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6

(2)

 

하늘도 푸르고 숲도 푸르렀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물이 하얀 너럭바위를 쓸어내리며 돌돌 노래하며 해빛에 반짝이였다.

발그스레한 꽃송이들을 가지마다 피워안은 물봉선화는 시내물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듯 물살에 한들한들 노니였다.

삼녀는 그 모양을 바라보며 잠시 빨래하던 손을 멈추었다.

아이참, 이 맑은 시내물은 덕보오빠의 정이고 저 물봉선화는 이내 정일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라 방그레 웃었다.

어느 나무 푸른 가지에서 꾀꼬리가 옥소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소리와 같이 청아한 목청으로 산야를 정답게 쓰다듬는듯하였다.

삼녀는 또 빨래하던 손을 멈추었다. 아이참, 저 꾀꼬리는 시집 못간 처녀의 넋이라지, 그래서 《시집가고지고 내 님 보고지고.》 하고 운다더니 참말 그렇게 들려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또 방그레 웃었다.

가까운 숲속에서 《얏-》, 《얏-》하는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의병들이 무술을 익히는 소리다.

또 탕, 탕 터지는 조총소리도 연방 들려왔다. 조총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소리다.

삼녀는 문득 정신을 차리였다.

《아이구나, 이러다가는 저녁밥이 늦겠구나.》 하고 잠시나마 빨래하던 손을 늦추었던것을 봉창하듯이 옷을 빨았다.

그 옷은 덕보의 바지저고리였다. 이미 빨아서 너럭바위에 널어놓은것은 의병장의 푸른 전복이고 풀판에 말리우는것은 완기와 해동의 옷이였다. 삼녀는 남정네들의 빨래를 도맡아안았던 옥천집에서처럼 의병대에 와서도 변함없이 귀중한 사람들의 옷을 빨아준다. 더구나 의병장나리님이 하루같이 깨끗한 옷차림으로 의병들앞에 나설수 있도록 온갖 지성을 다하였다.

조헌의병장은 전복을 벗어놓고 도포에 갓을 쓰고 선비차림으로 령규승병장을 만나러 갔었다. 왜놈자객들이 언제 어디서 조헌의병장을 노리고있을지 모를 일이여서 의병장옷차림으로 먼길을 오갈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덕보와 해동이는 량반의 하인차림을 하고 의병장을 모시고갔다.

(아, 무사히 다녀왔으면.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고 돌아왔으면.)

그는 이 한가지 생각에 잠겨 부지런히 빨래방망이를 두드렸다.

이때 시내 아래쪽에서 어린애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뒤따라 어린애를 달래이는 사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울지 말아, 응? 저기 보아라. 빨래를 널어놓은것이 보인다. 거기 가면 밥도 주고 엿도 준단다.》

《싫어, 싫어. 난 엄마있는데 갈래. 엉엉- 엄마-야-》

어린애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찔레꽃덤불너머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네 엄마는 왜놈한테 죽었는데 엄마가 어디에 있느냐. 울지 말아. 이제부터 우리와 함께 살자.》

삼녀는 불쌍한 애가 왜놈의 손에 엄마를 잃고 고아가 되였구나 하고 가슴아프게 생각하면서 일어섰다.

어린애를 업은 사람 하나와 그뒤에 무엇을 등에 진 또 한사람이 나타났다. 괴나리보짐우에 어린애를 업은 사람은 베감투를 쓰고 무르팍이 쑥 나온 베잠뱅이를 입었는데 등에 무엇인가를 지고 뒤따라 올라오고있는 사람은 허줄한 바지저고리에 다 낡고 해진 무명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매였다. 두사람이 다 젊고 건장해보였다.

그들은 삼녀를 보자 반가운듯 벙글벙글 웃었다. 먼저 베감투를 쓴 사람이 등에 업은 대여섯살 계집애를 내려놓으며 《자, 인젠 다 왔나부다. 조금 쉬였다. 가자.》 하고 부드럽게 말하였다. 하고는 삼녀에게 머리를 끄덕여 인사삼아 빙긋이 웃었다.

《우리는 의병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오이다. 아가씨도 의병대에 있소이까?》

《예, 헌데 어디서 오는분들이신지요?》

《우리는 금강지경에 사는 사람들인데 피난하다가 조헌의병장이 왜놈들을 족쳐대고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소이다. 우리도 의병에 들려고 하오이다. 의병을 찾기가 쉽지 않았소이다. 온 충청도땅을 다 찾아헤매였소이다.》

사실 이 두사람은 근 열흘간이나 먼길을 헤매며 의병대를 찾아다니면서 고생하였었다. 그런데 오늘에야 드디여 목적을 이룬것이다.

어린애는 삼녀가 자기 엄마와 같이 보였던지 《엄마, 엄마-》 하고 울면서 삼녀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삼녀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오, 울지 말아. 이 아지미가 있지 않느냐.》

그리고 제 머리수건을 벗어서 어린애의 눈물, 코물을 닦아주었다. 어린애는 제 엄마의 따뜻한 정을 느꼈던지 더 섦게 흑흑 느껴울었다.

《원 참, 애가 불쌍도 하군.》

아이를 업고온 베감투쟁이가 애를 맡겨놓을 사람을 만나 한시름 놓인듯이 한숨을 내쉬였다.

《글쎄말이우. 그 왜놈들이 악독하기란 야차(사람을 해치는 못된 귀신)와 같수. 백주에 저 애 엄마를 칼로 찔러죽이구 집을 불태우구…》

무명수건쟁이가 왜놈들을 저주하듯 격분스럽게 말하였다.

《불탄 집앞에서 울고있는 저 애가 불쌍해서 업고 오기는 했는데 어떻게 할지 걱정스럽소이다.》

삼녀는 인정많은 사람들이 의병대에 들겠다고 찾아온것이 반갑고 기뻤다. 이런 사람들이 백성들을 위해 제몸을 아끼지 않는것이다.

《아저씨네들은 세면도 하고 몸도 씻으시오다. 먼길에 아이까지 데리고오시려기에 땀인들 오죽 흘리였겠소이까.》

《고맙소이다.》

두사람은 시내물가에 다가들어 세면을 시원하게 하고나서 싱글벙글 웃으며 삼녀가 빨아널은 옷가지들을 둘러보았다.

《이 옷들은 다 의병들의 옷인게구만. 저 푸른 전복은 의병장의 옷이 아니우? 지금 의병장님이 계시오?》

《지금은 안계시오이다.》

삼녀는 이 사람들에게 비밀에 속하는 말을 할수가 없었다. 조헌의병장님이 가신 곳은 비밀이였다.

《의병장님이 어디로 가셨소?》

《그건 저도 모르오이다.》

《허, 이런… 난사다.》

베감투쟁이가 매우 난처한 얼굴로 무명수건쟁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느냐 하는 눈길이였다.

《의병장님이 어디로 갔다고? 어디로?》

무명수건쟁이가 다급스럽게 물었다.

삼녀는 이 사람들이 너무도 조급스럽게 묻는것이 조금 별나게 느껴졌지만 모른체하고 어린애를 꼭 그러안았다.

《얘야, 네 이름이 뭐냐 응?》

《달님이야.》

《아이참, 달님아, 네 이름이 곱구나. 우리 세면을 곱게 하자요.》

삼녀는 달님이를 시내가에 앉히고 세면을 시켜주었다.

《아니, 의병장님의 옷을 빨아주는 사람이 의병장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모른단 말이요? 속을 태우지 말구 얼른 알려주소.》

베감투쟁이가 허허 웃으며 삼녀를 탐스럽게 바라보았다.

《어르신님네들이 하는 일을 빨래하는 아녀자가 어찌 알겠소이까. 자, 달님아, 고개를 조금 더 숙여라. 옳지, 그렇게. 호호호…》

삼녀는 이 두사람이 초조해하는것을 이상히 여기게 되였다.

《아줌마, 나두 세면할줄 알아. 내가 할래.》

달님이는 삼녀의 품에서 빠져나와 고사리같은 두손으로 물을 한웅큼 떠올리였다. 달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이 해빛을 받아 구슬알과도 같이 반짝이였다.

《그런즉 알고도 모르는척 하는구만. 의병장님이 언제쯤 오시는거야 알고있을테지요?》

무명수건쟁이가 느슨히 웃으며 삼녀를 바라보았다.

《호호, 콩밭에 서슬치겠소이다. 너무 조급해마시오이다. 의병대에 올라가 찾아온 사연을 말하고 기다리느라면 의병장님을 만날수 있으리다.》

《지금이 어느때라고 한가롭게 기다리고만 있겠소. 원 참, 답답도 하다. 할수 없지. 그렇게밖에 할수 없구만.》

베감투쟁이가 맥이 풀린듯이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줌마, 저 사람이 우리 엄마를 죽였어. 칼로-》

달님이 삼녀의 귀가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였다.

《애두 참, 네가 무슨 소릴하니? 너를 업고 온 사람들인데 그럼 못쓴다. 호호.》

《아니야, 내가 봤어. 내가 우리 집뒤울안에서 엄마에게 주려고 앵두를 따가지고 나오다가 봤어. 정말이야. 으앙…》

달님이 자기의 말을 삼녀가 믿어주지 않자 그것이 더욱 섧은지 울음을 터뜨리며 삼녀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니, 이런 변이라구야. 쬐꼬만것이 엉뚱한 소리를 하네. 허허.》

베감투쟁이가 무명수건쟁이에게 웃어보이자 《그 참, 저것이 엄마를 잃더니 정신이 나갔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래.》 하고 무명수건쟁이가 달님을 측은히 여겨주는듯 한숨을 《후유-》 내쉬였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 집에 저 사람이 불을 놓았어- 엉엉-》

달님은 삼녀의 품에 더 바싹 안겨들면서 그냥 울었다.

《아무래두 저 애가 생사람을 잡겠군.》

베감투쟁이가 일어나 삼녀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비수로 달님의 등을 세차게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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