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2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5

(1)

 

왜놈들은 무리를 더 모아가지고 또다시 달려들었다. 연곤평의 진악산앞벌은 왜적들로 한벌 덮였다. 조총탄알이 비발치듯 날아가고 날아오고 화살과 화살이 가로세로 내닫고 조총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파아란 화약연기가 해를 가리우고 비명소리와 아우성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의병들과 승병들의 조총사격은 마치 커다란 서리발장검이 풀숲을 베여버리듯 왜놈들을 쓸어눕히군 하였다. 그때마다 산우에서 북소리, 징소리, 와와- 기세를 올리는 함성이 산판에 메아리치고 전장을 세차게 흔들며 적의 간담을 얼어붙게 하였다.

적장 고바야까와는 들판 한가운데 둔덕우에 서서 초조히 진악산의 의병들과 맞붙은 군졸들을 바라보았다. 군졸들이 새까맣게 개미처럼 달라붙었다가 불가마를 만난듯 떨어져내렸다가 또 달라붙고 그랬다가 다시 또 떨어져내리는것을 보고는 우리에 갇힌 사나운 짐승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두눈을 희번뜩이였다.

그는 자기의 1진이 단번에 절반이나 녹아나고 2진도 풍지박산이 나서 악이 받쳤다. 더우기 복통이 터지는것은 의병장 조헌에게 속아 유인당하여 벌써 수천의 군사를 잃은것이였다. 옥천관가에 령기들을 띄워놓고 여기에 매복진을 쳐놓을줄을 귀신인들 알았겠는가.

명치끝까지 치받치는 분통이 분통을 낳고 꼭뒤까지 뻗쳐오르는 기광이 기광을 돋구어 그는 미칠 지경이 되였다. 요시, 내 조헌이를 잡아없애지 못하면 배를 갈라죽으리라 하고 고바야까와는 수하막료들에게 소리쳤다.

《들이밀라, 들이밀라. 시체로 산을 쌓고 피가 강이 된다 해도 들이밀라. 화포를 끌어다놓고 쏴라. 산이 평지되도록 퍼부어라. 조헌을 사로잡아라. 내앞에 항복케 하라.》

조헌의 의병대가 저들의 병력에 비하여 보잘것없이 작은 까닭에 더욱 악착스럽게 달려드는것이다. 만약 조선군사가 대군이라면 도망칠 놈들이였다.

놈들의 화포알이 날아와 터졌다. 의병들이 쓰러졌다.

산아래서 왜놈들이 악악 소리치면서 제놈들의 시체를 밟고 올라왔다. 한겹이 죽으면 또 한겹이 오르고 또 올라왔다.

조헌의병장의 얼굴에 땀이 비오듯 하였다. 전복과 전립에 조총알이 꿰고 지나간 자리가 두세곳이나 나있었다. 그의 왼쪽팔에서 피가 배여나왔다.

삼녀는 언제나 몸에 감고 다니던 흰 무명천을 찢어서 조헌의병장의 팔을 동여매주었다.

《령기를 올려라. 조계산에 신호를 보내라.》

쩌렁쩌렁 울리는 조헌의병장의 웨침소리는 격전장의 총포성소리를 누르며 메아리쳤다.

북소리, 징소리, 나팔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충청의병대》령기와 《충청승병대》령기가 불쑥불쑥 솟아올라 가로세로 기폭을 날리며 하늘을 헤갈랐다.

달려들던 왜놈들이 경악하여 그자리에 멈춰섰다. 지금껏 뜻하지 않은 봉변을 겪어본 놈들이여서 또 어떤 무서운 변이 일어날지 알수 없었던것이였다.

바로 이때 조계산기슭에서 《와야-》하는 세찬 함성이 터져나오고 하늘에서 내린것같은 기마대가 질풍노도쳐 달려나왔다. 조헌의병장이 숨겨두고 아끼던 기마대의 급습이다.

왜놈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왜적을 추격하자!》

조헌이 벼락같이 웨치며 산을 내렸다. 전체 의병들이 산사태처럼 쏟아져내렸다. 삼녀와 덕보, 해동이와 효숙이는 조헌의병장의 전후좌우에서 호위하며 내달리였다.

완기의 기병대는 왜진의 옆구리를 꿰지르는 장검과도 같이 폭풍쳐 내달리며 왜놈들의 목을 가랑잎처럼 흩날려버렸다.

놈들은 칼날에 맞아죽고 찔리워죽고 말발굽에 밟혀죽고 눈깜짝할 사이에 곤죽탕이 되였다.

완기의 칼은 번쩍번쩍 번개를 그으며 왜놈들을 수없이 족쳐버렸다.

설향이도 남편의 용맹한 모습에 용솟음치는 힘을 얻고 비록 서툴지만 칼을 휘두르며 남편을 겨냥하는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산에서 내린 의병들과 승병들은 기마대가 놓쳐버린 왜놈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였다. 삼녀와 덕보, 해동이와 효숙은 조헌의병장의 방패가 되여 그의 주위를 펄펄 날아다니며 왜놈들을 족쳐대였다.

고바야까와는 기절초풍을 만난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것이야말로 머리우에 떨어진 날벼락이였다. 조헌의병대가 기마대를 숨겼다가 폭풍처럼 급습해올줄은 천만뜻밖이였다.

그는 본진에 남아있던 마지막예비대 수천명을 내몰았다.

의병대에는 최후의 싸움을 벌려야 할 시각이 닥쳐왔다.

의병들과 승병들은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히 싸워 한사람이 수십놈의 왜놈들을 쓸어눕히고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이제는 2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조총화약도 동이 나고 화살도 다 떨어졌다. 그들의 손에는 칼과 창뿐이다. 완기는 절반이나 줄어든 기마대를 데리고 조헌의병장곁으로 달려왔다.

수천의 왜적들이 활 한바탕사이를 두고 달려들고있었다.

조헌의병장은 근엄하고 강의한 모습으로 끄떡없이 놈들을 주시하고있었다. 그의 왼팔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여있었다. 치렬한 싸움에서 부상을 당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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