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8
(1)
의병들은 왜놈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경계를 물샐틈없이 펴고 활 두어바탕쯤 물러나 가지고온 보리꼬장떡을 먹었다.
많은 의병들이 상하였지만 아프다는 신음소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듯 왜놈과 맞붙어싸우다가 어떻게 부상을 당하였는가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꼬장떡을 달게 먹었다.
왜놈들은 성문루와 성가퀴 그리고 성벽우를 따라가며 홰불을 수없이 꽂아놓고 성안팎을 대낮같이 밝히였다. 만약 의병들이 밤중에 쳐들어와도 능히 막아낼 싸움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려는것같았다.
야밤3경이 조금 지나서 역스런 냄새가 바람결에 실려왔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삼녀가 간수해두었던 도시락밥을 둘이 마주앉아 먹다가 약속이나 한듯이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몹쓸 냄새에 구역질이 나서 밥을 먹지 못하겠거니와 또 밥먹을 짬이 없을것같소이다.》
조헌의병장이 서문쪽을 바라보며 하는 말에 령규승병장이 《이 냄새는 왜놈들이 죽은 제놈들의 시체를 모아놓고 불태우는 냄새가 분명하오이다. 왜놈들이 그렇게 하고는 도망칠 잡도리인데 의병장님의 생각은 어떻소이까?》라고 물었다.
《승병장님의 말씀이 옳소이다. 만약 왜놈들이 이밤에 도망치려 하면 걱정거리가 하나 생기는셈인데… 북문을 지키는 관군이 경계를 소홀히 하다가 도망하는 왜놈들을 놓칠가봐 그것이 걱정거리오이다.》
《허허 의병장님, 너무 념려마시오이다. 방어사 리옥이 북문으로 빠져나오는 왜적을 범같은 위엄으로 모조리 잡아죽이겠다고 호언장담하였는데 우리가 걱정스러워 참견하면 매우 고깝게 여길것이오이다.》
《그 말씀도 옳소이다.》
두 의병장은 말없이 여전히 홰불이 무수히 타오르는 성을 바라보았다. 이 홰불은 의병들을 속이려는 왜장 고바야까와의 잔꾀였다.
새날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밤새껏 싸움준비를 든든히 하고 이때를 기다리고있던 의병들과 승병들은 싸움북을 세차게 울리면서 기치창검드높이 우뢰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서문을 들이쳤다.
허지만 왜놈들의 반항이 전혀 없었다. 놈들은 어제 싸움에서 수많이 죽고 화약도 떨어지고 더 싸울 기력이 없어서 제놈들의 시체를 불태워버리고 밤사이에 북문으로 빠져 도망친것이다.
왜놈들은 북문에서도 매복해있던 방어사 리옥의 관군에게 수많은 시체를 남기고 도망하였을것이라고 조헌은 굳게 믿었다.
의병들과 승병들은 다름아닌 자기들이 청주성을 해방하고 큰 승리를 떨친 감격과 기쁨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성큼성큼 마주 걸어와 수십년을 헤여졌다가 만나는것처럼 목이 꽉 메여 부르짖었다.
《령규승병장님!》
《조헌의병장님!》
그들은 와락 껴안았다.
《승병장님은 다친데 없소이까?》
《소승은 아무 탈이 없소이다. 의병장님은?》
《소인도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소이다.》
《하하하!》
《하하하!》
두 의병장이 마주서서 통쾌하게 웃는데 그들의 모습처럼 관청지붕우에는 《충청의병대》와 《충청승병대》의 령기들이 나란히 펄펄 휘날리고있었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령기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누가 벌써?! 하하하.》
《누가 그랬는지 벌을 주어야 하겠소이다. 하하하.》
그 령기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속에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이 끓어올랐다. 왜란이 터진이래 청주성과 같은 큰 성을 자력으로 수복한것은 별로 없었다. 이로써 한성으로 통하는 적의 바른편길을 끊고 또 전라도로 침입하려던 적의 기도를 저지시키였다.
이 싸움에서 적들이 략탈하였던 수만섬의 쌀을 다시 빼앗아냈다.
청주성은 전략적으로 큰 요충지여서 옛날부터 병마절도사영을 두었던 곳이다.
《왜적이 북문으로 도망쳤으니 관군들이 그놈들을 족쳤을것이오이다. 우리 함께 북문을 담당한 관군들을 축하해주는것이 어떠하오이까.》
조헌의병장이 환히 웃으며 령규의병장의 의향을 물었다.
《그럽시다. 어서 갑시다.》
그들은 잠시후에 북문루에 올랐다.
그러나 관군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왜놈들의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북문의 형세를 알아보라고 먼저 보내였던 의병들의 기마대 몇사람이 멀리까지 돌아보고 달려왔다.
《의병장님, 관군은 10리밖에 있었소이다. 왜놈들이 간밤에 북문으로 빠져나간줄도 모르고있소이다. 관군은 우리와 왜적들과의 싸움이 오늘도 계속될줄로 알고 오늘밤에 북문에 매복하려고 기다리고있었소이다. 엥이, 바보같은 놈들.》
《나무아미타불… 왜아수라들을 놓쳤구나. 어찌 이럴수가 있는가.》
령규승병장은 격분하여 옆구리에 찬 장검을 꽉 그러쥐고 손을 후들후들 떨었다. 그 관군놈들을 한칼에 료정내고싶었던것이다.
《아아, 분하고나. 그놈들을 살려보내다니? 이 무슨짓을 저질렀느냐.》
조헌의병장은 몸에 지니고있던 종이 한장을 꺼내서 와락와락 찢어버리였다. 그것은 윤선각이 방어사 리옥을 북문으로 보낸다는 인장이 찍혀있는 통고문, 청주성 북문에서 빠져나오는 왜적을 치겠노라고 약속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