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7
(2)
고바야까와는 비가 멎고 날이 밝아오자 불안감이 밀려들어서 군장들을 찾아다니며 자고있는 놈은 깨워서 들볶아대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놈에게도 트집을 잡아서 더욱 긴장하게 성을 지키도록 답새겨 대기도 하였다.
그는 서문으로 갔다. 서문이 있는 곳은 지대가 낮아서 의병들이 쳐들어온다면 바로 여기를 택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곱절이나 많은 병력을 두었다.
고바야까와는 서문을 지키는 군장에게 《여기 서문을 지키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싸움에서 이기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나는 군장을 믿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문을 지켜내라. 알았는가?》 하고 기염을 내뿜었다.
바로 이때 하늘을 맞구멍낼듯이 불길이 치솟는것과 함께 천지를 들었다놓는 폭음이 일어났다.
고바야까와도 서문군장도 수하졸개들도 화닥닥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린가?》
《화약고가 있는 쪽에서 폭발소리가 났소이다.》
《화약고?》
《화약고가 폭파된것같소이다.》
《뭐라구, 폭파?》
고바야까와의 두눈이 희뜩 뒤번져졌다.
그는 정신이 아뜩해졌다. 화약이 하늘로 날아갔다. 화약이 없으면 성을 지켜낼수 없다. 조총은 막대기만 못하게 되였다. 군졸들이 가지고있는 화약으로는 하루이틀 성을 지켜낼지 말지 하다. 설상가상이라더니 패배의 조짐이 겹쳐들었다.
그는 한순간 성을 버리고 달아날 궁리를 하였다. 그러자면 남아있는 화약을 가지고 조총을 총동원하여 서문 한곳을 택하여 짓쳐나가면서 조총의 일제사격으로 의병들을 짓눌러버리며 퇴로를 열어나가야 하였다.
그는 자기의 속을 감추고 서문군장에게 명령하였다.
《군장은 빨리 대오를 수습하라. 서문을 끝까지 지켜내라.
의병들은 화약고로 우리의 이목을 돌려놓고 여기 서문과 북문으로 쳐들어갈 잔꾀를 부릴수 있다. 나는 북문으로 간다.》
비는 멎고 날은 훤히 밝아왔다.
조헌은 화약고가 천지를 뒤흔들며 폭발하자 다박수염을 치솟구면서 총공격의 북소리를 울리였다.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는 한놈의 왜적도 용서치 말라는 조헌의병장의 목소리같이 비개인 하늘가에 장엄하게 메아리쳐갔다.
이때라 령규승병장이 먼저 웃몸에 걸친 붉은 가사를 기발처럼 펄럭이며 서리발 싸움칼을 높이 들고 북소리와 같은 우렁찬 목소리로 웨치였다.
《왜놈 아수라(싸움을 즐기고 살륙을 일삼는 귀신)들을 지옥에 처넣자!》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는 자기네 승병장의 호소에 800여명의 승병들이 《와야-》 하고 소리치면서 서문을 향해 성난 파도마냥 짓쳐들어갔다.
령규승병장의 웨침은 승병들에게 죽음도 맞받아나가는 슬기로운 용맹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야차》들을 멸하는것은 불도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자기들도 이 나라의 불도이거늘 어찌 이 나라를 위해 한목숨 바치지 않으랴 하고 왜놈들의 조총탄과 화살이 비발치는 속을 뚫고 질풍같이 내달리였다.
왜놈들은 중들을 얕잡아보고 성문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치렬한 싸움이 한동안 계속되였다. 《악》, 《악-》 서로 치고받고 창과 칼의 울부짖음, 피가 터지고 비명이 터지고 칼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징을 쳐서 승병들을 불러들이였다.
그것은 두 의병장들이 미리 약속된 작전이였다.
왜놈들은 승병들이 쫓기는것을 보자 더욱 기가 뻗쳐서 새까맣게 무리를 지어 추격해왔다.
조헌의병장의 목소리가 뢰성치듯 터져나왔다.
《북을 울려라! 조총대는 불벼락을 퍼부어라!》
조헌의병장의 호령이 메아리치는 소리와 함께 북소리가 다급히 울려퍼지고 뒤이어 하늘땅을 들었다놓는 조총소리가 터져나왔다. 머리우에 칼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뒤쫓아오던 왜적의 떼무리가 마치 썩은 울바자가 통채로 넘어지듯이 쓰러졌다. 250여명의 조총대가 비내리는 지난밤에 쓰고있던 도롱이를 그대로 쓰고 매복해있은탓에 왜놈들은 감쪽같이 속은것이였다. 놈들은 뜻밖에 조총의 일제사격을 받고 갈팡질팡 덤벼쳤다. 이때 붉은 갑옷과 뿔투구를 갖추고 말을 탄 적장 한놈이 꽥꽥 돼지멱따는 소리를 치며 달려나왔다.
주춤거리던 왜졸들이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듯이 적장을 뒤따라 까맣게 무리를 지어 바로 조총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의병대의 조총대가 또다시 일제사격을 퍼부었다. 왜졸들이 또 삼대쓰러지듯하였다. 그러나 악착한 왜놈들은 물러서지 않고 돌진해왔다.
의병들과 승병들이 왜놈들을 맞받아나아갔다.
조헌의병장은 전령수에게 뿔나발을 길게, 짧게 세번을 불도록 하였다. 그것은 완기선봉장의 기마대를 부르는 신호였다. 이때를 이제나 저제나 초조히 기다리고있던 기마대가 자기들이 은페하고있던 숲속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달려나왔다. 서리발 싸움칼을 아침해빛에 번쩍이며 순식간에 왜놈들을 덮쳤다.
기마대의 칼날이 공중에 번개를 그으며 휘파람소리를 낼 때마다 왜놈들의 비명이 터지고 대가리없는 몸뚱이들이 통나무 자빠지듯하였다.
선봉장 완기는 말을 탄 적장놈을 향해 곧추 짓쳐나갔다. 드디여 완기와 적장놈이 서로 맞부딪쳤다. 치렬한 격투가 벌어졌다. 너냐 나냐,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하는 순간순간을 넘기며 몇합을 치르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완기가 적장의 목을 노리고 번개같이 칼을 비껴쳤다. 그러나 적장은 날래게 몸을 피하면서 벼락같이 완기의 가슴을 칼로 찔렀다. 그 순간에 완기도 잽싸게 몸을 비틀어 적장의 멱통을 찔렀다.
적장의 칼이 완기의 칼을 막아냈다. 완기와 적장은 서로 칼을 맞대이고 씨근덕거리며 각기 상대를 노려보았다. 이 순간이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이다. 누가 먼저 상대의 힘을 역리용하여 칼을 떼내는 동시에 상대를 찌르는가, 여기에 죽고사는 판가리가 끝나는것이다.
둘이 다 상대의 칼에 찔리워죽을수도 있다.
서로 맞대고 이리 밀리우고 저리 밀리우고있는 두 적수의 칼처럼 비수같은 상대의 눈길도 서로 부딪쳐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칼과 칼이 부딪친것보다 더 무서운 대결전이였다. 상대의 넋을 불사르고 속대를 꺾어버리는 무언의 싸움이다.
완기의 두눈에선 온 나라 백성들의 원한과 저주, 증오와 분노가 모여들어 세차게 불타고있었고 적장의 눈에는 이 나라를 삼키려는 싸늘한 독사의 독기가 내뿜고있었다.
적장의 눈길이 알릴듯말듯 파르르 떨었다. 완기의 눈길을 당해낼수 없었던것이다. 적장은 제옆에서 제 부하들이 무수히 도망치는것을 돌려세워야 하였으나 완기에게 붙들려 생사조차 가늠치 못할 지경에 이른것이다.
적장은 단말마적발악을 다하여 완기의 칼날에서 벗어나 내빼려고 하였지만 완기의 칼에 목이 잘리워 말잔등에서 떨어졌다.
적장이 죽어버리자 살아남은 왜적이 혼맹이가 빠져서 쥐새끼처럼 더 빨리 도망치는데 성안에서 또 다른 왜놈들의 무리가 《악-》, 《악-》 소리치며 쏟아져나왔다.
치렬한 싸움이 오래동안 계속되였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어둠이 성안팎에 찾아들고 비까지 세차게 내렸다. 왜적은 성문을 굳게 닫아매고 싸우려 하지 않았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싸움을 거두었다가 이밤이 지새고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에 살아남은 왜놈들을 독안의 쥐새끼처럼 때려잡자고 의논하였다. 그들은 왜놈들이 수많은 사상자를 낸데다가 화약까지 떨어져서 하루밤 지나면 싸울 힘이 더는 없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