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2
(1)
보은의 차령싸움은 충청도의병대의 승리로 끝났다. 왜놈들은 의병대보다 이틀 늦어 차령을 넘어왔었다. 놈들이 이렇게 늦어진 까닭은 의병대의 행동을 몰랐으므로 제놈들의 버릇대로 지나오면서 거치는 고을들과 마을들을 략탈하면서 왔기때문이다. 놈들의 병력은 300놈이였다. 이것으로도 옥천, 희연지경을 식은죽먹기로 점령할수 있다고 여긴것이였다.
조헌은 령기슭의 무성한 숲속에 누구도 모르게 의병대를 매복시키고 싸움준비를 든든히 갖추도록 하였다.
의병 1 700여명이 왜적 300놈 쉽게 때려잡을수 있다고 자만할 근거는 없는것이다. 놈들은 저희 나라안에서 서로 세력을 다투면서 싸워온 사무라이들이고 전쟁에 단련된자들이였다. 또 극히 악착하고 교활한 놈들이고 조총까지 가지고있어서 어떤 뜻밖의 일이 생길지 알수 없는것이다. 반면에 의병들은 싸움을 겪어보지 못한 풋내기들이였다.
조헌은 의병들에게 불타는 적개심과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놈들의 수가 적다고 얕보지 말라, 경적필패란 말을 명심해라 하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왜놈들이 차령을 오르다가 난데없는 북소리와 더불어 사태처럼 쏟아져나오는 의병들에게 여지없이 몰살당하였다. 왜놈들중에 날랜 놈들이 정신을 차리고 맞받아나왔으나 오래 지탱해내지 못하고 이내 소멸되였다.
왜놈들과의 첫 싸움에서 크게 이긴 의병들은 사기충천하였다.
조헌의병장은 왜놈들의 병쟁기를 거두어들이도록 하였다. 그런데 왜놈들의 시체속에서 요행 살아남은 왜적 한놈이 살그머니 일어나 불이 나게 도망쳤다. 빠르기가 산토끼와 한가지였다.
선봉장 완기가 재빨리 화살을 메웠다.
《선봉장, 그놈을 그대로 놓아주게.》
의병장이 빙그레 웃으며 뜻있게 고개를 끄떡여보였다.
《의병장님은 무슨 다른 생각이 계시오이까?》
완기는 아버지를 의병장으로 부르군 하였다.
《저놈이 살아가야 충주성의 왜놈들이 시체를 거두러 올게 아닌가. 그때를 타서 그놈들도 마저 때려잡아야 해. 그러자면 저놈이 보는데서 우리가 여기를 떠나는척 해야 왜놈들이 안심하고 제놈들의 시체를 거두러 올거네.》
아닌게아니라 도망치던 왜놈이 화살이 미치지 않는곳까지 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조헌의병장은 의병들이 왜놈을 못본체하고 령마루를 넘어가도록 하였다. 징소리가 울리고 의병들이 전장을 떠나가는것을 한동안 숨어서 보던 왜놈이 그제야 다시 줄행랑을 놓아 달려가기 시작하였다.
왜놈들은 죽은 시체들을 모아놓고 반드시 불태우군 하였다.
이것을 알고있는 조헌의병장은 그에 맞게 계책을 세운것이다.
의병들은 차령을 넘어 깊은 산속으로 잦아들었다. 마치 모래속에 물이 스며들듯이-
한편 왜놈들의 주검이 널려있는것이 내다보이는 숲속에는 파수를 두어곳에 세워놓았다.
이번 싸움에서 왜놈들의 조총, 칼, 활들과 말 30필, 많은 군량미를 로획하였다. 조헌의병장은 즉시에 왜놈들의 조총으로 조총대를 뭇고 기마대를 내왔다.
왜놈들은 우리에게 없는 조총으로 우리 군사와 백성들을 놀래우면서 쳐들어왔다. 이제는 우리가 왜놈들을 조총으로 놀래울수 있게 해야 한다.
조헌의병장은 흐뭇하였다. 그는 이 며칠간만이라도 조총을 다룰수 있게 조총대를 훈련시키였다. 조총은 별게 아니였다. 새를 쏜다고 조총이라 하는데 화승총이다. 화승총이란 총신에 화약과 철알을 다져넣고 불을 달아 쏘는것에 불과한것이다.
이틀이 지나서 의병대는 차령의 무성한 숲속에 매복하고 시체를 거두러 오는 왜놈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흘째되는 날에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일이 벌어졌다. 어떤자들인지 열대여섯되는 놈들이 냄새나는 왜놈들의 시체들을 찾아다니며 목을 따서 자루속에 넣는것이 발견되였다. 시체를 거두러 온 왜놈들이라면 그 수가 작고 또 그 짓거리가 이상하였다. 어쨌든 저놈들을 가만히 두고 볼수 없었다.
조헌의병장은 완기선봉장의 기병대만을 갑자기 출동시켜 그놈들을 포위케 하였다.
죽은 왜놈들의 목을 따넣던자들은 기병대가 질풍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에워싸자 화닥닥 놀라 도망치려고 하였다. 왜놈들의 기마대라고 생각한것이였다.
《도망치지 말라. 우리는 조헌의병대다. 너희들은 우리 나라 관군이구나.》
완기는 푸른 더그레를 입고 산수털벙거지를 쓰고있는자들을 굽어보며 소리쳤다.
《예, 그렇소이다.》
관군 하나가 창피한듯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이였다.
《관군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있는가?》
《저- 우리는 서례원부사가…》
더그레자락이 해져서 너덜거리고 벙거지의 산수는 너리먹은 강아지꼬리같이 너슬너슬한 군사가 먹지 못해 눈확이 쑥 들어가고 광대뼈가 삐죽이 솟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대답을 얼버무리였다.
《음, 알만하다. 너희들이 서례원의 지시로 왜놈의 수급을 따가려고 왔구나, 제손으로 왜놈들을 죽이지 못했으니 남이 죽인 왜놈의 수급을 따가는구나. 그게 옳지?》
관군들은 그 물음에 대답을 못하였다.
《더러운자들이 더러운 생각을 했구나. 까마귀가 송장냄새를 맡고 백리밖에서도 날아든다더니 너희들도 까마귀 한가지냐? 우리 의병장님은 너희들에게 물어볼것을 물어보고 그대로 돌려보낼테니 어서 의병장님께 가자.》
조헌의병장은 그들을 측은히 여겨주고 친절하게 한사람, 한사람씩 나이도 물어주고 이름도 물어주고 또 어느 부대서 왔는가, 그 부대의 장수가 누구인가, 왜놈들과 싸워본 일이 있는가를 웃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