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1
(5)
이때까지 임금을 따라온 호종신하들이 임금앞에 엎드리였다.
《전하께서 평양에 계시면 평양이 지켜지고 평양을 뜨시면 평양이 무너지옵니다. 백성들은 전하를 믿고 전하를 위해 부탕도화라도 서슴지 않사오니 이 백성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신단 말이오이까?》
《상감마마, 전하가 한성에 계셨더라면 지금도 한성이 굳건히 서있었을것이고 전하가 개경에 계셨다면 오늘도 개경이 굳건히 버티고있었을것이며 전하가 평양에 계시면 평양도 굳건히 지켜지게 될것이옵나이다. 어찌 나라의 세 수도인 한성, 개경, 서경(평양)을 다 버리고 떠나는 망국왕이 되겠소이까.》
호종신하들이 이렇게 임금의 북행길을 막아나섰으나 그중엔 피난해야 한다는 대신들도 있었다. 지난 4월 그믐에 임금이 한성을 버리고 떠나게 만든 죄를 짓고 리산해가 파직된지 한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교훈을 잊고 이번에는 또 평양을 버리고 피난하자는것이다.
도제찰사 류성룡, 귀양지에서 돌아와 다시 임금을 호종하고있는 정철, 판부사 로직은 임금을 안전히 모시는것은 나라의 첫째가는 정사라고 하면서 임금의 피난길을 재촉하였다.
선조왕은 《왜놈들이 나를 따라잡으려고 급히 뒤쫓아오는데 어찌 여기에 머물러있겠느냐. 그리고 왜적의 흉악한 장수들을 우리 나라 각도에 나누어보냈는데 내가 갈곳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평양을 어서 떠나자고 하였다.
임금의 행차가 보통문으로 나아갔다. 평양백성들이 겹겹이 막아나서서 《상감마마, 백성들을 두고 어디로 가시옵니까.》 하고 한성백성들과 한가지로 통곡하였다. …
안세희는 여기까지 말하고 침통히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조헌은 리덕형이 왜놈장수들을 조선8도에 나누어보냈다는 명단을 평양에서 받았고 임금은 그때야 알고 피난을 서둘렀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한해전에 왜놈자객이 조선8도에 나누어보낼 왜장들을 임명해놓았다고 토설한 내용과 꼭 맞아떨어진것이고 그 비밀을 윤선각이 임금께 상주하도록 하였는데 한해가 늦어진 다음에야 임금이 알게 되였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는 안세희에게 이 사실을 자초지종 다 이야기하였다.
《으응, 그런 일이 있었나?! 그때면 일년전에 있은 일인데 임금이 모르고계셨구만. 그때에 아셨더라면 왜놈들을 방비할 계책을 더욱 튼튼히 세웠을것이고 오늘과 같이 비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수도 있었을것이 아닌가. 만약 윤선각이 그 사실을 상주하지 않았다면 역적질을 한것이네.》
안세희는 의분을 금치 못하였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주위가 어슬어슬 어두워왔다.
이때 덕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의병장님, 전부대가 떠날차비를 끝마치고 대장님의 명령을 기다리고있소이다.》
《음, 알았다. 내 곧 나가겠다.》
조헌은 얼른 일어나 벗어놓았던 전립을 썼다.
《전부대가 이 밤에 어디로 간다는건가?》
《충주의 왜적이 보은의 차령을 거쳐 옥천, 희연으로 침입해들어갈 흉계를 드러냈네. 이놈들을 쳐없애려고 차령으로 가기로 하였네.》
《하하하! 조헌의 의병대가 왜놈들을 치러간다! 그참 장한 일일세.》
《의병을 뭇고 첫 싸움이라네. 헌데 나를 찾아 사지판을 넘어온 선전관님을 함께 앉아 대접도 못하고… 이번 싸움을 이기고 크게 대접하겠네.》
《그래야지. 꼭 그렇게 해야 하겠네. 자, 어서 나가보게. 의병대가 전부 모여 기다리지 않나. 나도 함께 나가보겠네.》
안세희는 조헌의 의병대를 제눈으로 보고싶었다. 참으로 끝없이 칭찬해주고 한사람한사람 다 안아주고싶어지는것이였다.
조헌과 안세희는 공북루에 올랐다. 의병대는 공북루앞뜨락에 선봉위, 중군위, 좌군위, 우군위별로 대렬을 지어 정연히 서있었다. 매개 위장들은 말을 타고 자기들의 대오앞에 서있었다.
안세희는 가슴에 솟구치는 격정을 누르고 의병대를 끝에서 끝까지 바라보았다. 어깨우에 창과 칼이 숲을 이루고 하나같이 머리에 쓰고있는 흰두건은 마치 흰눈처럼 깨끗한 충의절개와 같이 안겨와 눈시울이 더워왔다. 이것만 보아도 이번 싸움이 이 사람들의 첫 싸움이 아니라 이미 수백번 싸워이긴 의병들처럼 느껴졌다. 조헌이야말로 대궐에 피를 뿌린 기개와 애국의 지조를 실지로 왜놈과의 싸움에서 보여주는 충신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의병들, 지금 저의 곁에는 상감마마의 어명을 받들고 우리 의병대를 찾아온 선전관이 서있습니다.》
조헌의병장이 목청을 가다듬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첫마디를 떼자 의병들은 삽시에 감격을 터뜨리며 술렁이였다. 그들은 임금이 멀고먼 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어디인가 몸가까이에 있는듯 느껴안으며 저저마다 솟구치는 무한한 힘을 안았다.
《선전관은 임금의 눈으로 우리 의병들이 왜놈을 치러나가는 모습을 보고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동쪽으로 300리를 가서 보은의 차령을 지켜야 합니다. 왜적은 남쪽으로 300리를 가서 보은의 차령을 넘어 옥천, 희연지경을 침입하려고 하고있습니다. 우리 의병들도 300리, 적들도 300리, 누가 먼저 차령을 차지하는가에 따라 이번 싸움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촌각이라도 적들보다 빨리, 이 하나의 생각만을 해야 합니다. 알만합니까?》
《알았소이다.》
의병들이 일제히 우렁차게 대답하였다.
안세희는 벅차오르는 흥분을 안고 의병들을 향해 한발자국 나섰다.
《충청도의병 여러분! 본관은 충청도의병대의 하늘을 찌를듯한 충의지조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경상도에서는 곽재우의병대가, 전라도에서는 고경명의병대가 들구일어나 왜적을 수없이 섬멸하였습니다. 여기 충청도에서는 조헌의병대 여러분들이 과감히 일떠섰습니다.
본관은 오늘밤 왜적을 치러나가는 충청도의병대가 반드시 이기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본관은 여러분들의 승리를 임금께 보고하겠습니다. 용감무쌍하게 왜적을 치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의병들은 창과 칼을 높이 들어 흔들면서 거세차게 환성을 터뜨리였다.
드디여 의병들의 씩씩한 대오가 공주성을 떠나갔다. 의병대의 맨 선두에 조헌이 말을 타고갔다. 안세희는 멀어져가는 의병들을 오래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