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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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적.

침묵.

무엇인가를 배태한 무거운 정적.

산소분리기현장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짙게 풍기는 녹이 썩은 습한 냄새, 벽체의 구석구석을 차지하다못해 천정으로, 벽면으로 얼기설기 뻗어간 거미줄들, 시누렇다못해 퍼리끄레한 녹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뒹굴고있는 산소압축기며 가름봉, 각이한 크기의 치차들과 꽁다리용접봉들, 산소분리기는 이런 불미스러운 풍경을 거느리고 현장 한가운데 설치되여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완전한 파괴를 숙명으로 감수하고 묵묵히 서있는 철거중인 아빠트를 련상시키였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판국인가.)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 도착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2. 8비날론련합기업소의 일군들의 제기가 무근거한것이 아니라는것을 확인하게 되시였다. 그러시면서도 이런 모습을 한 산소분리기를 보시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몇걸음 뒤에 서있는 김중건을 찾으시였다.

《산소분리기가 왜 이렇게 되였소?》

《팽창기와 산소압축기랑 산소분리기를 가동시키는데 필요한 중요부분품들의 수명이… 수명이 다되였거나 고장이 빈번해서…》

더듬거리며 말끝을 잇지 못하는 김중건이였다.

《그러니까 이 산소분리기는 완전히 죽었다는거요?》

《죄송합니다, 장군님.》

김중건은 아예 얼굴이 새까매져가지고 눈을 발치에서 들지 못하였다. 불이 꺼진 해탄로며 소결로, 평로들, 그외의 만족스럽지 못한 여러 생산공정을 그이께 보여드린것만 해도 죄스러움에 땀이 등골을 적시였는데 산소분리기현장에 들어서자 더는 설명드릴 엄두를 낼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가없이 넓은 하늘에서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아침노을이 빛을 뿌리고 어디선가 이름모를 뭇새들의 지저귐만 들려오는 직장구내는 끝없는 정적속에 잠겨있었다.

산소분리기가 설치된 현장건물앞에서 거니시기를 몇번인지 모르시였다. 말씀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들은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기만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속에서 불이 이는것같으시여 야전솜옷의 웃단추를 하나 벗기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늘 이렇게도 피페해진 황해제철소를, 운명직전에 처한 황철의 주체철도입실태를 아셨더라면 뭐라고 말씀하시겠는가.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앞에 크나큰 자책감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서 산소열법기술을 개척하였다는 소식에 접하시고 그리도 기뻐하시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1992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밤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집무실에 들어서신 그이께 오래간만에 함께 밤산책을 하자고 권하시였다.

그 산책길에서 수령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내 오늘 황철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너무 기뻐 술을 들었소, 병팔동무(황해제철련합기업소 전 지배인)에게 술 석잔도 부어주었고. 산소열법으로 기어이 우리 철을 뽑아내겠다는 결의를 들으니 속이 어찌나 후련한지. 병팔이네가 용소. 역시 조선사람의 두뇌는 비상하거던.

조직비서동무도 아다싶이 지난 시기 력청탄과 원유납입이 잘 안되여서 우리가 보통 애를 먹었소? 그나마 동유럽이 무너지고 크레믈리에서 붉은기가 내려지고, 그래서 사회주의의정무역이라는 허울마저 없어지니 이제는 우리가 애를 먹는 정도가 아니라 멱을 잡히게 되였거던.

여기에 적대세력들이 공화국의 운명을 두고 쾌재를 부르며 무슨 붕괴시간표까지 내걸고 핵소동과 병행하여 우리 경제를 질식시키는 제재항목을 짜놓고있질 않소.

사회주의도 지켜내고 인민생활을 펴자면 우리 철을 뽑아야 돼.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것같소. 황철만 아니라 김철에서두 우리걸 뽑아내야 하구 성강이나 천리마제강도 잡도릴 단단히 하구 주체철생산체계로 넘어가야 하오.》

산소열법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개척과정은 이름그대로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황철은 겹겹이 가로막는 시련과 난관을 헤치며 산소열법용광로설계도를 완성하고 시험에서 성공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소식을 인민군군부대를 현지시찰하는 길에서 들으시였다. 그때 그이께서는 너무 기뻐 수령님 생각이 나시여 책임일군들이 직접 산소열법시험을 성공시킨 황철사람들에게 자신의 명의로 술도 부어주고 식사도 나누며 축하를 해주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해당부문 일군들에게 산소열법시험성공을 공업화하는데 빨리 착수하도록 임무를 주시였다.

내각에서 국가계획에 물린 기본건설대상들에 황철도 포함시킨 문건이 그이께 올라온것은 그 직후였다. 순서를 보시니 황철의 산소열법용광로는 맨 마지막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많은 생각을 하시던 끝에 문건여백에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산소열법용광로-이것만 한다고 써넣으시였다.

(그런데 황철은 여태껏 무엇을 하고있었는가. 중량레루생산공정과 5. 14직장의 회전로는 녹을 뒤집어쓴채 그냥 서있고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은 단조직장에서 한번 해보고 만세를 부르고는 용광로가스와 발생로가스가 없다고 그만두고 기업소의 주체화대상에서 첫째가는 대상인 산소열법용광로는 산소분리기가 애를 먹여 포기해버리고는 전망계획에나 넣고. 말그대로 황철은 무산광산처럼 침체와 답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건너만 바라보고있지 않는가.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것인가. 무슨 원인이 황철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부진에 이르게 하였단 말인가.

나는 그래도 언제인가 내각에서 올라온 제의서에 제구실을 못하는 황철의 급을 낮추고 남아도는 로력은 신계-곡산미루벌등판개간에 동원시키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는것을 보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황철의 어려움은 일시적이고 반드시 일어설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런데 황철의 정신상태가 집중적으로 반영된 이 산소분리기를 보니 내각의 견해가 바이 틀리지 않았다. 비날론동무들이 왜 황철의 산소분리기를 자기들한테 도로 이관해줬으면 하는지 그 리유를 이제야 알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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