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7
(1)
1592(임진)년 7월 그믐날 아침부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큰 비를 퍼붓고있었다. 하늘을 가르는것같은 번개의 장검이 번쩍이고 우뢰가 터져나왔다. 대줄기같은 비는 그칠줄 몰랐다. 날이 어두워질무렵부터는 세찬 비바람이 나무가지들을 부러뜨리며 이틀간이나 산과 들을 휩쓸었다. 사방에서 물란리로 아우성쳤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이 천기를 내다보고 예정했던대로 폭우가 시작된것이다. 두 의병장들이 이날을 택하여 청주성을 탈환하자고 피로써 맹약한것은 참으로 훌륭한 계책이였다.
조헌의병장은 활과 조총의 화약이 비에 젖지 않도록 미리미리 신칙해두었었다.
조헌의 의병대와 승병대는 8월 초하루, 아직 캄캄한 새벽어둠을 뚫고 서문을 향해 소리없이 접근해갔다.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데다가 비가 세차게 내려서 의병대의 움직임을 그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들은 드디여 활 한바탕사이를 두고 서문앞에 엎드리였다. 의병들은 새초로 촘촘히 엮은 도롱이를 하나같이 쓰고있는탓에 번개가 일면서 천지를 대낮같이 밝히는 순간에도 풀덤불처럼 보였다.
조헌의병장은 서문을 활 한바탕사이에 두고 자그마한 언덕우에 지휘처를 정하였다. 그의 옆에는 비장과 종사관이 있었다. 그의 뒤에는 남복을 한 삼녀가 몇발자국 떨어져서 별빛같은 눈으로 사방을 살피고있었다.
조헌은 비물이 흘러내리는 다박수염을 쓰다듬어내리며 의병장의 령을 기다리고있는 덕보와 해동에게 조용히 물었다.
《폭약과 부시돌이 젖지 않았느냐?》
《예, 젖지 않았소이다.》
덕보와 해동이 나직이 대답하였다.
《해동이는 화약고를 터치러 가게. 화약고의 폭파소리가 의병대와 승병들의 총공격신호이니만치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폭파해야 한다. 알았느냐?》
《알았소이다!》
조헌의병장은 해동이가 날랜 의병 두사람을 데리고 어두운 비발속으로 사라지는것을 보면서 북문을 맡은 관군들도 의병들과 약속한대로 자기의 위치를 차지하고 화약고의 폭발소리를 기다리고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조헌의병장에게는 250여명의 조총대와 70여필의 기마대가 있었다. 기마대는 선봉장 완기의 지휘아래 적들의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대기시켜놓았다. 그는 배심이 든든하였다. 승병장 령규와 의논이 맞고 왜적격멸의 열기도 하나같아서 능히 청주성을 빼앗아낼수 있다는 신심이 솟구치였다.
왜장 고바야까와는 이틀전에 많은 군졸이 배를 그러안고 쓰러지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염병인가 하여 조사하여보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루사이에 수십놈이 죽고 수십놈이 또 죽어가고있었다. 어느한 졸병이 《물… 물을… 먹고 이렇게…》 하고 죽었다.
고바야까와는 즉시에 성안의 우물을 다 조사하게 하였다. 했더니 독기가 있었다. 그는 이것이 의병들의 작간이라고 판단하였다. 성안의 장졸들이 독약물로 지은 음식을 먹고 비틀거리는 짬에 의병들이 성으로 짓쳐들어오리라는것을 알아차렸다.
고바야까와는 수하장수들을 불러놓고 지엄하게 훈시하였다.
《제장들은 우리 군사들이 먹는 성안의 우물을 골라가면서 독약을 풀어넣은 의병들의 계책을 다 몰랐다. 조헌은 우리의 적이지만 그의 지혜와 지략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를 이전부터 없애치우려고 하였다.
전쟁전에도 자객을 보내였지만 실패하였고 이번에도 두놈의 자객을 의병대에 잠입시키였다. 허나 아직도 소식이 없다. 이것은 조헌이
살아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조헌이 살아있으니 그와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많은 비가 내리고있다. 독약으로 우리의 군력을 소모시키고 큰 비를
리용하여 우리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우리를 치려고 할것이다. 그만큼 조헌은 재주와 용감한 자질을 겸전한
그러나 우리가 그를 아는것이니 그를 이길수 있다.
지금 이 시각부터 비상경계태세로 들어갈것을 명령한다.
제장들은 자기가 맡은 성문과 성가퀴에 림시가설막을 치고 밤낮으로 지키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
수하장수들은 《하잇-》 하고 웨치듯 소리쳐 대답하였다.
비는 그칠줄 모르고 한본새대로 세차게 내리였다. 지척을 분간키 어렵던 어둠이 비발속에 서서히 물러나고 성의 륜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8월 초하루가 밝아오고있었다.
조헌은 아직 어둠속에 잘 가려볼수 없는 서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폭약심지에 불을 달고 돌아올 해동이네들을 초조히 기다리였다. 촌각이 여삼추처럼 길어보였다.
그는 의병대와 승병들이 이번 싸움에 생사를 가리지 않고 판가리결사전을 벌리리란것을 잘 알았지만 북문을 맡은 관군에 대해서는 어떨지 걱정스러웠다. 성벽에 의지하여 맞받아나오는 적을 치기보다 도망치는 적을 치는것은 퍽 수월하겠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왜놈들을 한놈도 놓치지 말아야 하기때문이였다.
이제라도 사람을 파하여 관군의 싸움준비가 어떻게 되였는지 알아보고싶었으나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하면 관군이 좋아할리 없을것이였다. 의병들이 관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것으로 오해를 할수 있기때문이였다.
조헌의병장은 관군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쏟아져내리던 비가 즘즘해지더니 어느 사이 보슬비가 되여 내렸다.
해동이네들은 삼발이쇠갈구리가 달려있는 바줄을 성벽안쪽으로 소리없이 날렸다. 해동이가 먼저 바줄을 타고 오르고 뒤따라 두 의병이 고양이 담넘듯이 가볍게 성벽을 넘어갔다.
그들은 성안의 풀숲에 몸을 감추고 멀지 않게 보여오는 화약고를 바라보았다. 온 성안이 쥐죽은듯 괴괴하였다.
그러나 자주 홰불을 든 왜놈들이 성벽을 따라돌고있었다. 아마도 기찰대인것같았다.
화약고는 성안의 외진 곳에 있어서 그 주변에는 왜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해동이는 가슴에 품고있는 화약꾸레미를 더듬었다.
화약은 비에 젖지 않도록 유지에 싸고 또 쌌었다.
《나를 따르라구.》
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해동이네들은 화약고와 열댓보사이에 있는 바위뒤에 몸을 바싹 붙이였다. 거무스레하게 보이는 왜놈파수 두놈이 저희들끼리 무엇을 중얼거리며 홰불이 분주히 엇갈리는 성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자네들은 저놈들을 없애치우게. 나는 화약에 불을 달겠네.》
두 의병이 지체없이 놈들의 뒤로 접근하여 눈깜짝할 사이에 제껴버리였다.
화약고의 자물쇠를 까부시고 들어간 해동이는 화약상자들의 틈사이에 화약꾸레미를 끼여놓고 불을 달았다.
《자, 빨리-》
해동이네들은 화약고에서 달려나와 휘파람소리가 나도록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