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5

(2)

 

안세희는 그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관찰사어른은 주립을 쓰시오이다. 이제부터 란시에 해야 할 일을 의논해보도록 합시다.》

《응, 그래야지. 주찬은 뒤끝에 해야지. 허허허.》

윤선각은 품계높은 어른답게 당황한 자신을 수습하느라고 주립을 받아썼다.

《임금께서는 소신에게 충청도관찰사가 왜란이 터진 후에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아오라고 하였소이다. 어서 말씀해주시오이다.》

안세희는 상대가 품계높은 량반이라 존대하여 경어를 써주었지만 그 어조는 날카로움이 비수처럼 번뜩이였다.

《험, 어험…》

윤선각은 갑자기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여 헛기침을 톺았다.

《신은 란이 터지자 먼저 각 고을의 군사들을 모았소. 왜적이 대군으로 쳐들어오니 대군으로 막아야 하지 않겠소. 그래서 감영의 군사들과 고을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각 고을 군적에 등록되여있는 백성들을 군사로 모아오고 농사밖에 모르는 그들에게 병쟁기를 다루는것부터 배워주도록 하였소.》

안세희는 윤선각의 말을 시답지 않게 듣는것같이 밀어버리였다.

《그 다음엔?》

《군량을 모아들이였소. 먹어야 싸울게 아니겠소. 허참, 헌데 고을마다 군량고가 텅텅 비였소. 백성들도 굶주리고있는데 군량미가 어디에 있겠소.》

윤선각이 문득 말을 멈추었다. 고을마다 군량고가 텅텅 비고 백성들이 굶주리게 된것은 해마다 농사를 망쳤기때문이였다. 농사철에 농사야 어찌되였든 성쌓기에 백성들을 내몰았으니 식량이 어디서 나오겠는가.

조헌이 이에 대하여 여러번 건의하였지만 윤선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성들이 굶주리고 군량고가 텅텅 비였다는것은 관찰사가 정사를 망친탓이오이다. 그건 그렇고 임금께서 빨리 어가를 호위하러 오라고 하였는데 그 어지를 왜 오늘까지도 내버려두고있소이까?》

《무지렁이농사군들이 군사가 되여 병쟁기를 다룰줄 모르니 어찌 임금을 호위하리오. 그래서 조련시키다보니 늦어졌소.》

《그런 핑게는 촌아낙네도 할수 있소이다. 조헌은 백면서생으로 관찰사가 해산한 의병을 재차 모아 하루이틀 조련시키고 왜적을 치러 보은의 차령으로 떠났소이다. 보리꼬장떡 두개가 의병들의 300리길 군량이였소이다. 관찰사가 그들에게 군량미를 내주지 않은탓이오이다.

그런데 충청도관찰사는 수만명의 군사를 가지고있으면서도 왜적이 두려워 여기 내포땅에 피해있소이다.》

안세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윤선각의 염통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그를 날카로운 눈길로 주시하며 다시 준절히 물었다.

《관찰사는 무슨 목적으로 조헌을 모살하려던 왜놈자객이 토설한 중대비밀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소이까?》

윤선각은 안세희가 묻는것마다 죽을 죄에 해당되는것이여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라고 소경막대짚듯이 허둥지둥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았다.

안세희는 이 엄혹한 란시에 조헌과 윤선각이 얼마나 판이한 대조를 이루는가를 새삼스럽게 느껴안으며 이내 그 자리를 뜨고말았다. 아침에 밀어놓았던 주찬을 먹고 떠나라고 윤선각이 따라나오며 붙잡았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말우에 올랐다.

윤선각은 딛고선 땅이 허물어져내리는것같아 불안하여 멀어져가는 안세희일행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행으로 여기는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청주, 충주에서 적을 막지 않고 강건너 불보듯 하여 이름난 장수 신립과 의주목사 김여물이 배수진을 치고 끝까지 외롭게 싸우다가 죽게 만들고 마침내 임금이 도성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행위를 모르고 간것이였다.

또한 조헌이 의병을 무었다는 소식과 충청도에서 왜적을 치겠다는 맹세를 다짐한 상주문을 빼앗고 리우, 김경백을 죽인 사실을 안세희가 알았다면 어찌될번하였는가.

그는 밤마다 사나운 꿈에 시달리였다. 문득 선전관 안세희가 임금의 어명으로 사약을 가지고 내려온다든가 아니면 도부수를 달고 내려와 어지를 내놓는다든가 혹은 조헌이 칼을 들고 나타나 《네놈이 나의 상주문을 빼앗기 위해 리우, 김경백을 죽였다. 이놈, 내 칼을 받아라.》 하고 소리치는것이여서 깜짝 놀라 깨치는 꿈이였다.

그는 이렇게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맞고보내는중에 조헌과 령규의 련명으로 된 권유문을 받게 되였다.

하교남이 청주성지도를 펼쳐놓았다.

《여기에 매복시켜놓고 성문으로 빠져나오는 놈들을 치는척하다가 왜적이 다 빠져나간 다음 북문으로 일시에 덮쳐들어가서 〈충청도 관찰사 윤선각〉령기를 보란듯이 관가지붕에 높이 띄우면 어떻게 되겠소이까.》 하고 하교남이 윤선각을 올려다보며 간사하게 웃었다.

《으음?! 그렇게 되면야 우리가 성을 타고앉은것이지 달리 되겠나. 하하하. 그거 한번 해볼만한 일이야!》

윤선각은 오래간만에 가슴에 떠돌던 불안을 다 날려버리듯 통쾌하게 웃었다. 윤선각은 이내 웃음을 거두고 낯빛을 엄숙히 하였다.

《비장, 방어사 리옥을 북문에 보내기로 하자. 비장은 군사 100여명을 따로 거느리고 리옥이와 함께 북문으로 빠져나오는 왜적을 치다가 놈들이 도망치는 짬을 타서 우리의 령기를 관가의 지붕에 높이높이 띄워라. 이것은 아이들의 놀음이 아니다. 우리의 계획을 조헌이나 령규가 알아서는 안된다. 또 우리 군사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우리의 의도를 알지 못하게 하라.

조헌에게 사람을 파하여 그들의 권유문대로 방어사 리옥을 파한다는 통고문을 급히 전하며 아울러 방어사 리옥에게도 같은 내용의 글을 보내라.》

이리하여 군관 하나는 조헌의 의병대로, 다른 군관 하나는 방어사 리옥에게로 떠나갔다.

그런데 리옥은 이보다 먼저 조헌의 의병대와 령규의 승병대가 힘을 합쳐 청주성을 치려한다는것을 가만히 알아내고 몹시 못마땅히 중얼거리였다.

《원, 저런놈들 보았나. 가만 내버렸다가는 청주성을 수복한 공을 저놈들한테 송두리채 빼앗기고말겠구나. 그래선 안되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나가 왜적을 치는것은 상당히 위험하고… 가만, 좋은 계책이 없을가?》

리옥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머리를 짜내였다. 바로 이때 윤선각이 보낸 군관이 와서 통고문을 내놓았는데 거기에 의병들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치되 관군은 북문에 매복하고있다가 여사모사하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리옥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이것이야말로 좋은 수가 아닌가. 싸우기는 의병들이 싸우고 공은 관군이 차지할수 있게 된것이다.

그는 즉시 붓을 들고 조헌과 령규에게 편지를 썼다.

《…8월 초하루에 관군은 청주성의 왜적을 치기로 하였으니 그대들의 의병들은 다 나와서 싸움을 돕도록 하라. 우리 관군은 북문밖에 매복하여있을것이며 의병들은 서쪽에서 성을 들이치라. 왜적이 성안에서 배겨내지 못하면 반드시 북문으로 도망쳐나올것이라 이때 관군은 범같은 위엄을 떨쳐서 왜적을 모조리 잡아없애고 청주를 회복하려고 한다. 이는 가장 좋은 계책이니 그대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오직 성을 치는데만 혼신을 다하라.》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리옥의 편지를 보고 서로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방어사 리옥은 관군이 청주성을 수복하는 싸움을 주관하고 지휘한다는것을 나타내면서 이런 지시를 보낸것이다. 이것은 의병들이 죽도록 싸워서 이겨놓으면 공은 제가 다 차지하려는것이였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그 속심을 모르는것이 아니지만 《좋습니다. 그대로 시행하겠소이다.》 하고 성근히 응낙하였다.

왜놈들을 한놈도 남기지 않고 무찌를수만 있다면 그까짓 공이야 누구것이 되든 상관할바없는것이다. 그들은 북문으로 도망하는 적을 놓칠가봐 관찰사 윤선각에게 건의하였었는데 리옥은 마치 제가 짜놓은 일인듯이 놀아댔다. 이러나저러나 방어사 리옥이 북문으로 도망쳐나올 왜적을 범같은 위엄으로 모조리 잡아치우겠다고 하였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