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9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3

(1)

 

8월 27일 이른새벽 의병대와 승병대는 금산이 바라보이는 진악산의 벼랑가에 진을 쳤다. 앞에는 금산과 사이두고 드넓은 벌판이 펼쳐져있고 벌판 왼쪽에는 조계산이 가까이 솟아있었다. 거기에는 선봉장 조완기가 거느린 기마대가 숨겨져있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하나가 열백을 당해낼 지세를 골라 의병, 승병들을 배치하고 그렇지 못한 곳에는 더 많은 인원이 지키도록 하였다. 그들은 어제까지 밤늦도록 큰돌들을 진을 따라가며 무둑무둑 쌓아놓았었다. 그 돌무지뒤에서 적의 조총탄과 화살을 막아내며 싸우다가 왜적이 새까맣게 기여오를 때에는 그 돌을 허물어 돌사태를 일으키려는것이다. 돌덕대도 여러곳에 만들어놓았다. 그 덕대우에 크고작은 돌들이 가득가득 실려있었다. 칡으로 튼튼히 꼬아 만든 바줄을 칼로 찍어버리면 순간에 산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것같은 돌사태를 일으킬것이였다. 한옆에는 주먹만한 작은 돌들도 무지 무지 쌓아놓았다. 팔매칠 돌들이였다.

오늘은 8월 27일, 청주성을 다시 빼앗으려고 금산성을 기여나오는 왜적을 기어이 막아내야 할 날이다.

그러나 윤선각의 관군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왜적은 7 000여놈이고 의병대는 300여명의 승병대와 합쳐 1 000명이다. 그렇다고 왜놈들을 그대로 보낼수는 없었다. 의병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울 의기를 안고 이 아침을 맞이한것이다.

어느덧 아침해빛이 진악산의병대의 진지에 찾아들었다. 삼녀와 효숙이는 의병들에게 눈인사를 곱게 하면서 줴기밥덩어리들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의병들은 녀인들의 꽃다운 웃음이 마지막 웃음일수도 있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반갑게 마주웃으며 받았다.

《오늘 이 밥값을 왜놈 백놈씩 잡아서 치르겠네.》

《암, 그래야 하구말구. 헌데 그건 눅은값이야.》

《그럼 200놈을 잡아서 치르어야지.》

《하하하.》

《하하하.》

《가만, 저기 밥값을 치를 놈들이 오는구만.》

의병 하나가 나무가지사이로 멀리 산기슭을 가리켜보였다.

아닌게아니라 길다랗게 늘어선 왜놈들이 비오기 전날 이사가는 개미떼처럼 꼼지락거리며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의병들은 천천히 밥을 씹어먹으면서 왜놈무리들을 바라보았다.

삼녀와 효숙이는 왜놈들이 가까이 오기 전에 재빨리 의병들을 찾아다니며 밥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마치 이 나무, 저 나무 찾아 날아예는 산새와 같았다.

설향은 제손으로 지성껏 지은 밥을 도시락에 담아들고 의병장 아버님의 지휘처를 찾아 숲을 헤쳐나아갔다. 그뒤에는 령규승병장님에게 드릴 밥도시락을 안고 옥섬이가 따르고있었다.

설향이는 이 아침에 드리는 밥이 며느리로서 마지막일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직까지도 오지 않는 윤선각이가 한없이 저주스럽고 증오스러웠다. 이런 못된자 대신에 시아버님이 충청도감사가 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애초에 청주성과 충주성을 빼앗기지 않았을것이다.

아, 나라에 아까운분인 시아버님이 그리고 남편이 나라를 위해 한목숨을 선뜻 주저없이 바치시려누나. 나도 한목숨 바치리라. 이 귀중한 시아버님과 남편의 곁에 나란히 함께 죽어 땅속에 따라가서 며느리로서, 안해로서 효도를 다하리라 하고 설향이는 도시락을 꼭 껴안았다.

아버님, 아침진지를 드시오이다.》

설향은 밥도시락을 두손으로 받들어올리였다. 그의 눈에 소리없이 솟아오른 눈물이 아침해빛에 반짝이였다.

조헌은 마치 평범한 날과도 같이 다박수염을 들어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오냐, 수고많았구나. 옥섬아, 너는 얼른 승병장님을 모셔오너라. 오늘 아침엔 승병장님과 함께 먹고싶구나.》

《예. 그러지 않아도 승병장님께 드릴 밥도시락도 가져왔사오이다.》

《허허, 너희들은 내 마음을 벌써 알고있었구나. 그럼 어서 모셔오너라.》

잠시후에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한자리에 앉았다. 두 의병장은 이 밥으로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고 임금을 받드는 길에서 인생을 끝맺을수 있다는것을 다같이 알고있었지만 내색치 않고 서로의 싸움준비상태를 이야기하며 밥을 달게 먹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숲가에서 삼녀와 덕보, 해동이와 효숙이가 마주앉았다. 효숙이는 사랑하는 자기의 신랑감 해동이에게 주먹밥을 두손으로 드리였다. 삼녀는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 덕보에게 주먹밥을 두손으로 드리며 많이 드시고 힘을 내라고 속삭이였다.

왜적의 무리는 점점 가까이 오고있었다. 놈들의 개개의 형체가 뚜렷이 나타나보이더니 이내 머리와 어깨, 칼과 창, 조총까지도 가려볼수 있게 되였다.

해동이는 효숙이를 돌아보았다.

《무섭지 않아?》

《해동오빠가 무서워하면 저도 무서워지고 오빠가 무서워하지 않으면 저도 무섭지 않사오이다.》

해동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씩 웃어보이고 적들을 바라보았다.

해동이와 효숙은 어제 밤 숲속에 나란히 앉아서 그동안 그리웠던 정을 나누었었다. 해동이는 효숙이를 꼭 그러안고 가만히 물었다.

《여기엔 왜 왔어, 죽으려고 왔어?》

《예. 해동오빠와 함께 죽고싶어 왔나이다.》

《내가 죽지 않고 살면?》

《우린 이렇게 한몸인데 살기도 죽기도 함께 해야 하오이다.》

《우린 끝까지 살아서 의병장아버님을 보호해야 해.》

《예, 그러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소이다.》

그들은 어제 밤 행복에 겨워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해동이는 얼굴에 뜨겁게 끼얹던 효숙이의 숨결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왜적의 선두가 매복구간에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뒤로 멀리 또하나의 무리가 따라오고있었다. 그 무리속에 적장 고바야까와가 있었다.

그는 청주성을 빼앗긴 이래 근 한달이 되여오는 이날까지 충청도를 어떻게 하면 몽땅 삼킬것인가, 어떻게 하면 조헌을 없애버릴가를 모색하다가 대군을 총동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조헌의 안해묘를 파헤치는 계책대로 조헌을 없애버릴 작정을 하였건만 그것이 실패한 오늘에 와서 생각해보면 매우 유치한 놀음이였음을 자인하게 되였다. 오로지 대군으로만 자기의 계획을 실현할수 있다고 그 준비를 다그쳐왔었다.

때마침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라도와 청주를 시급히 점령하여 아군의 보급로를 열어놓으라, 물산이 풍부한 기름진 땅을 보급기지로 삼아야 한성과 평양 등에 군량을 댈수 있다, 청주성을 빼앗긴 장군의 실책을 만회할 때는 왔다, 진격하라, 청주성을 든든히 타고앉으라.

도요또미의 이 명령은 고바야까와의 피를 더욱 끓게 하였다. 게다가 더더욱 그의 광기를 치솟게 하는 긴급보고가 어제 늦은 저녁에 들어왔다. 조헌의 의병대와 승병대의 기발이 옥천관가에 휘날리고있는데 거기에 있던 왜군이 이미 소탕되였다는것이다.

그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였다. 조헌의 의병대가 청주성과 그 주변에 있는것으로 알고있었는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서 이번에는 옥천땅의 아군을 들이친것이다. 그는 멱통을 찔리운 돼지처럼 고래고래 소래기를 쳐서 전 부대를 규합하여 부랴부랴 옥천땅으로 내몰았다. 청주를 다시 빼앗으려면 조헌의병대를 반드시 먼저 없애버려야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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