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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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적.
침묵.
무엇인가를 배태한 무거운 정적.
산소분리기현장에 들어서신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판국인가.)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 도착하신
《산소분리기가 왜 이렇게 되였소?》
《팽창기와 산소압축기랑 산소분리기를 가동시키는데 필요한 중요부분품들의 수명이… 수명이 다되였거나 고장이 빈번해서…》
더듬거리며 말끝을 잇지 못하는 김중건이였다.
《그러니까 이 산소분리기는 완전히 죽었다는거요?》
《죄송합니다,
김중건은 아예 얼굴이 새까매져가지고 눈을 발치에서 들지 못하였다. 불이 꺼진 해탄로며 소결로, 평로들, 그외의 만족스럽지 못한 여러
생산공정을
가없이 넓은 하늘에서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아침노을이 빛을 뿌리고 어디선가 이름모를 뭇새들의 지저귐만 들려오는 직장구내는 끝없는 정적속에 잠겨있었다.
산소분리기가 설치된 현장건물앞에서 거니시기를 몇번인지 모르시였다. 말씀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는
1992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밤
그 산책길에서
《내 오늘 황철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너무 기뻐 술을 들었소, 병팔동무(황해제철련합기업소 전 지배인)에게 술 석잔도 부어주었고. 산소열법으로 기어이 우리 철을 뽑아내겠다는 결의를 들으니 속이 어찌나 후련한지. 병팔이네가 용소. 역시 조선사람의 두뇌는 비상하거던.
조직비서동무도 아다싶이 지난 시기 력청탄과 원유납입이 잘 안되여서 우리가 보통 애를 먹었소? 그나마 동유럽이 무너지고 크레믈리에서 붉은기가 내려지고, 그래서 사회주의의정무역이라는 허울마저 없어지니 이제는 우리가 애를 먹는 정도가 아니라 멱을 잡히게 되였거던.
여기에 적대세력들이 공화국의 운명을 두고 쾌재를 부르며 무슨 붕괴시간표까지 내걸고 핵소동과 병행하여 우리 경제를 질식시키는 제재항목을 짜놓고있질 않소.
사회주의도 지켜내고 인민생활을 펴자면 우리 철을 뽑아야 돼.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것같소. 황철만 아니라 김철에서두 우리걸 뽑아내야 하구 성강이나 천리마제강도 잡도릴 단단히 하구 주체철생산체계로 넘어가야 하오.》
산소열법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개척과정은 이름그대로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황철은 겹겹이 가로막는 시련과 난관을 헤치며 산소열법용광로설계도를 완성하고 시험에서 성공하였다.
내각에서 국가계획에 물린 기본건설대상들에 황철도 포함시킨 문건이
(그런데 황철은 여태껏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중량레루생산공정과 5. 14직장의 회전로는 녹을 뒤집어쓴채 그냥 서있고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은 단조직장에서 한번 해보고 만세를 부르고는 용광로가스와 발생로가스가 없다고 그만두고 기업소의 주체화대상에서 첫째가는 대상인 산소열법용광로는 산소분리기가 애를 먹여 포기해버리고는 전망계획에나 넣고. 말그대로 황철은 무산광산처럼 침체와 답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건너만 바라보고있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것인가. 무슨 원인이 황철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부진에 이르게 하였단 말인가.
나는 그래도 언제인가 내각에서 올라온 제의서에 제구실을 못하는 황철의 급을 낮추고 남아도는 로력은 신계-곡산미루벌등판개간에 동원시키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는것을 보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황철의 어려움은 일시적이고 반드시 일어설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런데 황철의 정신상태가 집중적으로 반영된 이 산소분리기를 보니 내각의 견해가 바이 틀리지 않았다. 비날론동무들이 왜 황철의 산소분리기를 자기들한테 도로 이관해줬으면 하는지 그 리유를 이제야 알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