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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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렬차가 출발하자 주영호는 들고있던 책을 식사탁에 놓고 호실밖으로 나왔다. 그는 보호가름대를 잡고 차창을 스쳐가는 이국의 풍경에 시선을 주었다. 하늘을 찌를듯이 높은 초고층건물들, 붉고 푸른 혹은 진밤색과 록색유리로 지은 각종 봉사건물들, 여러 묶음의 립체다리로 조화된 교통망, 그우에서 쉴새없이 오가는 차량들. 풍경은 조국을 떠나올 때처럼 각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것이였건만 지금은 아무런 흥심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려행길에서나마 잊으려고 했던 중압감에 배경까지 받쳐 더 큰 짐을 얹어주는듯 하였다.

주영호가 이끄는 대표단은 이번 걸음에 기대와는 다르게 농사로 말하면 흉작이였다. 상대방의 파렴치한 정치적부대조건과 표리부동, 그에 따른 주영호의 주동적인 결심에 의하여 량국간에 체결되였던 경제협정이 파기되였던것이다.

그는 자기가 내린 결심에 대하여 후회하고싶지 않았다. 이 땅에 태를 묻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인들 그따위 요구에 머리를 숙이고 받아들이겠는가.

2박3일간 진행한 면담 전 과정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격분으로 하여 치가 떨리는 주영호였다.

《귀국에서 요구한 설비들의 수요가 전에없이 높아지고있지만 귀국의 형편을 잘 알고있는 우리는 가격을 그대로 누르기로 했습니다. 귀국을 도와준다는것은 하나의 대단한 용단이며 힘든 결심이지요. 하지만 우린 약속은 지킵니다.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하며 큰 선심이나 베푸는것처럼 처신하던 상대였다.

그러던것이 하루가 지나서 《그 설비들은 다용도화된 설비들이여서 우리 나라에서도 수출을 제한하고있습니다. 수출하는 경우 반드시 여러 기관과 토의하여 공동합의를 봐야 하며 그에 따른 수속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이게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인지 모릅니다. 이 공정을 거쳐서 귀국에 필요한 설비들을 납입하자면 상당한 시일이 걸립니다.》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대책을 강구해보자는 주영호의 제의에 상대방은 《그 설비는 제재항목에 속해있는것이여서 일단 조선에 수출되면 우리는 즉시에 다국적제재와 압력을 받게 됩니다. 이 문제는 조선반도의 정세안정을 둘러싼 각국사이의 회담들에서 귀국이 약간의 타협적인 태도만 보이면 순조롭게 풀리게 됩니다.》라고 하는것이였다.

상대방의 불순한 의도를 알아차린 주영호는 앞차대를 치며 자리를 차고일어나 이 문제는 이미 합의된것인데 이제와서 생뚱같이 정치적부대조건을 내세우는 리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몇가지 설비구입에 목이 메여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팔수는 없다고 하면서 그의 제기를 일축해버리였다.

결국 면담은 영호의 강경한 자세와 상대방의 어정쩡한 태도로 하여 끝을 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말았다. 계약을 파기하고 호텔을 나설 때에야 주영호는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결심을, 그것도 단독으로 내렸는가를 의식하자 심장이 떨리였다.

《너무 오래 나와계시지 않습니까?》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이국의 풍경을 흥심없이 내다보던 주영호는 귀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였다. 흰 넥타이에 연푸른색샤쯔차림을 한 신석진이 문가에 서있었다.

《음, 머리쉼을 좀 하댔소.》

그래도 물러가지 않고 주의깊게 여겨보는 석진이였다.

《허- 왜 그러우. 내 얼굴에 뭐이 묻었는가?》

《아까부터 이상하게 생각되던데 부총리동지. 어디 불편한데가 있지 않습니까? 얼굴빛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그리 보이우? 긴장이 풀려서 그러겠지 뭐.》

한손으로 볼을 쓸어내리며 흔연하게 대꾸했다.

신석진이 곁에 다가와 보호가름대에 두손을 얹으며 묻는다.

《저, 부총리동진 청진쪽에 언제 내려가실 예정입니까.》

《건 왜 묻소?》

《개인적인 부탁 하나 드릴게 있어서 그럽니다. 거 김철에 가있는 우리 신정이 말입니다.》

《오 참, 맏딸이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에 참여한다고 했지. 이름이 신정인가?》

《예. 언제부터 도입한다는게 왜 그리 늦는지. 출장을 떠날 때 그애한테서 전화가 왔댔는데 고온공기연소기술에 관한 도서들을 구입해달라질 않겠습니까. 한데 출장기일이 뜻밖에 단축되는 바람에 어디 책을 구입할 시간이 있어야지요. 그래 책은 기회를 봐 다른 걸음에 궁리를 해보기로 하고 그애 약을 샀습니다. 워낙 애가 외지에 줄곧 나가살다보니 제 몸 돌볼 생각을 하지 않아 속이 곯아있습니다.》

《그야 어렵겠소. 오늘중으로 귀환총화를 하구 인차 내려갈 작정을 하고있는데 도착하는 즉시로 전해주지.》

《그리고.》

신석진이 약간 어줍어하였다.

《신정이 나이가 과년합니다. 그애한테 애인이 있었는데 일하다가 희생되였지요.

시간이 허락되시면 신정이가 대체 어쩌구있는지 한번 만나봐주면 고맙겠습니다. 사업부담이 많은 부총리동지께 지나친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 별소릴. 알겠소. 참, 내 동무네 딸과 첨 만난게 전자공업위원회(당시)에서 일할적이였던가?》

《그쯤 될겁니다.》

《기억할가?》

주영호는 머리를 기웃하다가 석진에게 단언하였다.

《하기야 상관없지. 내 꼭 만나보겠소.》

《고맙습니다.》

대화가 끊어졌으나 석진은 물러갈념을 안하고 무엇인가 말할듯말듯한 눈치였다. 종내 주영호가 입을 열지 않자 신석진이 용기를 낸듯 하였다.

《부총리동지, 제 이번 회담에 참가하여 그 사람들이 우리 석탄에만 신경을 쓰고있는걸보니 역시 합영투자위원회가 공문을 하나 준비하고있는 일이 옳다는것을 느꼈습니다.》

주영호가 돌아서자 그가 하는 말이였다.

《공문?! 무슨 내용이요?》

《내각이 질좋은 석탄이 매장되여있는 탄광을 합영투자위원회에 댓개정도 넘겨달라는겁니다.》

신석진은 아예 탄광의 이름까지 거들었다.

《여보, 당신네 그새 석탄을 꽤 많이 모았겠는데 아직 모자라우?》

《부총리동진 합영투자위원회를 굉장히 욕심많은 기관으로 여기시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석탄 t당가격을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정세의 영향으로 판로가 불안정한데다가 정작 팔자구 보면 가격투쟁을 간단치 않게 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놀음을 다 걷어치우고싶습니다. 이렇다보니 기관에 무슨 큰 돈이 있겠습니까. 말이 합영투자위원회지 주머니는 곯아있는 기관입니다.》

주영호는 신석진의 억울해하는듯한 대답을 귀등으로 넘기고는 그를 타매하였다.

《동무네 공문은 헛수고가 될거요. 우선 금속공업에서는 날이 갈수록 연료, 원료로서의 우리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있소. 남흥이랑 흥남은 석탄가스화에 의한 비료생산을 추진하고있소.

이 모든 기술들이 성공하여 이전확대되면 금속이나 화학공업뿐 아니라 건재, 세멘트, 지어 도자기공업부문에서도 석탄은 피처럼 쓰이게 될거요. 그리고 가까운 앞날에 탄소하나화학공업이 창설된다는것은 동무에게도 귀가 선 말이 아닐거요.

그러니 신동무, 내 충고하는데 이 땅의 물과 공기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수출생각 그자체를 죄스럽게 여길줄 알아야 하오.》

《제 괜히 입빠르게 이런 얘길 꺼냈군요.》

신석진은 변명조로 뇌이였다. 그랬어도 뒤걸음은 하지 않는 석진이였다.

《옳습니다. 부총리동지얘기야 그른데 없지요. 하지만 지금 그런걸 내놓구 돈이 될만한게 뭐가 있습니까. 이자도 말씀드렸지만 아닌게아니라 그 사람들의 태도를 보십시오. 본 의제는 이 피탈 저 피탈 하고서는 석탄이야기만 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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