, 나리님네들이 갈길이 바쁘시니 지체시키지 말고 어서 길이나 열어주우.》

견마군이 겸양스럽게 부탁하듯 자세를 낮추자 이번에는 단속군사가 승세가 나서 견마군을 밀어제끼고 량반님들에게 꾸벅 절을 하였다.

《황송하오만 나리님네도 말에서 내리시고 몸뒤짐을 받아야 하옵니다. 윤선각관찰사님께서 그 누구도 가리지 말고 그리하라 분부를 엄히 하였사오니 우리도 할수 없소이다. 죄송하오만-》

《허- 이 군정 보게, 상전의 분부거행을 착실히 행하려드네그려. 이놈아, 아무리 그래도 량반의 몸을 더듬질할 법이 어디에 있느냐.》

이 량반들은 바로 조헌의병장의 비장 리우, 종사관 김경백이다.

리우의 몸에는 상주문이 들어있는 참대통이 깊이 간직되여있었다. 이들은 량반으로 가장한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량반선비들로서 조헌이 사랑하는 제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의병장의 상주문이 나라에 매우 긴요해서 자기들이 직접 가져가는것이다.

조헌의병장은 그 두사람이 활에 능하고 칼과 창쓰기에도 남달리 뛰여나서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견마군으로 나선 두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가는 길에 왜적을 만나도 능히 앞길을 열어나갈수 있는 사람들이였다. 그러나 윤선각이 무슨 기미를 느꼈는지 이렇게 곳곳마다 군사들을 내세워 오가는 길손들을 단속할줄은 몰랐었다.

지나온 고을의 외통길에서도 그랬고 또 어느 고개마루에서도 단속을 거쳤는데 이곳 나루터에서도 길을 막고 몸수색을 하는걸 보니 쉽게 통과할수 없을것같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임금께 상주문을 올릴수 있게 해야 하였다.

그들은 마음을 굳게 다잡고 침착하게 단속군사들을 구슬렸다.

《우리들은 임금님께 별시를 보이러 가는 길이네. 자네들은 평양련광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있나?》 하고 여전히 말우에 앉아서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루는 임금님이 문무대신들과 함께 평양을 지킬 의논을 하고있었다네. 어느 대신 하나가 여쭙기를 〈군사가 부족하오니 토병들을 불러모아야 하오리다. 그런데 토병을 지휘할 장수감이 없소이다. 그래서 선비든, 량반이든, 노비이든 상관치 말고 무반별시를 치르어 합격한 사람을 장수로 임명함이 가하오리다.라고 하였네.》

군사들이 귀가 항아리만 하여 모여들었다. 모두 열두엇이 되였다.

《임금님이 이를 즉각 허락하고 별시를 보이는데 어느한 젊은이가 나섰다네. 100보앞에 목표판을 세우고 그 중심에 밤톨만한 동그라미를 그려넣었는데 그것을 활로 다섯번 쏘아 다 명중하면 합격이고 열번 쏘아 열번 다 꿰면 장원급제로 쳐서 무반벼슬을 내린다 하였네.

임금과 관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젊은이가 모두 어김없이 맞혔다오. 임금이 너무 기뻐서 무반벼슬을 주었다네. 그 젊은이 이름이 김침이라오. 그후에 김침은 왜놈들과의 싸움에 앞장섰는데 그 용맹함이 장수들중에 으뜸이였다오. 임금이 이것을 알고 〈이 사람이 련광정에서 치른 별시에 장원한 사람이 아니냐?〉하면서 즉시 당상관으로 올려주었다네.》

이것은 실지 있은 일이다. 선조왕이 평양을 지키려 하지 않고 안주로 떠나갔지만 이 소문은 크게 퍼져서 백성들을 고무하였다.

단속군사들은 저도 모르게 《히야-》 하고 감탄하였다.

《여러 군사님네들, 우리 나리님들은 임금앞에서 김침이처럼 별시를 보이러 가는 길이요. 여러분들속에 별시를 보이고 벼슬자리에 오르고싶은 사람은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합시다.》

리우의 견마군이 허물없이 권하며 벙글거리는데 단속군사들은 《우리야 뭐…》 하고 뒤더수기를 긁적이였다.

《그렇다면 어서 길이나 열어주시오.》

견마군이 이야기값을 내라듯이 요구하니 단속군사들은 호기심이 부쩍동하였다.

《나리님네들이 과연 김침이처럼 활에 능한지 우리가 알게 한번 보여주고 가시오이다. 만약 목표를 명중치 못하면 우리를 속이려는줄 알고 몸수색을 할것이오이다.》

아까 단속하던 군사가 이렇게 말하자 단속군사모두가 《옳소이다.》 하고 좋아들 하였다.

《허허 그렇다면 백보앞에 창대를 두개 나란히 세우고 거기에 각각 벙거지 하나씩 걸어놓으라구. 우리 두사람이 하나씩 떨구겠네.》 하고 리우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정말?! 거 정말 볼만하겠네.》

《그러기말이여. 수월치 않은것을 수월히 대답하고 수월히 행하려고 드니 과연 상감마마앞에 나설 모양이여.》

군사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은 구경거리가 생겨서 즐거워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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