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5
(2)
중건은
(옳다, 나는 결심을 정확히 내렸다. 나에게는 황철의 호주가 될 자격도 능력도 확실히 부족하다.)
상반신을 일으킨 김중건은 번민에 싸여 허덕이듯이 걸음을 떼였다.
산소분리기직장부근을 떠나 북문앞에 위치한 행정청사에 이르니 시내쪽에서 한대의 승용차가 나는듯이 달려와 계단옆 주차장에 멎어선다.
차에서 키가 보기 좋게 큰 사람이 내렸는데 낯이 익어보였다.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김중건은 그를 알아보았다. 목이 류달리 길고 이목구비가
자름자름한 그 사람은 합영투자위원회 부
《아, 지배인동무가 여기 있구만.》
신석진이 한손을 척 쳐들며 중건이 보기에는 일부러스럽게 반가운 내색을 한다. 그때 작업복웃저고리에서 손전화기의 호출음이 길게 울리였다.
김중건은 손전화기를 꺼내며 실례의 뜻으로 한팔을 들어보이였다.
《아버지다. 왜 그러니?》
《아버진 밤낮 기업소에 나가살다싶이하며 일하는데 어째서 아버지에 대한 소문이 좋지 않아요?》
아들의 밑도 끝도 없는 직판치기물음에는 격한 흥분이 그대로 실려있었다.
《그건 대체 무슨 낮도깨비같은 소리냐? 좀 차근차근 말해라.》
《황철의 주체철문제를 가지고 도당에서 회의를 열었대요. 거기서 아버지가 되게 비판을 받았는데 뒤끝에 책임문제가 아주 좋지 않게 론의되였대요.》
《누가 그러던?》
《순일형한테서요. 현실체험차루 현지에 나가다가 집에 들렸는데 자기 아버지가 누구와 전화를 하면서 황철지배인이야기를 하는걸 들었대요.》
순일이란 아들의 상급생이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송림시인민위원회에서 중견급일군을 하다가 몇해전에 도인민위원회 부
《흐음- 보나마나 둘이 다퉜겠구나. 그래서?》
《난 아버질 잘 압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일밖에 모르는분이예요. 그런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나요? 사실 아버지야 집이나 아들은 둘째이고 곁에 있는 어머니조차 돌보지 않고 일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입 다물어.》
김중건은 버럭 성을 내였다. 호흡이 빨라지며 저도 모르게 노성이 터져나간다.
《이 덜돼먹은 자식, 알지도 못하는 일에 무슨 참견질이야?》
《…》
《공부에나 전심해. 다시 이따위 전화질 했단봐라.》
《아들인거구만. 말썽거리가 생긴거지요?》
신석진이 다가오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김중건은 대답없이 울기를 삭이며 손전화기를 품에 넣었다.
《아들이라는건 커갈수록 마음을 놓지 못하지. 이럴 때 봐선 딸이 좋은것같소. 지배인동무, 내가 온건…》
신석진이 손빗으로 대머리를 쓸어올리며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때문이요.》
《그러니까 석탄야적장부지를 내달라는거요?》
이미전에 이런 론의가 있었으므로 김중건은 서류를 얼추 훑어보고 도로 주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값도 이 자리에서 락착을 보았으면 하오.》
《야적장부지는 공문까지 해왔는데 보장해야지. 그런데 값을 락착짓는다는건 뭐요?》
《아, 그야 국내가격으로 값을 정하자는 말이지.》
《뭐, 국내가격? 그건 안되오.》
《그럼 어찌자는거요?》
《땅값이야 국제시장가격으로 해야지.》
《하, 이런.》
신석진이 어처구니없는 빈 웃음을 지었다.
《이보시오. 지배인동무, 그 말을 들으니 지배인동무가 공화국하늘밑에서 사는 사람같지 않아보이우. 땅값을 국제시장가격으로 매기다니, 정신이 나간게 아니요?》
《그게 바로 내가 하고싶었던 소리요. 막눅거리로 팔아치우려는 석탄처럼 땅두 국내가격이요, 뭐요 하며 얼렁뚱땅 쓱싹해치우자는거요? 절대로 안되오.》
《말 거 과연 거칠다, 막눅거리루 팔아치우려고 한다, 얼렁뚱땅 해치운다 하면서. 이건 내 개인의 의사가 아니라 가격제정위원회와 일정한 토의를 거친거란 말이요.》
《그렇다면 내 업무부지배인동물 평양에 보내 다시 정하도록 하지요, 가격제정위원회사람들이 실정을 잘 몰라 그럴수 있으니까.》
《이 동무가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던 신석진이 신경질을 부리였다.
《여보 지배인동무, 그럼 석탄을 싣고 나드는 우리 대형차들에선 도로값을 안받겠소?》
《못받을건 뭐요. 필요하다면 그것도 받겠소. 누구든 황철걸 공짜로 쓰면 안되지.》
《야- 이것 봐라, 내 지금 자본가하구 마주 서있는것같구만. 여보 중건동무.》
《난 지배인이야.》
몰풍스러운 중건의 대답에 신석진은 억이 막힌 모양이였다. 김중건은 자기가 석진을 무정하게 대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언행을 곱다랗게 하거나 신석진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그만큼 석진이라는 사람의 인간됨이며 하는 일을 탐탁치 않게 보아왔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