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3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5

(2)

 

왜놈들이 점점 가까이 오고있었다. 모든 의병들이 칼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자기의 의병장의 두리에 서서 말없이 노려보고있었다. 여기 진악산기슭에서 최후를 마칠 순간을 기다리고있었다.

완기는 말잔등에서 뛰여내려 조헌의병장앞에 다가섰다.

아버님은 여기를 떠나시오이다. 어서 이 말을 타고가시오이다. 우리가 남아서 왜놈을 막겠소이다. 삼녀와 효숙이는 아버님을 모시고가거라. 설향이 당신도 아버님을 모시고 빨리 가오.》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죽을곳은 여기다. 우리 의병들은 앞으로 나갈뿐이다.》

아버님, 우리는 수천의 왜놈을 격멸하였소이다. 우리는 이겼소이다. 여기를 떠나도 부끄러울것이 없소이다. 어서 떠나주시오이다.》

완기의 두눈엔 말로는 다할수 없는 간절한 소원이 불타올랐다.

해동이는 눈물을 머금고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우리의 마지막말을 들어주시오이다.》

《너희들은 주욕신사라는 말을 잊지 말아라.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하거니 내 어찌 대장부로서 구차히 살기를 바라겠느냐. 싸움북을 이리 다오, 완기선봉장은 령기를 들어라!》

완기는 《충청의병대》의 기발을 높이 들었다.

설향이가 남편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그의 어깨와 팔소매가 찢어져 하얀 살이 내보였다.

완기는 보드랍고 만문한 설향의 손을 꼭 잡았다. 설향이도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그들은 이 마지막순간에 마주잡은 손과 손을 통하여 뜨거운 피줄이 하나로 이어지고 생사를 함께 하려는 영원한 사랑이 맥박치고있음을 다같이 느껴안았다.

조헌의병장은 북끈을 목에 걸고 손으로 북채를 높이 들었다가 힘있게 북통을 때렸다.

《둥, 둥, 둥…》

조헌의병장은 북소리를 장엄하게 울리며 나아갔다. 왜적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충청의병대》의 기발이 나아갔다. 앞으로! 앞으로!

삼녀, 덕보, 해동이, 효숙이들은 조헌의병장의 두리에 서서 칼을 틀어쥐고 나아가고 또 그들의 곁에 말을 탄 기마대도 뚜걱뚜걱 나아갔다.

《둥, 둥, 둥…》

의병들과 승병들은 이 마지막북소리가 살아서 다하지 못한 말을 대신해주는것만 같아서 감격이 끓어올랐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이 한몸도 바친다는 자부심이 무한한 힘이 되여 온몸을 일으켜세웠다. 그 열기, 그 의기를 다 모아안고 《충청의병대》의 기발이 세차게 나붓기였다.

의병들과 왜놈들사이에 서로 이목구비를 알아볼수 있을만큼 가까와졌다.

조헌의병장은 다급히 싸움북을 울리였다. 그러자 100여기의 기마대가 질풍처럼 왜진에 뛰여들고 의병들과 승병들이 《와야-》 함성을 웨치며 뛰여들었다.

삽시에 피의 격전, 육박전이 벌어졌다. 비명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살이 터지고 아우성이 터졌다.

삼녀와 덕보, 해동이와 효숙이는 조헌의병장과 기발을 든 완기에게 달려드는 왜놈들을 무찔러버리였다. 왜놈들은 비호처럼 날구뛰는 그들의 무술을 당해낼수 없었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아비규환의 돌풍속에서 수백놈의 왜적이 죽음을 당하고 의병들과 승병들도 용감하게 거의나 희생되였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조헌의병장과 《충청의병대》의 기발을 꿋꿋이 들고 선 완기, 그 두사람을 호위하는 설향이, 삼녀, 덕보, 해동이, 효숙이, 옥섬이뿐이였다.

아니다. 령규승병장이 있다. 그는 《충청승병대》의 기발을 추켜들고 조헌의병장에게로 다가왔다.

그의 뒤에 화약연기에 그슬리고 왜적의 칼과 창끝에 찢어진 가사를 그대로 걸친채 승병 두엇이 따라섰다.

《령규승병장님-》

《조헌의병장님-》

그들 두 의병장은 이 마지막순간에 손을 굳게 잡았다.

왜놈들이 새까맣게 달려나오며 그들을 향해 조총을 쏘았다.

삼녀와 덕보, 해동이, 효숙이들은 조헌의병장을 에워쌌다.

삼녀가 조헌의병장을 가로막으며 쓰러졌다. 그다음엔 덕보가 그렇게 령규승병장을 막으며 쓰러졌다.

《삼녀-》

《덕보-》

《이 사람들아-》

두 의병장은 그들을 부둥켜안았다.

아버님… 상하지… 않으…셨소…이 …까.》

삼녀는 이같이 마지막말을 하고 숨이 졌다.

두 의병장은 뚝뚝 눈물을 흘리며 강잉히 일어섰다.

령규승병장이 문득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승병장님-》

조헌의병장이 다급히 부르짖으며 그를 안았다.

《의병장님, …소…승은… 의병장…님…과… 생사를 함께 하…였으니… 죽어…도…여한이 없소…이…다.》

령규승병장은 림종의 순간에 하고싶은 말 많고많았어도 이 한마디를 남기고 마지막숨을 거두었다.

조헌의병장은 하나밖에 없는 손을 후들후들 떨면서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령규승병장님, 스님의 애국충의는 이 나라의 하늘을 덮고 땅을 덮으리다. 이 한몸도 한줌의 흙이 되여 이 땅을 보태리다.》

조헌의병장은 결연히 우뚝 일어섰다.

완기는 승병장의 기발을 받아서 의병대의 기발과 나란히 높이 들었다.

왜놈들은 아직도 꿋꿋이 남아있는 다섯사람앞 열댓보앞에 멈춰섰다.

간악한 놈들은 조헌의병장이 죽는것을 가까이에서 보고싶었던것이다.

다섯사람의 머리우에 의병대의 기발이 나붓기고있었다.

그들의 등뒤 열서너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의병 하나가 처참하게 상처입고 피칠갑이 된 온몸을 창대에 실으며 조헌의병장곁으로 한발자국, 두발자국 가까이 가고있었다. 상투가 풀어져 흘러내린 머리칼이 피흐르는 얼굴을 덮었는데 두눈은 숯불처럼 황황히 불탔다.

그는 왜놈들과 치렬한 싸움을 벌리면서 일여덟놈을 죽이고 자신도 치명상을 크게 입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김갑석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조헌의병장과 대여섯 의병들이 의병대의 기발을 꿋꿋이 추켜들고 새까맣게 달려든 왜놈들의 무리와 맞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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