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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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정은 눈꼴이 시여서 두무릎을 끌어안으며 비스듬히 돌아앉았다. 정철이 노는 행동을 말없이 겪으며 그런대로 참아보자니 분하기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어찌나 밸이 꼴리고 분이 치미는지 그걸 누르자니 눈덕에 물기가 다 가랑가랑 맺힌다.
이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괘씸한 처사인가. 고온공기연소식기술도입의 성공을 위하여 바쳐온 날과 달은 무수히 흘렀지만 우리는 언제한번 이런 자리를 마련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우연하게 차례진 이날을 더없는 기쁨속에 맞았고 성공을 기원하며 오늘만은 둘이 맘껏 즐겨보리라고 별러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 심정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을뿐더러 응당한것으로 여기고있지 않는가. 하여 처녀는 끝내 불집을 일으키고야말았다.
《뭘 보고 날 사랑했어요?》
때아닌 뜻밖의 가시돋친 질문에 정철은 일순 벙해있다가 벌씬 웃는다.
《어색하게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러다가 원인을 알았다는듯이 넘겨짚는것이였다.
《오- 내가 늦은것때문에? 그래 내 미안하다잖아. 일없어. 오늘만 날인가. 앞으로 이런 날은 소털같이 많아.》
(뭐, 소털같이 많아?)
약이 오를대로 올라 첫 물음을 반복하려 했으나 그가 낚시줄을 당기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였다. 우레기 한마리가 끌려나왔는데 처음것보다 좀 컸다. 이어 우레기며 이면수가 련속 물리였고 나중에는 어른손바닥보다 더 큰 가재미까지 끌려올라오는것이였다. 그것으로 낚시질은 한물 진듯싶었다.
인내성있게 버티고앉아 이따금 줄을 당겨보던 정철은 손채양을 하였다. 그는 노을빛이 더욱 진해가는 서켠하늘을 응시하며 중얼거리였다.
《시간이 지났나?》
그러던 정철은 손채양을 내리지 않은채 감동과 부러움에 차서 신정이를 찾았다.
《신정, 저 노을을 좀 봐. 굉장히 무섭게 타번지고있어. 저
랑만에 찬, 허나 진심이기도 한 정철의 소원이 처녀에게 바로 전달될수가 없었다. 오직 제 기분에만 사로잡혀있던 신정은 총각을 쏘아보며 할퀴듯이 따지고들었다.
《그따위 감상적인 말 듣기도 싫어. 어서 말해요. 내 물음엔 왜 대답을 피해요?》
《속이 정말 꽈배기 한가지군. 어떡하문 뒤틀린 그 속을 풀어줄가. 그렇지. 래일 우리 정식 대휴를 받는게 어때? 그래가지고 오늘 세웠던 계획을 다시 재현하면 되잖아.》
손채양을 푼 정철은 한번 낚시줄을 당겨보고는 처음처럼 그냥 셈평좋게 엉너리를 친다. 그랬다가 황황히 그것마저도 철회하고는 왕청같은 소리를 꺼내는것이였다.
《아니아니, 그건 안되겠어. 내 아까 말을 다 못했는데 성강동무들과 헤여지고나서 생각해보니까 이밤으로 그쪽걸음을 해야 할것같애. 그 동무들이 도입하려는 로를 육안으로 확인해봐야겠거던. 그러니 신정이, 다음주 일요일쯤으로 대휴를 미루는게 어때?》
(뭐, 이밤으로? 그럼 이모와 한 약속은? 이모는 애인을 데려와 인사 시키겠다는 내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이 저녁 우리를 기다리고있을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차례진 반나절의 휴식마저 제 밸대로 처리해버리고도 모자라 뭐, 밤중으로 떠나? 그리고 뭐, 다음주 일요일? 보자보자하니까 정말?!)
오후내껏 쌓이고쌓이였던 노여움이며 누르고눌렀던 분통이 마침내 폭발하고야말았다.
《좋아요, 그럼 대답해줄게.》
일어나서 방게가 절반이 넘게 들어있는 바께쯔를 찾아든 신정은 그의 머리우에 거꾸로 쳐들고 냅다 흔들어댔다.
《바로 이게 내 대답이야.》
그다음 머리우며 어깨에서 방게를 털어버리느라 아우성을 치는 정철이를 힘껏 떠밀쳤다. 두길이 넘는 방파제우에서 허궁 바다로 떨어졌지만 그는 인차 물속에서 머리를 솟구쳤다. 그리고는 선헤염을 치며 사람살리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대는것이였다.
《아직도 계속 말해?》
신정은 물고기들이며 그릇가지들을 닥치는대로 집어들고 그를 향해 내리던졌다.
《이 거짓말쟁이, 협잡군, 허풍선이.》
그랬어도 정철의 엄부럭은 여전하였고 원을 지어 헤염쳐돌아가며 더욱 큰 목소리로 소란을 떨었다. 만일 신정이 문어잡이창을 들어 《위협》했을 때 그가 부러 두손을 들어 《항복》하는 시늉을 내지 않았더라면 언제까지나 그러고있었을것이다.
그로부터 한시간가량 지나서 두 련인은 옛 등대를 떠났다. 그들은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에서 가지쳐 새나루선창으로 뻗은 둔덕길어귀에서 잠간 멈춰섰다. 여기서 그들은 이모네 집과 기업소로 각기 헤여져 가야 했다.
신정은 작별에 앞서 즘저리다가 아까 듣지 못했던 대답을 요구하였다. 정철의 큼직한 두입귀가 올라가며 흰 이가 드러난다. 그는 장난기가 다분한 말투로 대답하였다.
《저 김철의 관망보다 더 긴 그 얘기를 여기서 한다? 난 재간이 없어. 하긴 나야 이미 말했잖아. 결혼식날 신정에게 줄 값비싼 기념품을 준비한다고 말이야. 거기 다 있어. 그러니 볶지 말고 차분히 기다려.》
하긴 그렇다 하고 신정은 속으로 긍정하였다. 한편의 음악작품이나 다름없는 그것을 어찌 여기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그리고 결혼식기념품을 보면 알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게 어떤것이게 값비싸다고 할가.
《내 바래줄게.》
처녀는 비위살을 부리는 총각의 건의에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진짜로 볼이 부어 투덜거리는 정철이였다.
《난 그럼 이런 꼴을 해가지고 온 시내바닥으로 다니란 말이야?》 신정은 깨고소해나서 그가 볼세라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옛 등대를 떠나올 때 처녀는 약속을 어긴 벌로 모든 짐을 정철이에게 지웠다. 앞뒤에 멘 큼직한 배낭가방들, 그우에 얹은 가마며 남비, 량손에 갈라쥔 집기류지함들, 지여총형태로 잔등에 멘 문어잡이창이며 낚시도구들. 휴식에 필요한 《장구류》들로 《완전무장》한 정철의 행색은 무게와 번다한 생김새로 하여 정체불명의 사람처럼 보였으며 한켠으로는 자세까지 꺼꺼부정하여 민망스러울 정도로 처량해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