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8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6 장
윤선각관찰사의 군령
5
(2)
설향이는 아산땅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일찌기 일어나 삼녀가 밥을 짓고있는 시내가로 갔다.
《아이, 아씨가 깨나셨네요. 잠자리가 불편하셨지요?》
삼녀는 반기며 일어나 인사를 드리였다. 가마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에 삼녀의 웃는 얼굴이 곱게 드러났다.
《불편한줄 모르고 달게 잤어. 집에서 노상 비단이불에 잘 때보다 더 달게… 호호호.》
설향이 달게 잤다는 잠자리는 그에게 있어서 잠자리라고 말할수 없는것이였다. 완기와 해동이네들이 정성껏 초막을 지어주었으나 어디까지나 초막은 초막이였고 맨 흙바닥에다가 마른 갈대를 깔아놓은것이 전부였다.
설향은 어제 밤 갈대우에 누우면서 책에서 읽었던 《와신상담》이란 글귀가 떠올라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섶나무에 누워자고 쓰디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쑤를 갚기 위해 제몸을 스스로 괴롭히며 간난신고를 이겨나갔다는 이 고사는 자기의 마음에 꼭 들었던것이다.
설향이는 돌가마앞에 삼녀와 나란히 쪼그리고앉았다.
《삼녀, 이제부터는 날보고 아씨라 부르지 말아. 날 아씨라구 부르면 나를 의병으로 쳐주지 않는것같아서 오히려 나무람이 가는걸. 호호…》
《아이구나. 호호호, 그 말씀 참 잘하셨수. 난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하였소이다.》
《내 옥섬에게두 말하였어, 나를 아씨라 부르지 말라구. 그건 의병대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야. 우리는 너나없이 의병장님의 부하일 따름이라구 말했어, 삼녀는 선봉장님을 오빠로 부르는데 나를 보고는 형님이라 불러야지. 호호호, 그렇지?》
설향의 두눈에 반짝이는 물방울이 돌가마의 불빛에 보여왔다. 삼녀의 눈에도 뜨거운것이 가득히 고여올랐다.
《형님, 형님말씀이 다 옳소이다. 하지만 반상간의 명분은 깨뜨릴수는 없소이다. 그저 마음속으로 한집안식구처럼 살면 그 이상 바랄것이 없소이다.》
삼녀는 지난 기간 설향이를 옳게 보지 않았었다. 시집와서 며느리구실을 해보지도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나마 몇달 살지도 않고 본가집으로 달아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설향이가 꿈과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한집안식구로 돌아선것이다. 삼녀는 이것이 기뻐서 눈물을 흘리였다.
설향이는 삼녀의 손을 다정히 쓸어잡으며 방긋 웃었다.
《난 이제부터 의병장
《호호호, 그건 념려말아요. 나와 함께 하루이틀 밥을 지으면 될것이니깐.》
《그리구 또 칼쓰기와 창쓰기도 배워주구… 삼녀가 내 선생이 되여줘, 응?》
《아이참, 형님두… 내가 무슨 선생이라구. 호호… 오늘부터라도 짬짬이 나와 함께 칼쓰기동작이랑 익혀가자요.》
이리하여 설향은 밥짓는 법도 칼쓰는 법도 배우면서 삼녀와 가까이 지내였다. 이렇게 나흘이 지난 날 의병장님의 옷과 선봉장의 옷을 빨아서 갈숲에 널고 해가 두어발 올라온 뒤에 옥섬이와 함께 삼녀의 초막을 찾아갔다. 이맘때면 삼녀가 칼쓰기와 창쓰기를 배워주려고 오군 하였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오지 않았던것이다.
설향이와 옥섬이 삼녀의 초막앞에 이르니 초막안에서 삼녀의 울음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그들은 웬일인가 하여 잠간 그 자리에 멈춰섰다.
초막안에서 덕보의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여보, 울지 마오. 눈물로는 어머니묘를 파헤치려는 왜놈들의 흉계를 막아내지 못하오. 그만 그치라구,
이것은 해동이가 말하는것같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에는 조헌을 《
《여보, 해동형님이랑 당신이랑 우리 셋이
《예, 가자요 난 죽어도 어머니묘를 안고 죽겠소이다.》
설향이는 그제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아, 이를 어쩐담. 간악한 왜놈들이 이런짓까지… 하늘도 무심쿠나. 내가… 내가
설향이는 이 한가지 생각으로 초막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밖에서 다 들었어요. 삼녀보다 제가 어머니묘를 그러안고 죽어야 하리다. 나도 같이 갈테야요.》
설향이 목소리에는 누구도 물리치지 못할 단호한 결심이 칼끝처럼 번쩍이였다.
삼녀도 덕보와 해동이도 설향이를 바라보며 가슴들이 뭉클해왔다.
삼녀는 설향의 가슴에 왈칵 얼굴을 묻으며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윽하여 그는 떠듬떠듬 말하였다.
《형님, 형님의 마음을 우린… 다 알아요. 그렇지만 형님은 못가오이다. 지금 왜놈들은 의병장
설향이는 삼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쿠나. 내가
해동이가 벌떡 일어났다.
《옳소이다. 아주머님은 의병장
《그래, 어서 그럽시다.》
해동이와 덕보는 얼른 초막밖으로 씽하니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