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6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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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사들은 여지껏 상전의 무지스런 욕설과 학대만을 받아오다가 조헌의 따스하고 다심한 인정에 감복되여 묻는대로 다 대답하였다.
《저희들의 장수는 부사 서례원이고 그우에 장수는 전라도관찰사 리광이오이다. 우리는 왜적과 싸워보지 못하고 쫓기기만 하였소이다.》
리광과 서례원이 있다는 계룡산은 산세가 험하여 적의 피해를 적게 받을만한 곳으로서 보은차령에서 200여리 떨어진 곳에 있다.
리광은 지난 6월초에 하3도군사 6만을 총지휘하여 한성을 향해가다가 왜적과 맞다들어 패하고 흩어졌는데 리광에게 속해있던 서례원은 제가 거느린 군사들을 데리고 계룡산의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셈이다.
《너희들이 제손으로 적을 치지 못하고 남이 세운 공을 제공으로 만들자는것은 비렬한짓이다. 너희들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너희들이 하고싶어 하는것은 아니고 상전의 지시를 거부할수 없기에 더러운 일을 하는줄을 나도 안다.》
군사들은 자기들의 심정을 다 털어놓았다.
《상전의 지시만 없었다면 우리가 이런짓을 하지 못하였을것이지만 우리에게도 리익이 있을가 하여 여기까지 왔소이다. 왜놈수급 하나를 따오면 노비신분을 벗겨주고 두개를 따오면 부역과 공납을 면제해주고 세개를 따오면 그 공을 크게 쳐서 무엇도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이런짓을 하지 않을수 없었소이다.》
《그건 옳다. 공은 공대로 사주어야 모든 군사들이 분발하여 왜놈들을 칠게 아니냐. 그러나 남의 팔매에 밤을 주어먹는것은 옳지 않다. 그리 알고 너희들은 돌아가라. 너희들은 제손으로 목을 딸 왜놈들이 많고많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용감하게 싸워서 너희들의 희망을 성취하라. 나의 이 말을 너희네 동료군사들에게도 전하고 서례원부사에게도 하여라.》
조헌의병장은 그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여주고 이왕이면 이미 자루에 따넣었던 왜놈의 수급까지도 그대로 가지고가라고 하자 모두 땅에 엎드려 아뢰였다.
《고맙소이다. 의병장님. 하오나 의병장님이 일일이 가르치신 말씀을 받은 우리로서 어찌 왜놈의 수급을 가져가겠소이까. 반드시 우리 손으로 왜놈을 치고 그 수급을 따리다.》
《허허, 그 대답이 장하고나. 꼭 그렇게들 의기를 가다듬어라.》
조헌이 기쁘게 웃는데 덕보가 의병장앞으로 급히 다가왔다.
《의병장님, 왜적 50여놈이 5리밖에 나타났다는 신호가 왔소이다.》
《음, 놈들이 이제야 시체를 거두러 오는게군. 모든 의병들은 적들의 눈에 띄우지 않도록 매복을 단단히 하고 기다리게 하라.》
《알겠소이다.》
덕보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대들은 자기 부대로 어서 떠나가도록 하오. 우리들은 시체를 거두러 오는 왜적을 마저 잡아치워야 하겠소.》
조헌이 급히 일어나면서 권고하였다. 그런데 군사들은 예상치 않게 하나같이 말하였다.
《의병장님, 우리도 여기 있다가 산 왜놈들의 목을 우리 손으로 따도록 허락하여주시오이다.》
《하하하. 그게 좋겠구만. 그렇게 하오. 그러되 우리 기병대가 땅을 박차고 나갈 때 함께 따라나가야 하오, 기병대보다 먼저 나가면 왜놈들이 달아날수 있을테니까.》
이리하여 서례원의 군사들 열다섯도 숲속에 매복하였다.
잠시후에 말탄 왜놈 셋이 의병들이 매복하고있는 산기슭을 두릿두릿 살펴보면서 오고 그 뒤로 활 한바탕사이를 두고 왜졸 50여놈이 따라왔다. 말을 탄 놈들은 척후조인것같았다.
만약 우리 의병대에서 누구 하나라도 바싹하면 적들은 재빨리 도망할 차비였다. 그러나 척후놈들의 눈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까마귀 두세놈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본 왜놈들은 안심한듯 제놈들의 시체가 널려져있는 곳까지 왔다. 하지만 말들을 멈춰세우고 가까운 좌우산기슭을 참빗질을 하듯 훑어보고 또 보면서 무슨 소리가 나지 않는가 하고 귀를 도사리군 하였다. 놈들의 눈과 귀에 아무런 이상한 점도 걸려들지 않았다. 드디여 왜놈들의 무리 50여놈이 가까이 접어들어 제놈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아놓기 시작하였다.
이때를 기다리고있던 조헌의병장은 싸움북소리를 세차게 울리도록 하였다.
북소리와 함께 완기선봉장의 기병대는 《왜놈을 쳐라!》하고 웨치면서 질풍처럼 산굽이를 돌아나왔다. 그와 함께 산기슭에 매복하였던 의병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나왔는데 그속에는 서례원의 관군 열다섯도 창과 칼을 휘두르며 용기백배 달려나아갔다.
기병대의 폭풍같은 급습에 얼혼이 빠진 왜놈들은 도망칠사이도 없이 모조리 죽음을 당하였다. 싸움은 눈깜빡할 사이에 끝났다.
관군 열다섯이 다 살아서 왜놈들의 수급을 땄다. 왜적이 온다는 말만 듣고도 달아나던 그들이 어디서 용맹이 솟아올랐는가. 그것은 명장아래 약졸이 없다는 고사성구에 바탕을 둔것인가. 열다섯 관군들은 그것을 다 몰랐지만 조헌의병장이 자기들의 비렬한 행위를 관대하게 용서해주고 친혈육과도 같은 정을 주었기에 이같은 힘과 용기를 얻은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힘과 용기는 사람들의 애국열기에서 솟아난것이다. 그러나 그 애국열기를 북돋아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안되는것이다.
조헌의병장이 늘 숭상하고 지켜가는것 즉 민심은 하늘이 준 기회보다 낫고 자연지형보다 낫다는 그 리치,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고 민심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는 그 하나, 《인자무적》의 리치는 이렇듯 귀중한것이다.
《인자무적》의 교훈을 강직하게, 대바르게 지켜가는 조헌의병장이 있었기에 윤선각이 의병들을 해산시켰지만 또다시 백성들이 조헌의 곁으로 모여와 의병이 되였었고 이번 싸움에서도 이겼던것이다. 의병들도 열다섯 관군들도 이렇게까지는 깊이 깨닫지 못하였지만 조헌의병장과 함께라면 왜적이 두렵지 않고 그놈들을 얼마든지 쳐부실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조헌의병장은 이번 차령싸움에서 공을 세운 의병들의 이름을 단자에 빠짐없이 적어넣었다. 후날 임금께 상주하여 그들이 표창을 받을수 있도록 하려는것이였다. 그것으로 노비출신이라면 노비신분에서 벗어나고 량인이라면 벼슬도 할수 있고 덕보와 같이 죄아닌 죄로 변성명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본래의 자기 이름을 되찾고 떳떳이 살아가게 해주고싶었다.
그는 의병대의 싸움준비를 더욱 빈틈없이 갖추어놓으면서 차령에 얼마간 머물러있었다. 왜적이 차령의 복수를 위해 이곳으로 다시 짓쳐나올수 있었던것이다.
닷새가 지나고 또 닷새가 지났지만 충주의 적은 오지 않았다. 차령에는 충청도의병장 조헌이 있으니 그와는 맞서지 말라는 적장의 명령이 있었던것이다. 조헌의병장도 의병들도 이것을 몰랐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조헌의 의병대는 보은차령을 굳건히 지키였다. 그 덕분에 차령의 이남지역은 여러 고을이 편안해지고 일상적인 생업을 이어나갈수 있었다.
백성들은 의병대가 너무 고마와 자기들은 풀죽을 쑤어먹을지라도 군량을 이고 지고 의병대를 찾아왔다. 간악한 왜놈의 손에 죽음을 당할 사지에 빠져든 자기들을 건져냈으니 의병대를 위해선 굶어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것이다.
가솔을 이끌고 피난할 궁리를 하던 장정들도 그럴 리유가 없어지자 의병대에 들어와 칼을 잡았다. 조헌의 의병대는 차령싸움후에 2천여명으로 불어났다. 더우기 힘을 주는것은 조총대가 60여명으로 늘어나고 기마대가 50필로 자라난것이였다. 의병대는 왜멸위국의 기개로 세차게 들끓었다.
조헌의병장은 적을 앉아 기다릴수 없었다. 왜적을 찾아가 쳐야 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는 먼저 청주성의 왜적을 격멸하고 청주성을 탈환하여 왜적의 보급로를 끊어놓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청주성에 독뱀처럼 또아리를 틀고있는 왜적의 형세를 알아야 했다. 그는 해동이를 불러 렴탐해오도록 하였다. 했더니 청주성의 왜적은 3 000~4 000이고 서문, 남문, 북문 세개의 성문에 밤낮으로 파수를 세워놓고있으며 성가퀴마다 화포를 걸어놓았다고 하였다. 동쪽에는 산줄기로 막혀있어서 성문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날마다 중낮때이면 어디서 오는지 300여놈의 왜적들이 성안으로 들어간다는것이다. 이렇게 왜적의 병력이 매일 늘어나는것인데 사흘이면 1 000여놈이 불어나는셈이다. 이렇게 되면 2 000의 의병으로는 적을 이길수 없는것이다.
조헌의병장은 날마다 청주성으로 기여든다는 왜놈들이 어디서 어느 길로 오는지 알수 없었다. 먼저 이놈들을 때려잡아야 청주성을 탈환할수 있었다.
조헌의병장은 또다시 해동이를 불러 이것을 시급히 알아내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