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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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서 임진년 8월 23일 밤,
조헌의병대는 드디여 금산으로 떠나갈 준비를 튼튼히 갖추고 정렬하였다. 짙은 안개가 끼여 두서너걸음앞도 보이지 않았다. 조헌의병장은 황황히 불타는 홰불을 밝히고 700명의 대오를 근엄히 돌아보았다.
사위는 바람 한점 없었다. 온 세상이 멈춰선것같은 정적이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히 드리웠다. 의병들은 기침소리도 내지 않고 곁의 사람과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들의 두눈은 홰불빛을 받아 번쩍이였다. 마치 천사백의 홰불이 불타오르는것같았다. 그들은 이밤 자기들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이 엄숙한 대오를 향해 수십개의 홰불이 다가오더니 의병대의 뒤에 말없이 멈춰섰다.
《아니, 승병대가 아니요?》
의병들속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승병대속에서도 가만히 대답하였다.
《그렇소이다. 우리도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치려고 하오이다. 청주성싸움때처럼.》
《히야, 스님들이 우리를 도와나섰구만!》
순간 누가 어쩔사이도 없이 의병대와 승군대가 하나로 합쳐들며 서로 와락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사생을 함께 하려는 그 의리에 가슴이 벅차올라서 두 의병대가 눈물을 흘리였다.
령규승병장이 조헌의병장 앞으로 다가왔다.
《의병장님, 소승은 의병장과 사생동거를 맹약한바가 있소이다. 어찌 맹약을 잊으리오.》
조헌의병장은 불빛받아 불타오르는 령규승병장의 두눈을 마주바라보며 자기의 진정을 터놓았다.
《그러면 안되오이다. 어제도 이야기되였지만 윤선각이 금산에 오지 않을수도 있을것이오이다. 승병대는 청주성싸움에서 큰 손실을 입고 30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승병들마저 승산없는 이번 싸움에 참가시킬수 없소이다.》
두 의병장은 윤선각이 파직되여 일반군사로 전락되리라는것을 아직 알지 못하였을뿐만 아니라 윤선각이 관군에게는 사흘후에 군령을 내리리라는것을 더더욱 몰랐다.
《윤선각은 오든 말든 적이 청주를 다시 빼앗으려 한다는것을 안 다음에야 누구나 한사람같이 일어나 왜적을 막아야지요. 어찌 왜적을 치는데 네일, 내일 가리겠소이까.》
두 의병장은 서로 믿고 의지할데가 생겨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들은 관군을 기다리다가 부득불 적과 싸우게 될 만약 경우를 예견하여 작전을 새롭게 의논하였다.
조헌은 자기가 쓰려던 계책을 내놓았다. 령규승병장은 《참말 그럴듯하오이다. 그 계책을 두 의병대의 계책으로 삼으면 더 좋을것같소이다.》
두 의병장들은 자기 부대가 가지고있는 기마대를 합쳐서 총 200필의 기마대로 옥천에 기여든 왜놈들을 기습소멸하기로 합의하였다. 하되 의병대와 승병대의 주력이 연곤평의 진악산으로 가는 기간에 일을 끝나게 하였다.
그다음에는 충청도의병대의 기발과 충청도승병대의 기발을 청주성을 해방하고 나란히 띄웠던 때처럼 옥천관가에 나란히 휘날리게 하여 금산의 왜적을 그곳으로 유인하도록 하였다. 그다음에 기병대는 빠른 기동력으로 신속히 조계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도록 하였다.
금산은 동쪽에 적강(금강의 한 갈래), 서쪽엔 대둔산을 한계로 하였는데 중간에 조계산과 진악산이 있고 또 크고작은 강이 많아서 물을 대기가 편리하므로 땅이 기름진데다가 물과 돌이 아름다와 주변의 여러 고을중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이다.
진악산은 금산고을 북쪽 10여리안팎에 솟아있다. 진악산은 풍치수려한 벼랑들이 산기슭을 대신하고있는 구간이 있는데 그아래로 옥천방향으로 가는 행길이 지나갔다. 그러므로 여기가 적을 치는데 매우 유리하다. 조계산은 진악산과 큰벌을 사이에 두고있다. 산에는 수풀이 무성하였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이 조계산을 왜적의 옆구리를 꿰찌르는 칼로 만들자는것이였다.
두 의병장은 옥천으로 가는 의병기마대와 승병기마대에게 그 계책을 일일이 알려주고 그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기마대의 대장은 조완기 선봉장으로 임명하였다.
옥천에서 나서자란 완기는 고향땅의 지형지세를 너무나 잘 알고있는 까닭에 기마대를 질풍처럼 이끌어갔다. 그들은 하루 앞당겨 이른새벽에 옥천땅의 깊은 산속에 물이 모래에 스며들듯이 잦아들었다.
해빛이 수림속으로 부채살처럼 내리는 중낮이 좀 지나서 완기네 기마대는 옥수동야장간에 도착하여 정암수후위장, 장공인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그리고 여기 옥수동에 들어와 야장간의 일손을 도와주면서 때식을 끓여주고있는 효숙이, 해동이가 사랑하는 처녀를 반갑게 만났다.
정암수후위장은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옥천에 기여든 왜놈들의 동태를 자상히 이야기하였다. 완기
놈들은 묘지를 파헤치려던자들이 어찌되였는지 알아낸다고 고을백성들을 붙잡아다가 가두어놓고 악착하게 고문하였다. 놈들은 마을을 돌아치면서 가가호호를 불태웠다. 조헌의병장의 집도 불타버렸다.
완기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꽉 깨물고 왜놈들을 짓쳐버릴 계책을 의논하였다. 여러가지 계책이 나왔는데 제일 좋은 계책은 역시 왜놈들이 자고 깨는 관가와 향교를 깊은 밤에 누구도 모르게 다가들어 없애버리는 계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