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2 장
14
(1)
금시 한바탕 쏟아져내릴 형국이였다. 시커먼 구름더미를 품은 하늘은 차츰 낮아지고있었다.
금포를 떠난 김중건은 차를 냅다 밟아 오후 첫시간이 조금 지나서 송림에 들어섰다. 먼저 남문지구에 들어가 산소열법용광로건설과 산소분리기조립정형을 료해한 중건은 인차 가스발생로건설장으로 향하였다.
김중건은 기분이 좋았다. 모든 일이 계획된대로 진척되고있었던것이다. 내내 머리속을 감돌며 아프게 하던 산소압축기가 해결되였고 락원기술자들이 들어붙어 밤낮이 따로없는 전투를 벌리고있으니까 산소분리기도 마련을 볼것이다. 축랭기가 문제인데 이것 역시 가까운 시일내에 제 모습을 갖출것이다. 중건은 금포에 가서 축랭기에 넣을 진주모래를 며칠중으로 전량 실어들일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눈으로 확인하였다.
(장하거던, 장해.)
김중건은 오늘 본 청년돌격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거듭 뇌이였다. 인간의 정신적성장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떠나보내면서도 애리애리한것이 마음에 걸려 꽤 해낼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정작 만나고보니 돌격대원들모두가 달라진것이 알리였다. 높이가 3~4m는 잘될 진주모래무지들이 그것을 증명하였고 썰물때만 작업을 해가지고는 기일을 보장할수 없어 떼를 만들어가지고 밀물때에도 채취를 하였다고 한다. 조카인 진명이도 아주 달라지였다.
김중건은 돌격대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다가 진명이에게 이르러서는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껴안아주고싶었다. 태여나 어머니가 앓는통에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란 진명이, 커서도 늘쌍 골골 앓기만 하여 사내라는게 버들가지처럼 휘친휘친해서 중건이 찌글써하게 여기던 조카였다.
그랬던 진명이가 오늘 손을 잡으니 큰아버지, 나두 사내가 되였단 말이예요, 너무 그러지 말라요라는 뜻의 온곱지 않은 눈길로 똑바로 보는것이였다. 병색을 쫓아버린 얼굴의 적동빛, 쇠꺽지같은 손, 근육이 듬직하게 솟은 어깨.
녀석, 일을 마저 끝내고 어서 오거라. 이 큰아버지가 한상 차리련다. 그날 내 네 엄마를 한바탕 혼내줄테다. 뭐, 앓구 약하구 어쨌다구?
시창너머로 한대의 승용차가 마주 달려오다가 멈춰선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신석진이였다.
차를 세운 김중건은 문을 반쯤 열고 머리를 솟구었다. 석진이 체면을 마다하고 다가온다.
《금포에 갔다더니 여기 있었구만.》
《왜 그러오?》
《이거 왜 인사가 그렇소. 오랜만에 만났는데.》
《본론이나 말하우.》
불쾌한 기색이 비꼈으나 한순간이였고 애써 온화하게 보이려 하나 어딘가 모르게 걱정과 안타까움, 긴장감이 어린 신석진의 얼굴이였다.
김중건은 이런 표정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대체로 무엇을 주었으면 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얼굴기색이 이러하였다.
《난 피웠소.》
김중건은 석진이 친절하게 내미는 고급담배를 물리쳤다.
《그럼 말합시다.》
신석진은 담배를 곽에 도로 꽂아넣었다.
《내 하나 걸리는게 있어 왔는데 이건 지배인동무만 결심하면 얼마든지 해결될수 있는거요. 내 지금 무산광산설비때문에 어느한 나라와 설비계약을 맺은게 있는데 물물교환을 하자니까 그 량반들이 무조건 현금지불을 요구하는게 아니겠소. 그래 이걸 도와줬으면 해서 그러오.》
《내게 무슨 돈이 있게 그러오?》
《내 다 듣고 왔소. 지배인예비몫을 황철이 자체로 소화하게 되였다는걸 말이요.》
(과연 귀가 넓군.)
김중건은 혀를 찼다.
《그래서요?》
《공짜로 달라는건 아니요. 먼저 돌리자는거지. 인차 물어주겠소.》
《그렇소? 한데 한발 늦었구만. 우린 그걸로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에서 기관차들을 구입하기로 결정했소. 동무두 알겠지만 야금공업이라는게 한켠으로는 물동공업이라고 하질 않소.》
《글쎄 그것도 알구 왔다니까. 그래 내 렴치불구하고 오질 않았소. 지배인동무, 옛정을 봐서 풀어주구려, 예?》
이런걸 보고 귀신은 경에 막히고 사람은 경우에 막힌다고 하는가? 김중건은 속이 여려져서 말문이 막히였다.
《내가 진척하는 일이 제대로 되면 황철이 덕을 안볼것같소? 견인기보다 더 큰걸 생각합시다. 앞을 보며 살아야지, 응? 거 뭐 이때껏 여기저기 돌려맞추면서 잘해왔는데 몇달을 미룬다고 사달이 나겠소.》
(뭐, 돌려맞추며 잘해왔다구? 이 사람이 이 말뜻을 알기나 알고 이러나? 돌려맞춘다? 잘해왔다?)
삽시에 다가오는 과거의 화면화면들. 탄방통우에 올라앉아 새까매가지고 언밥을 갉아먹으며 견인기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일, 사정사정하여 겨우 얻어가지고(고장나 서있는것을 중건이네 기관차대사람들이 수리한 다른 단위의것이다.) 식량수송을 나갔다가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일껏 힘들게 구입하여 싣고오던 식량을 무더기비와 태풍에 한절반 잃어먹고 가슴을 쥐여뜯던 일, 그런가 하면 변변한 견인기가 없어 청년선제직장에서 생산한 후판을 화차에 싣고 기본선까지 인력으로 밀고간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뿐인가. 정말 흘러간 고난의 세월에 그것으로 하여 응어리진 일을 셈하자면 끝이 없을것이다. 그만큼 견인기는 콕스나 중유 못지 않게 나를 아니, 우리 황철사람들을 얼마나 오래동안 괴롭혔는가.
김중건은 분기를 눅잦히느라 헛기침을 하며 괜히 코그루를 몇번 박았다. 그러면서도 여유를 가지고 말해주었다.
《안됐소만 그 자금은 해당 절차를 밟아 이미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에 넘겨주었소.》
《언제 넘겼다는거요? 이자 기사장한테서 지배인손에 있다는걸 들었는데.》
《아, 글쎄 넘겼다면 넘긴거지 뭘 콩이야 팥이야 하며 그러오? 나중엔 별난 일 다 보겠군.》
《응, 그렇군?!》
대꾸없이 담배 한가치를 뽑아 곽에 대고 그루뜀을 하던 신석진이 손거동을 그만두었다.
《알겠소. 잘 알았소.》
그러던 신석진이 가다말고 한마디 던진다.
《내 암만 봐야 지배인동문 답답한 사람이요. 황철이라는 산골에 틀고앉아 제멋에 사는 답답한 사람. 이건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물두구 다 이렇게 말해.》
(실컷들 말하라지. 나중엔 제 입들이나 아플걸.)
김중건은 단단한 이를 드러내며 속으로 되받았다.
머리를 들이고 문을 닫으려던 김중건은 차에서 내렸다. 대동강이 바라보이는 청년선제직장사무실앞의 도로건너 풀밭에 림성남이 앉아있는것이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밥은 현장에서 먹겠소. 우리 집에나 갔다오라구. 집사람더러 진명이 오는데 우리 집에서 한상 차릴 준비를 하라 하더라구 말하라구.》
김중건은 스적스적 그리로 갔다. 등뒤에 와섰는데도 림성남은 돋보기를 올렸다내렸다하며 손에 든것에 골몰하는것이였다.
《건 뭐게 열심히 들여다보우? 아바이.》
중건은 돋보기를 벗어들고 엉거주춤하면서 허리를 들려는 성남의 팔굽을 잡으며 그옆에 털썩 앉았다.
《김철의 채호명이한테서 온 편지요, 지배인동무도 잘 아는.》
김중건은 성남이 내미는 편지를 받아들며 의아해하였다.
《채호명이라니, 누구던가?!》
《거 있잖소, 우리 맨 처음에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을 시작할 때 금속연구소사람들과 함께 온 김철열간압연직장 공정기사 말이요.》
《…》
《지배인동무보구 시험이나 해보고 관둘바에는 시작부터 안하는게 좋다구 아픈 소릴 하던 사람이 기억나지 않소?》
《아, 옳소. 항상 살피는듯한 가느스름한 눈, 기억납니다.》
그제야 중건은 생각해냈다.
《성남아바이 친구지요? 함흥수리동력대학졸업생이라고 했댔던가?》
《그래, 그 사람이요. 김철에서 돌아온 기능공들편으로 이걸 보내왔더군.》
《전화 한통이면 다 알겠는데 무슨 편지까지 보내면서 그러우.》
《늙은이들 습관이 그런걸 어쩌겠소.》
습관이란 참, 중건은 속으로 혀를 차며 편지를 펼쳐들었다.
《김철은 어떡하고있답니까?》
김책제철련합기업소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모르는바가 아닌 김중건이였지만 그래도 구면지기의 기사에게서 알고싶고 묻고싶은것이 많은 그였다.
《거기 다 있소.》
웅웅거리는 초고전력전기로의 동음, 저 멀리 강 서쪽대안에 떠있는 짐배의 배고동소리, 듬직하게 드러누워 간간이 뒤척이는 대동강의 잔파도소리, 이것은 이름모를 경쟁심과 호기심, 류다른 애정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