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4

 

조헌의병장은 덕보와 해동이를 데리고 령규승병대가 웅거하고있는 거대령을 넘어 안심골을 찾아갔다.

그들 세 사람이 안심골 안심사의 지붕이 나무가지사이로 가까이 바라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섰을 때 갑자기 창을 꼬나든 승병 하나가 그들을 멈춰세웠다.

《누구냐? 꼼짝말아.》

《허허, 승병이로구만. 소인은 조헌이라는 사람이오이다.》

조헌의병장이 반갑게 웃으니 승병은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조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하더니 낯색이 밝게 풀리였다.

그는 고누었던 창을 제꺽 거두고 두손을 공손히 합장하고 례절을 차리였다.

《소승이 잘못 보고 단속하였소이다. 의병장님의 명함을 들으니 반갑소이다. 소문이 돌던 그 다박수염을 보니 조헌의병장님이 확실하와 기쁘기 만장이오이다.》

《허허… 다박수염이야 어디 나 혼자뿐이오이까. 다른 사람들도 기르고있는걸…》

《그래도 조헌의병장님의 다박수염이 유명하오니 다른 사람의 다박수염하고야 다르오이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

덕보와 해동이도 왜 그런지 기분이 좋아져서 즐겁게 웃었다.

《아니, 내 수염이 유명하다니 그건 웬 소리요?》

《그 수염만 한번 움씰하면 왜적이 녹아난다는 소문이 났소이다.》

《원, 이런 헛소문이라구야. 하하… 그건 당치않은 소문이라오. 소문난 잔치 먹을게 없다는 소리를 못들으셨소? 자, 어서 령규승병장님을 만나게 해주시오이다.》

조헌의병장은 자기에 대한 소문이 크게 과장된것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의병대가 겨우 두번밖에 왜놈을 치지 못하였는데 왜 이런 소문이 났을가 하고 생각하여보았다.

그것은 그 누가 한놈의 왜놈을 목베였다 해도 열놈을 목베인듯이 기뻐하고 열놈을 치면 백놈을 친것처럼 기뻐하는 우리 백성들의 하나같은 마음의 반영이다. 그런 소문으로 왜놈들을 질겁하게 하고 우리 백성들을 고무하여 너도나도 일어나 왜놈들을 무찔러버리도록 하려는 지향이 담긴것이다. 그랬다. 왜적의 발길에 흙담처럼 무너지는 고을과 고을을 굳건히 지켜내는 장수들이 도처에서 나오고 장수의 령을 따라 마음껏 싸우고싶어하는 소원이 낳은것이다.

왜적이 무서워 도망하는 방어사요, 병마절도사요, 감사요 하는 자들의 비겁과 무능탓에 나라가 망해가는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백성들이기에 자그마한 의병대로 왜적을 치는 의병장 하나만 나와도 이처럼 반가와하고 크게 소문을 내는것이라고 조헌은 생각하였다. 그는 백성들의 이 마음을 안고 왜놈들을 무자비하게 치리라고 속다짐을 굳게 하였다.

조헌은 승병의 안내를 받으며 안심사의 돌계단으로 올라갔다.

조헌의병장이 대웅전뜨락어귀에 들어서자 령규승병장이 반가운 웃음을 환히 담고 뜨락 한가운데로 급히 마주나왔다.

《조헌의병장님!》

《령규승병장님!》

두사람은 서로 부르며 찾으며 마주나갔다. 그들은 손과 손을 맞잡고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어제밤 꿈에 소승이 의병장님을 찾아가 뵈웠는데 생시에는 의병장님이 소승을 찾아오셨군요, 자, 어서 들어가시오이다.》

령규승병장은 조헌의 손을 잡아끌면서 덕보와 해동이를 재촉하였다. 그들은 주지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령규승병장은 덕보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승병장님, 덕보 스님께 문안드립니다.》

덕보는 두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령규승병장앞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드리였다.

령규승병장은 놀라듯 《아니, 덕보라니? 덕보야 신각부원수의 군사인데 어찌 여기에… 응?! 진정 덕보라면 어디 보자.》 하고 얼른 덕보를 손잡아 일으키였다.

《네가 참말 덕보가 옳구나! 지난해 조헌의병장님의 편지를 가지고왔던 덕보로구나.》

령규승병장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환히 웃는데 이번에는 해동이가 그의 앞에 나와 큰절을 드리였다.

《승병장님, 그간 안녕하셨소이까. 몇해전에 마천령에서 뵙고는 처음 뵈오니 감회가 깊소이다.》

《마천령?!》

령규승병장이 기억을 더듬듯 잠시 사이를 두자 조헌의병장이 지난 일을 깨우쳐주었다.

그러자 령규승병장은 《아, 마천령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 소승을 구원해주었던 그때 그 사람이였군. 은인을 몰라보았으니 죄송하오이다.》 하고 두손을 합장해보이며 머리를 숙여 심심히 사례하였다.

《원참, 별말씀을 하시오이다. 그때 스님이 택견으로 호랑이를 능히 때려눕히는건데 우리가 괜히 달려들어 그놈을 놓치게 하였을뿐이오다. 하하하.》

《아니오이다. 호환을 당할번하였소이다.》

《그런데 오늘은 호환보다 더한 왜환을 만난셈이오이다. 이번엔 놓치지 말구 왜적을 살려보내지 맙시다.》

조헌의병장의 비유가 신통하여 모두 통쾌하게 웃었다.

동자중이 어느 사이 김이 모록모록 오르는 차고뿌들을 다반에 담아들고 들어왔다. 그뒤로 젊고 건장한 중 두사람이 들어왔다. 그들은 령규승병장의 비장과 모사였다.

그들은 이내 서로 힘을 합쳐 청주성을 치고 해방할데 대하여 심중히 의논하였다.

먼저 자기들이 그동안 여러가지 계책과 지혜로 왜놈들을 어떻게 때려잡았는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으며 그 경험과 교훈을 나누었다.

또한 청주성의 왜적력량, 그 방비상태와 의병 2 000과 승병 800을 합친 아군의 력량과 적의 력량을 대비하였다. 적은 3 000여명이고 아군도 거의 3 000명이다. 력량상차이는 없다 해도 성안에 있는 적을 이기자면 적들이 상상할수 없는 뛰여난 지략을 펼쳐야 하였다. 그들은 이를 두고 오래동안 의논하고 세밀한 작전계획을 빈틈없이 세웠다.

날자와 싸움개시시간, 전투분담구역을 확정하였다. 두 의병대는 큰 하나가 되여 서문을 깨치고 성안으로 돌입하자고 결심하였다.

남문으로는 의병대의 한개 위를 떼내여 허위공격작전을 벌리도록 하였다.

북문은 누가 담당하겠는가. 력량이 없었다. 그렇다고 력량을 분산시킬수는 없었다. 차라리 왜놈들이 도망칠 길을 내놓아주는것도 나쁘지 않다. 쥐새끼도 도망할 길이 없으면 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되면 의병들과 승병들속에서 희생자들이 많아질것이다. 그러나 도망하는 왜적들을 살려두는것도 분한 일이다.

조헌은 념주알을 하나씩하나씩 세여넘기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령규승병장에게 자기의 의향을 내놓았다.

《승병장님, 윤선각의 관군에게 북문을 담당해 달라고 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소이다. 허허허.》

《윤선각의 관군? 그들이 나설만한 용기가 있겠소이까? 2만이 넘어되는 군사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왜적을 치지 않은 윤선각인데.》 하고 령규승병장이 껄껄 웃었다.

조헌은 승병장의 심중이 리해되여 빙그레 웃었다.

《관군은 왜적을 치지 못한것을 조정에 보고할수 없으니까 남이 죽인 왜적의 목을 따다가 바쳐서 저들의 공으로 만드는 비렬한짓을 하고있소이다. 허허허.》

조헌의병장이 차령싸움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자 령규승병장과 그의 비장, 모사들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뿐인줄 아시오이까. 그자들은 왜놈의 수급을 돈으로 사가지고 자기들이 직접 왜놈들을 잡은듯이 해서 벼슬을 올리는데 써먹고있소이다.》

《하하하!》

《하-하-하-》

《그러면 관군이 제손으로 왜놈의 목을 따도록 우리가 도와줍시다. 이번 청주성싸움에서 북문으로 쫓겨나오는 왜적을 매복하였다가 쉽게 적을 치고 쉽게 적의 목을 따도록 해서 공을 세우게 합시다.》

《네. 그렇게 합시다. 우리는 한놈의 왜놈이라도 없애치우자는것이니 이랬든저랬든 관군에게 기회를 주어봅시다.》

이리하여 북문으로 쫓겨나오는 왜놈들을 관군이 잡아없애도록 련계를 취할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만약 적에게 패한다 해도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자고 피로써 서약하였다. 그것은 죽음을 각오한 비장하고도 엄숙한 맹세였다.

7월 그믐날밤에 어둠을 타서 청주성밖에 매복진을 쳤다가 날밝는 새벽에 일제히 공격해야 할 8월초하루, 이날은 그들이 맹세를 지켜 죽고사는 운명적인 날이다.

의병들과 승병들이 이날을 택한것은 천기를 잘 내다보는 조헌과 령규가 이날을 앞두고 큰비가 내릴것으로 판단하였기때문이였다.

달무리와 해무리, 며칠째 불어오는 습기찬 서북풍, 아침노을과 저녁노을의 색갈들을 가늠해보면 그믐전날부터 많은 무더기비가 내릴것이였다.

왜놈들은 퍼붓는 비발아래 화약이 젖고 활이 젖어들어 조총과 활짓을 제대로 하지 못할것이지만 우리 의병들과 승병들은 비가 올것을 미리 알고 조총의 화약과 활이 젖지 않게 할수 있었던것이다. 뿐만아니라 비가 내리는 밤이여서 칠흑같은 어둠과 비바람소리, 나무들이 설레이는 소리가 왜놈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할것이였다.

의병들속에는 청주성의 지형지물을 손금같이 꿰들고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들이 태여나 자라난 사랑하는 땅인것이다.

승병들은 싸움전날에 성안의 우물가운데서 왜놈들의 군영가까이에 있는 우물들에 비상을 한되박씩 풀어넣을것과 조헌의 의병들은 싸움당일인 8월초하루 날밝을무렵 왜놈들의 화약창고를 폭파시키고 그 폭파소리를 두 의병대의 총공격신호로 하자고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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