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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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중건은 새삼스럽게 자기를 분석해보았다. 그의 지적이 옳았다. 중건은 함승일이 황철을 떠난 후 그의 생활이라든가 건강보다 도면을 중하게 여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내 아직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었고 낮동안 소란스럽던 내물은 천연스럽게 유정히 흘러간다.
중건은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빈곽이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차를 보내기 전에 출장가방에서 담배를 댓곽 꺼내 주머니에 넣어둘걸 하는 후회가 든다. 참으려 했으나 허사였다.
한참이나 끙끙대며 답답해하던 김중건은 얼굴에 화색을 지었다. 그는 부리나케 내려가 차를 세워두었던 장소에 갔다. 아닐세라 승용차가 서있던 주위에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들이 있었다.
손전화기에서 호출음이 중건을 찾는다. 막내녀동생이였다.
김중건은 우선 꽁초를 까서 만 담배에 불을 붙이고나서 응답했다.
《나다.》
그러고나서는 길게 들이킨 다음에야 흡족해서 거나하게 물었다.
《이 밤중에 웬일이냐?》
《오빠, 진명이 온다는게 사실이나요?》
《응. 모레 오후쯤에 네 품에 안길게다.》
《몸은 좀 어때요? 앓진 않던가요? 밥이랑 잘 먹구요? 거긴 물이 나쁘다던데. 그앤 물갈이를 심하게 해요.》
미처 대답할 사이를 주지 않고 한꺼번에 몰밀어 묻는 녀동생이였다.
《됐다, 됐어. 걱정말아. 사내가 됐더라.》
《고마워요, 오빠. 형님이 진명이 오면 한상 차리겠다고 하던데 괜찮아요. 우리 집에서 하는게 옳지요. 출장길에서 돌아오면 형님과 함께 집에 내려오세요. 오빠, 고마와요.》
훌쩍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김중건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러면서도 즐거웠다.
《얘 중숙아, 그만해라. 그리고 내 말대로 해다오. 진명이 오면 우리 집에서 하자. 아들이 어디 날아가는것두 아닌데 그담에 실컷 끼고 있으려무나. 알겠니?》
통화를 끝낸 김중건은 사방을 두리번거리였다. 자야 했고 그러자면 그런대로 마땅한 잠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는 둔덕밑의 한켠에 무엇인지 쌓아놓은 무지를 발견했다. 가보니 해묵은 강낭짚무지였다. 낮에 내린 비로 겉은 축축하였으나 헤집어보니 그런대로 잘만 하였다.
(호사로군. 오늘 밤엔 만사를 젖혀놓구 실컷 자보자.)
잠자리가 불편하여 처음엔 뒤치락거렸지만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깊은 잠에 푹 곯아떨어지고말았다.
×
《이건 도대체 뭐요?》
불현듯 정수리를 치는 벼락같은 노성에 김중건은 눈을 떴다. 그는 따갑게 내리비치는 아침해빛에 눈이 시그러워나 감았다떴다. 산림감독원차림을 한 함승일이 앞에 서있었다.
《진짜 노죽부리겠소?》
《…》
《갑시다.》
중건은 제잡담하고 손을 잡아끄는 승일에게 이끌려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세웠다.
《여보, 성미 엄마.》
대문을 차다싶이 하며 들어서자바람으로 함승일이 소리지른다.
《물 떠오우. 아침식살 빨리 준비하구.》
소동이 일어났다. 처가 달려나오고 딸이 중건의 웃옷을 벗긴다. 푸푸 세면, 부서지는 맑은 물방울, 번쩍 드는 정신, 어 좋다. 창자를 뒤집고 머리를 휭 잡아돌리는 부엌안의 냄새.
김중건은 기분이 상쾌하여 세면수건으로 볼이며 목을 문지르면서 말을 건네였다.
《수질이 좋소. 여기 물인가?》
《여기 물 아니면 해주에 가 실어오겠나?》
《음- 광산지구인데 좋은 물이 있구만.》
김중건은 방문턱을 넘어섰다. 벽에 걸어놓은 검은 잣버섯꿰미들, 까다만 잣송이들이 모아있는 방구석, 다른편의 벽에는 메돼지가죽이 걸려있었다.
《어 이거 메돼지까지. 사냥두 하나?》
《사냥이야 무슨. 메돼지성화가 심해서 사냥군을 데려다 혼쌀냈지. 한방 울렸더니 그담부터 화약냄샐 맡았는지 얼씬 안하누만.》
《산골치구는 그리 깊은 곳은 아닌데 메돼지가 있나?》
《메돼지뿐이겠나. 노루랑 사슴두 있어. 진짠지는 모르겠소만 요전에 산리용반의 한 녀인이 말하기를 30년전에 사라졌던 승냥이를 제 눈으로 봤다던지. 그만큼 산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걸 말해주지.》
어딘가 모르게 제 자랑을 하는것처럼 들리였다. 김중건은 한마디 롱담삼아 핀잔을 주었다.
《산소열법용광로를 설계한 재능있는 기사가 산림감독원에 메돼지사냥이라. 참 잘 어울리는데.》
《왜 그뿐이겠소. 인차 군에서 열리는 국토관리부문열성자회의에서 첫번째로 토론하는걸.》
《잘하누만. 마당에 가득한 집짐승이랑 보니 함동문 여기가 몸에 붙는것같애. 황철에서 안되던 축산이랑 산천리에서 성공한걸 보라구.》
《욕심나면 갈 때 마음나는대로 가져가라구.》
《어- 이거, 난 롱담을 하는데 오는 차림이 가파롭다.》
《피장파장이야.》
김중건은 뼈가 박힌 응대를 계속 받아주다가는 감정이 상할가봐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