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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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간이 얼마쯤 흘러 승용차는 어느덧 평양시의 교외를 거쳐 통일거리에 들어섰다.
시창밖을 내다보던 김중건은 차가 동성다리부근에 이르자 운전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들렸다가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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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전화기호출음이 울려 김중건은 품에 손을 넣었다. 전화번호를 보는 중건의 얼굴에 대번에 주름살이 사라진다. 오후내껏 행처를 찾아 전화번호를 건이 닳게 눌러대도 나오지 않던 락원기계련합기업소(당시) 지배인이였던것이다. 북쪽내기인 지배인은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언제 왔는가, 식사는 했는가 등등 첫 인사말도 없이 직방 본화제에 들어간다.
《내 흥남비료에 있소.》
《아니, 북진에 가계신다더니. 막 날아다니는겁니다?》
《회의 끝나자바람으로 내처 달렸지. 금방 들어서는 길이요. 산소분리기팽창기때문에 그러겠지? 그건 내 해준다이. 우리 사람들 인차 보내주면 되겠지?》
《예. 그러면 좋지요, 아바이.》
내각아래 중요기업소 지배인들중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와 락원기계련합기업소(당시) 지배인들이 제일 년장자이고 김중건이 막내지배인으로 불리웠으므로 중건은 그를 아바이라고 불렀다. 그도 중건이 그렇게 부르는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바이, 산소압축기가 결정적으로 걸려 그러지 않습니까?》
《그건 안돼.》
대바람에 잘라버리는 락원기계 지배인이였다.
《나두 힘들다는건 알구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바이도 우리 기업소 산소열법용광로조업이 어떤 의의를 가지고있는지 잘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정치사업은 그만합소. 중건동무가 그러지 않아두 내 알지. 요즘 황철의 산소열법용광로만 의의있나? 개건현대화대상이 다 주체화가 아닌가. 건 그렇고 하여간에 힘들어. 새루 맨들수는 있지만 중요설비하구 자재가 우리께 어디 있어야 말이지. 글쎄 그걸 사다주문 몰라라.》
《야- 아바이, 그러지 말구 좀 도와주십시오.》
김중건은 그가 마치 앞에 있는것처럼 손을 흔들며 안타깝게 호소했다.
《산소열법용광로 돌아가면 그때 내 푸짐하게 인사를 하겠수다.》
《각강 몇t 주는걸 가지구두 세를 쓰며 반년을 넘기는 황깍쟁이가 그때 인사를 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난 중건동무 부탁을 들어 못줘.》
《아, 준다니까요. 이번 분기에 락원에서 제기한 각강하구 철근을 이달중에 기업소차로 실어보내라고 내 업무부지배인에게 단단히 강조했지요. 아바이, 이거 좀 사정을 봐주시오, 예?》
김중건은 그가 통화를 끊을가봐 손전화기를 두손으로 붙들고 애원조로 말하였다.
《하, 이런 질군 봤나. 여보 중건이, 동무야말로 내 사정을 알아줘야 돼. 우리께 산소압축기 맨들수 있는 설비, 자재여분이 없다질 않나. 그것만 해결해달라니. 그럼 만사가 풀리지. 자, 그만합세, 응? 내 시간이 없어 그러는데… 후에 만나 토론하기요.》
통화는 미련없이 끊어졌다.
(에익, 별명그대로 하늘소뒤발통이로구나. 깍쟁이같은 령감. 황철을 외면하고 어떻게 살아가나 어디 보자.)
김중건은 키만 꺽두룩하고 살집이란 대체 다 어디로 갔는지 아주 말라꽹이처럼 보이는 락원지배인을 머리속에 떠올리며 애꿎은 욕설을 퍼부었다.
며칠내로 팽창기복구에 필요한 락원기술자들을 보내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것이 달포전의 일이다. 그날에 산소압축기하정을 듣고 노력해보겠노라는 그의 대답에 산같은 희망을 품었던 김중건이였다. 평시엔 황철지배인, 막내지배인이라고 부르며 김중건에게 곰살궂게 대해온 락원지배인이였고 그럴만치 둘사이는 인간적으로 상당히 가까왔던것이다.
(하기야 령감이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다구. 팽창기복구에 보내는 기술자인원도 머리를 싸매고 짜냈겠는데.)
한켠으로는 리해가 되였다. 지금 나라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개건현대화공사장 그 어디에서나 필요한것이 산소분리기였다. 그런데 락원은 그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데다 산소분리기생산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도 만족하게 보장받지 못하고있을것이다. 산소압축기생산에 드는 설비와 자재값을 외화로 환산해봐도 숨이 턱 막히는 정도가 아닌가.
손전화기호출음이 귀전에 울리였다. 락원령감이 생각을 돌려먹었는가? 중건은 급히 손전화기를 꺼내들었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 문형기중기를 실어오려고 갔던 자재과장의 전화였다.
《지배인동지, 난 못하겠습니다.》
《아닌 밤중에 무슨 그따위 소리요?》
《고원역을 떠나서 얼마 못가 떡 섰습니다. 기관사가 못가겠답니다. 기관차기술상태로는 정비하고 가야지 이 상태로는 안된답니다.》
《기관사가 누구요, 춘길동지요?》
《예.》
춘길이란 황철의 오랜 기관사이다. 3중3대혁명붉은기작업반의 책임기관사이고 로력영웅이였다.
《그래 내가 어떡하란 말이요?》
《함흥철도국장에게 전화를 좀 해주십시오. 기관차를 하나 대달라구 말입니다.》
30분가까이 찾아서야 그가 나왔다. 대책은 있는데 기관차를 하나 보내겠으니 중간역에 끌어다놓구 정비를 하라는것이 그의 대답이였다. 화물은 무조건 래일 새벽까지 황철에 도착해야 한다고 아무리 곡진하게 말해야 끄떡을 안하는 상대방이였다. 그는 황철보다 더 긴급한 물동수송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여 쩔쩔맨다면서 시간핑게로 제편에서 화제를 마무리하는것이였다.
김중건은 한숨을 내불며 운전사에게 떠나자고 눈짓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