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8

(2)

 

의병들과 승병들은 성안팎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혹시 미처 도망하지 못한 왜놈들이 숨어있을지도 몰랐기때문이였다.

완기는 의병 셋을 데리고 고바야까와놈이 차지하였던 관청을 수색하였다. 완기는 어느한 방앞에서 걸음을 뚝 멈추었다. 밖으로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있었는데 방안에서 《사람살려요.》 하고 아우성치는 녀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완기는 자물쇠를 까부시고 문을 활짝 열어제끼였다.

갇혀있던 녀자들이 닭무리처럼 와르르 뛰쳐나왔다. 그들이 입고있는 옷은 다 비단치마저고리이고 얼굴은 젊고 해반주그레하였다. 그들은 완기네들앞에 꼬박꼬박 절을 하면서 연해연방 고맙다고 하나같이 목이 메여 울었다.

《거기는 웬 녀자들이요?》

완기는 누구라없이 녀인들을 둘러보며 진중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중 나이들어보이는 녀자가 울먹이며 대답하였다.

《우리는 관기인데 소비는 행수기생이오이다. 왜장이 우리를 붙잡아다가 가두고…》

행수기생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였다.

《알만하오. 우리는 의병이요. 왜놈들을 몰아내고 청주성을 해방하였소. 당신들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오. 그런데 저 녀자들은 왜 나오지 않고 그냥 서있소?》

완기는 방 한쪽구석에 돌아서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있는 녀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녀자들은 며칠전에 한성에서 왜놈들이 붙잡아왔는데 왜장놈은 오늘래일 부산으로 끌고가서 왜나라왕의 노리개로 섬겨바칠 잡도리였소이다. 그런데 의병들이 구원한것이오이다. 저 아가씨 하나는 조정의 어느 량반대가집 규수이고 그옆의 처녀는 그의 시녀이오이다.》

《행수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아오?》

《왜장이 소비를 불러다가 술을 치게 하면서 하는 말을 들었소이다.》

행수의 말이 끝나기도전에 규수라는 녀자가 얼굴을 싸쥐고 울었다. 그의 시녀는 규수의 잔등을 자근자근 두드려주었다.

《아씨, 진정하시오이다. 왜놈들이 다 쫓겨갔으니 걱정이 없소이다. 우리를 구원한 의병님들께 고마운 인사를 올리시오이다.》

《세상에 왜놈들처럼 간악한 놈들은 없소. 한나라의 량반대가집 규수를 노리개로 삼다니, 이건 우리 나라를 노리개처럼 우습게 여긴다는것이요. 괘씸한놈들.》

완기는 의분이 끓어올라 아가씨를 진정으로 위로하였다.

《아가씨는 아무 념려말고 어서 나오시오. 우리 의병장님과 의논하여 아가씨가 가고싶은 곳으로 데려다주겠으니 어서 나오시오.》

《고맙소이다, 의병님.》

시녀는 완기앞으로 돌아서며 절을 하려던 순간 얼어붙은듯 절도 하지도 못하고 《아니…》 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한발한발 뒤로 물러서면서 《어마나, 옥천집도련님이시였군요.》 하고 기여들어가는 소리를 간신히 내였다.

시녀는 아씨의 남편 조완기를 알아보았던것이다. 도련님은 이번까지 두번씩이나 아씨와 자기를 구원한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맙기에 앞서 두려움이, 부끄러움이, 불안이 마음을 괴롭히였다.

아씨의 몸종인 그는 아씨가 옥천시집을 떠나 본가집에 가서 되돌아가지 않고 며느리로서 도리를 지키지 못한것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설향아씨는 제손으로 밭을 갈아 농사를 지어먹으며 사는 시집이 마음에 없었다. 어찌 량반이 일반백성들처럼 손에 흙과 거름을 묻힐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집에서는 그런 천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밭일을 하고있는것을 보고 가만앉아 놀기도 면구스러웠다. 그렇다고 이날이때까지 옥같이 닦아온 몸을 땀과 흙으로 더럽힐수는 없었다.

먹는 음식도 하루세끼 조밥이 아니면 보리밥, 기장밥이고 찌개라는것은 푸성귀를 무친 나물과 된장, 김치밖에 없었다.

시집오기 전에는 하얀 상등옥백미밥에 닭고기, 꿩고기, 송아지고기며 여러 가지 물고기반찬도 먹기가 싫어서 입에 댈듯말듯하였는데 어찌 거친밥을 먹어내랴.

본가집에서는 딸의 시집살이가 걱정되여 달마다 종을 시켜 쌀이며 갖가지 고기, 말린 어물들을 하늘소등에 실어보내주군 하였지만 시어머니 신씨는 좋아하지 않았다. 며느리가 시집에 왔으면 시집음식을 달게 들고 시집가풍을 따르는게 옳지 어찌 본가집에서 날라다 먹으랴 하는것이였다.

설향은 겨우 두석달 참고견디여내다가 더는 이렇게 살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남편도 한성에서 학문을 닦고있는것만큼 자기도 한성본가에 돌아가 남편과 함께 살면서 과거급제할 때까지 남편의 뒤바라지를 해주는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게 되였다. 그래서 총명한 남편이 소년과거에서 장원한 그때처럼 또다시 장원하고 벼슬길에 오르면 한성에 호화로운 집을 크게 짓고 따로 살림을 펴리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공주교수로 있는 시아버지가 대호군벼슬에 있는 본가집아버님을 여지없이 규탄하는 상소문을 임금께 올린것이다. 이 상소문은 박표 한사람만을 론한것이 아니였다. 첫째는 간악한 왜적의 침략을 미리 방비할데 대한것이고 다음은 나라의 정사에서 바로잡아야 할 대책이 둘째이고 셋째로는 온갖 비법불법행위로 백성들을 해치고 나라를 좀먹는 김공량, 리산해 등 간신무리들을 규탄하였는데 그중에 대호군 박표의 이름이 크게 올라있는것이다.

박설향은 제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마지막 지탱점이 와그르르 허물어지는것을 느꼈다. 가뜩이나 시집살이가 옹색스럽고 불편한데다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져서 그는 이 기회에 본가로 가리라고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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