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6 장

윤선각관찰사의 군령

7

(1)

 

윤선각은 까만 옻칠이 반들반들 윤이 흐르는 자개박이궤를 열고 돈꿰미를 꺼내였다.

《먼저 백냥을 받게.》

《호호호, 고맙소이다.》

기생 란숙이는 백냥이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만족하였다.

《오늘밤에도 내 방에 와서 자게.》

《호호, 할수 없군요. 피곤해도 가야지. 언제 오면 되겠소이까.》

《저녁에 일찍 와도 좋지.》

란숙이는 깔깔 웃으며 돌아갔다.

윤선각은 그를 내보내고 며칠전에 조헌의병대에 떨군 자기의 군령장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사실 그 군령은 조헌이 임금을 호위하려 북으로 가면 자기가 저지른 죄가 드러날가봐 떨군 군령이였다. 오늘은 8월 25일이다. 27일까지 금산에서 북쪽으로 10여리 떨어져있는 연곤평의 진악산에 가자면 벌써 어제 전군을 데리고 떠나야 했다. 조금 늦추어가자. 왜적이 이 충청도관찰사보다 조헌이 너를 더 무서워한다니까 네가 먼저 금산의 왜적과 싸워보아라. 700명이 7 000의 왜적을 막아보아라. 네가 패하면 내가 나서겠다.

윤선각은 관복을 입지 않고 하얀 명주바지저고리차림으로 부채질을 슬슬 하면서 조헌이 금산에서 패몰할 광경을 미리 그려보다가 부채질을 뚝 그치고 벌컥 화를 냈다.

《누구야? 함부로 무엄하게…》

그는 욕설을 미처 다 퍼붓지 못하고 황급히 일어섰다. 선전관 안세희가 호위관들을 뒤에 달고 거침없이 들어오는것을 알아보았던것이다.

《아니, 선전관이 아니시오? 어서 이리로 오시우. 날이 이렇게도 무더운데 천리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소.》

윤선각이 당혹감을 감추려고 반갑게 맞이하는척 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안세희는 날카로운 눈길로 윤선각을 주시하였다.

《관찰사는 관복을 입으시오. 즉시 전 부대를 집합시키시오.》

잠시후에 안세희는 수천의 군사들앞에서 지엄하게 쩌렁쩌렁 웨치였다.

《충청도관찰사 윤선각은 임금의 어지를 받을지어다.》

윤선각은 두무릎을 꿇고 부복하였다. 땅에 내짚은 두팔이 풍을 만난듯 부들부들 떨리는 모양이 수천의 군사들의 눈에 보여왔다.

안세희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임금의 어지는 벌써 이미전에 내렸지만 길이 막혀 늦어 오늘에야 당도하였다. 어지는 다음과 같다.

<충청도관찰사 윤선각은 임금을 호위하러 오라고 여러번 교서를 내려보냈지만 오지 않았으며 충청도에 침입하는 왜적을 막지 않아 충주, 청주를 적에게 내주는 죄를 지었을뿐만 아니라 그밖에도 나라에 해를 끼치는 여러가지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윤선각을 충청도관찰사의 벼슬에서 파직시키고 일반군사로 소속시킨다. 이 어지를 즉시에 집행할것이다.>

어지는 이상과 같다.》

안세희가 이같이 어지집행을 선포하자 수천의 군사들이 《잘했지, 잘했어.》, 《우리가 왜놈을 치자고 얼마나 말을 했나.》하고 모두 좋아서 웅성거렸다.

안세희는 군사들의 뒤설레임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엄히 명령하였다.

《윤선각은 충청도관찰사의 관모와 관복을 벗으라.》

이리하여 윤선각은 만장의 비웃음속에 관모와 관복을 벗고 일반 하졸의 허술한 더그레와 쪼글쪼글 오그라든 벙거지를 뒤집어썼다. 그는 지옥속에 빠져든 놈처럼 비틀거리였다.

《꼴좋다. 군사들을 개, 돼지처럼 여기더니 네가 바로 돼지가 되였구나. 하하하.》

《죄는 지은데로 가기마련이다. 저놈탓에 우리 의병들이 관군에 매여 왜놈들을 족치지 못하였다. 우리는 조헌의병장님께 돌아가자.》

《옳소, 돌아들가자!》

관군에 편입되였던 의병출신 사람들이 와와 들끓었다.

《저 윤선각이 왜놈을 못치게 했으니 왜놈편이다. 당장 때려죽이자!》

《옳소. 때려잡자.》

의병출신 사람들도 관군군사들도 들구 일어났다.

안세희는 이 광경을 잠시 바라보며 민심을 잃은자 천하도 잃고 자기자신도 잃는다는것을 새롭게 새겨안았다. 그는 이 시각 조헌의 모습이 떠올랐다. 관찰사의 자리에 그를 앉히면 군사들이 그를 진심으로 받들고 따르고 그와 한마음한뜻으로 뭉쳐 왜놈들을 충청도일대에서 모조리 내쫓으리라고 생각되였다. 내 이제 임금께 돌아가 상주문을 올려 조헌을 추천하리라고 속다짐을 굳게 하였다. 그는 드설레이는 군사들을 제지하고 충청도관찰사가 새로 부임하여올 때까지 공주목사가 중군장이 되여 림시로 전군을 통솔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중군장과 하졸이 된 윤선각을 이끌고 관찰사의 방으로 갔다. 부대를 인계인수시켜야 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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