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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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동안 철산봉골짜기들을 휩쓸며 사납게 불어대던 바람은 저녁노을이 스러진무렵에야 숙어들었다. 어느새 자락을 드리운 밤하늘에는 보름이 돼오는 달이 떠올라 연연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오가는 대형차들로 분주스러운 파쇄장쪽의 산지도로에 한사람이 나타났다. 무릎까지 오는 갈색솜옷에 같은 색갈의 털모자를 쓴 그 사람은 내각부총리 주영호였다.

그는 방금 나선 파쇄장쪽을 흘깃 한번 돌아보고나서 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는데 한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오가는 대형차들이 들씌우는 먼지구름도 피할념을 못하고있었다.

얼마전에 무산광산을 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광산일이 잘되지 않아 당중앙위원회료해소조를 파견하시였다. 이후 금속공업부문을 담당한 주영호를 부르신 그이께서는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료해하고 무산광산개건현대화안을 세울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무산에 내려와 현장을 돌아본 주영호는 실태가 기가 막힌것은 둘째이고 개건현대화를 무슨 방법으로 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을 할수가 없었다.

이 저녁에 일부러 파쇄장에 오른것도 사실은 머리도 쉬울겸 방도를 궁리해보느라 한 걸음이였다.

《여보시오.》

어디선가 목이 좀 쉰듯 하나 어지간히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영호는 잡념에서 깨여나 머리를 들었다.

《이거 손을 좀 빌려주지 않겠습니까?》

목소리는 길 가까운 저쪽 한켠에 서있는 대형정광수송용화물차에서 들려왔다.

《여깁니다, 여기.》

머뭇거리는데 약간 쳐들린 앞바퀴뒤에서 한사람이 불쑥 상체를 내밀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어스름한 달빛에다 회색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써서 나이가 가늠이 가지 않아보이는 사람이였다. 이어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늙어보이는 사람과 스키모자를 뒤통수에 눌러붙인 조수 비슷한 애젊은 청년이 얼굴을 나타냈다.

가보니 뒤바퀴가 물러앉아 쟈끼로 들어올리던 참이였는데 차가 대형차인데다가 만짐까지 실어 세사람의 힘으로는 부쳤던 모양이였다.

가까이 다가가 솜옷을 벗으려던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를 불렀던 키가 꺽두룩한 사람이 다름아닌 함경북도당위원회 부장 최정봉이였던것이다.

주영호는 그와 오래전부터 면식이 있었다. 면식정도가 아니라 최정봉이 한때 경제사업을 맡아보면서 일련의 실무적인 문제로 하여 얼굴도 붉히고 고락도 같이 나누었던 그야말로 구면지기였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무산에, 더우기 이 산지도로에 나타났을가?)

영호가 알은체를 하려 하자 최정봉이 한눈을 끔쩍하며 말하지 말라는 식으로 한손을 약간 저었다. 그는 솜옷과 털모자를 벗어 차전조등우에 던지고나서 팔소매를 썩썩 걷어붙이였다. 도와줄품이 그리 작은것같지 않아 머리쉼도 할겸 한바탕 땀을 흘리고싶었다.

주영호까지 넷이서 힘을 합치니 쟈끼는 쉽게 들어올릴수 있었다. 막 바퀴를 해체하려는데 최정봉의 뒤에 나타났던 늙수그레한 사람이 《안되겠수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병물리기지요.》 하면서 머리를 젓는 바람에 작업은 우습게 끝나버렸다.

그 사람이 조수인듯한 청년에게 뭐라고 말하자 그는 머리를 굽석하더니 운광사업소쪽으로 뻗은 갈래길로 냅다 달려가는것이였다.

《안되겠소, 동갑이?》

최정봉이 늙수그레한 사람에게 물었다.

《내 말하지 않습니까, 죽은 사람 산소병물리기라고.》

《사업소차들의 기술상태가 전반적으로 어떻습니까? 다 이러한가요?》

《차가 문제는 아니지요. 책임비서동무도 료해하셨겠지만 운광은 일없습니다. 고장나면 수리하면 되는것이고 차바퀴가 없으면 재생하면 되는것이고.

문제는 파쇄와 선광공정에 있습니다. 이 공정들때문에 우리 광산이 목이 메 그러지요.》

책임비서?! 그러니 최정봉이 새로 왔다는 무산광산 책임비서란 말인가.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이기에 책임비서가 동갑이라고 친숙하게 부르는것일가.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구 수리차가 올 동안 몸을 녹이면서 담배나 태웁시다. 손님도 이리 옵소.》

늙수그레한 사람이 차곁에 피워놓은 자그마한 불무지로 주영호를 불렀다. 불무지는 젖은 나무가지를 올려놓아 그런지 기운이 약하였다.

《한데 손님은 어디서 오셨는가요?》

이번에는 최정봉이 난처한 기색으로 영호의 얼굴을 띠여본다. 주영호는 솜옷저고리를 집어들며 그리로 다가갔다.

《예, 전 평양에서 온 출장손님입니다.》

《음- 그럼 새로 들여온다는 원추형파쇄기때문에 오신거구만. 방금은 파쇄기놓을 자리를 보러 올라갔다오신 걸음일거구.》

《잘 아시는구만요. 예, 옳습니다.》

그는 늙은 사람의 아는체에 그냥 같은 모양으로 응대했다.

《아바인 예서 운전수를 하는가요?》

《운전수지요, 운광사업소 천리선이라고. 무산 운광에서 하두 오래 있다나니 이젠 골동이라고 부릅니다.》

늙은 운전수는 옷을 다 입고 때마침 불무지로 다가선 최정봉에게 돌아섰다.

《인사들 하시우. 이분은 우리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책임비서동무입니다.》

천리선이라고 불리우는 대형차운전수덕분에 따분하게 될번했던 좌석이 다행스럽게 되였다.

주영호는 둥글한 버럭덩이우에 벙어리장갑을 깔고앉아 담배곽을 꺼내들었다.

《무산 오면 그런 담배가 맛이 없지요. 동갑이, 독초 한대 주겠소?》

최정봉이 그가 권하는 담배를 마다하며 천리선에게 손을 내밀자 운전수의 입귀가 벙글써 열리였다.

《슬슬 얼리면서 맛을 보아야지 담배 독합니다.》

운전수가 자그마한 성냥곽만한 크기의 종이에 담배잎을 담으며 하는 말이였다.

《글쎄 저도 무산독초 유명하다는 말을 평양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한번 피워봅시다. 독초래두 나같은 담배질군한테야 어디까지나 담배야 담배겠지요.》

주영호는 천리선이 말아내미는 대가 실한 애기나팔꽃같은 담배를 받아들고 침을 발라붙였다. 금시 불이 붙은 나무가지를 꺼내들어 담배에 갖다댄 영호는 첫모금을 걸탐스레 빨았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눈앞에서 불찌가 어지럽게 튄다. 그다음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들.

《어-어- 이거 참, 음- 정말 어지간한 담배로군.》

주영호는 가슴을 두드리며 연방 줄기침을 터뜨렸다. 어떻게나 독하고 매운지 눈물까지 절로 나온다.

《그것 보시오, 얼리면서 피우라는데. 담배가 오죽 독했으면 이 지방 사람들이 무산독초를 꺽 막힘이라고 별명지었겠습니까.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이번엔 좀 나을겁니다.》

《아니아니, 암만 그렇지만서두 아니, 난 더 피우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최정봉에게 손을 홰홰 저으면서 눈물을 닦으며 담배를 불무지에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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