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6 장

윤선각관찰사의 군령

5

(4)

 

정암수는 이 사연을 처음 듣고 조헌과 부인의 사람됨에 무한히 감복되였다. 중봉선생은 알고볼수록 감탄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의병들이 어이하여 그의 부름에 하나같이 일떠서는지 새삼스럽게 느껴 안았다.

(인자무적이라! 중봉이 늘 말하는 이 네글자가 과연 세상의 옳은 리치로다!)

정암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의리에 감복되여 지고말았다.

이틀이 지나서 왜놈들의 무리가 조헌의병장의 집에 달려들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놈들을 막아나섰다. 놈들이 늙은이들을 발길로 쓸어눕히고 칼로 찔러죽이려는 순간이였다.

《가만, 죽이는건 아무때나 할수 있다.》

우두머리인듯한 왜놈이 왜졸을 밀어치우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일으켜세웠다.

《이 집이 조헌의 집이 옳은가?》

그놈은 조선사람이상으로 조선말을 곧잘하였다.

《옳다.》

《조헌의 녀편네가 죽어서 어디에 묻혔는가?》

《뭐라구? 네놈은 례의도덕도 모르느냐. 우리 나리님과 마님을 그렇게 불러? 아무리 불학무식한 왜오랑캐라도 분수가 있지, 에끼 이놈!》

할아버지는 곽지같은 주먹으로 우두머리의 면상을 후려쳤다.

허나 우두머리가 슬쩍 피하면서 오히려 할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쳐서 쓰러뜨리였다.

《코노야로.》

왜졸 하나가 칼로 허공중에 높이 들어 할아버지를 내려치려는 순간에 《여보-》하고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몸을 제몸으로 덮었다.

왜졸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꺼번에 료정내려고 다시 덤벼들자 우두머리가 꽥 소리를 질러 제지시키였다.

《이 늙은것들을 묶어놓고 고문을 해라. 말을 할 때까지.》

이리하여 왜놈들은 련 사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죽지 않을만큼 악착하게 고문하였다. 그러나 두 내외는 《모른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놈들은 날마다 의식을 잃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짐짝처럼 창고에 내던졌다가 그들이 깨여나면 또다시 고문하였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깊은 밤이였다. 어둠속에 몸을 감추고 조헌의병장의 집으로 소리없이 다가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동이네들이였다.

그들은 어제 날이 저물기전에 옥계동야장간에 도착하였던것이다.

정암수후위장과 장공인들이 뜻밖에 찾아온 해동이네들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왜놈들이 기여든 옥천고을의 형편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간악한 왜놈들이 진짜 어머님묘를 파헤치려고 하는구나.》

해동이는 불이 쏟아져나가는듯한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후들후들 떨었다.

《후위장님, 우리 집에 기여든 왜놈들을 잡아치우겠소이다. 우리가 넷이니 여기서 셋만 붙여주소이다. 자는 놈 여라문쯤은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없애버릴수 있소이다.》 하고 해동이는 비내리는 이날 깊은 밤을 타서 옥계동을 내려왔던것이다.

그는 제가 살던 정든 집이여서 집안팎을 손금보듯 환히 알고있는 까닭에 사람들을 민활하게 이끌었다.

해동이는 대문칸 담모퉁이에 몸을 감추고 왜놈파수놈을 바라보았다. 주위는 비내리는 소리뿐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담벽에 붙어서 파수놈가까이 한발자국, 두발자국 다가들었다. 대문칸오른쪽의 파수놈은 창을 세워잡고 거기에 의지하여 선채로 졸고있고 다른 한놈은 대문칸문턱에 앉아서 머리를 무릎우에 틀어박고 꼼짝하지 않았다.

해동이는 비호처럼 소리없이 달려들어 서서 졸고있는 놈을 칼로 찔러죽이고 이내 문턱에 앉아 졸고있는 놈의 목을 찍어버렸다.

이때를 기다리였던 의병 여섯이 소리없이 대문을 넘어들어와 자고있는 왜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안방엔 아직도 불그스레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이 방은 조헌나리님과 마님의 방이였다. 이 방에 왜놈두목이 차지하고있다고 생각하니 눈에 불이 일었다. 해동이는 불시에 문을 열면서 방안에 뛰여들었다. 왜놈두목은 등잔을 책상우에 놓고 졸고있다가 화닥닥 놀라 일어섰지만 해동의 칼이 벌써 턱밑에 닿아있었다.

《이놈아, 네놈들이 감히 우리 어머님묘를 어째보겠다구.》

해동은 놈의 목줄띠를 거머쥐고 밖으로 끌어냈다. 의병장아버님과 어머님의 방을 왜놈의 피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왜놈의 목을 사정없이 쳐버리였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기다렸다는듯이 왜놈의 피를 말끔히 씻어내였다.

해동이네들은 창고에 갇혀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내서 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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