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2 장
17
(1)
얼마후 무산광산 문화회관에서는
이내 주영호가 연탁에 나섰는데 그의 손에는 그 어떤 보고서 같은것이 들려있지 않았다. 입을 열기에 앞서 장내를 둘러보았다. 수백쌍의 긴장어린 눈동자들이 연탁으로 쏠려있었다.
회의장출입문이 슬며시 열리며 낯익은 한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들어온다. 최정봉이였다. 출장길에서 금방 들어서는 걸음인 모양이였다. 그는 허리를 굽힌채 조심히 걸어 맨뒤의 빈좌석에 들어가앉는다.
주영호는 가벼운 헛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말문을 열었다.
《나는 협의회에 앞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이번에 나는 경제협조문제로 어느한 나라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제협조문제라는것이 어떤것인가. 그것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우리 나라와 그 나라사이에 맺은 국가간의 협정이기때문에 충분한 법적효력을 가지고있는것으로서 그 어느 나라나 이것을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은 어떤 결과로 끝나게 되였는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야기의 내용이 깊어질수록 그 파문은 고랑과 이랑을 뚜렷하게 나타내였다. 여기저기서는 벌써 분노에 찬 날카로운 파도들이 솟구치였다. 나중에는 격랑을 일으켰고 그것은 소용돌이로 변해버리는것이였다. 하도 반응이 격렬하여 주영호는 말을 멈추고 진정시키지 않을수 없었다.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시 하였다.
《무산광산에 내려와 역시 나는 이와는 다르지만 류사한 내용의 문제에 부닥치게 되였습니다. 동지들도 아다싶이 광산의 기술자, 로동계급의 헌신적인 투쟁으로 우리는 파쇄장건설을 한겨울에도 다그쳐 기계설비만 가져다 설치하면 시운전을 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시운전을 제기일내에 보장하자니 광산자체의 힘으로는 부치게 되였습니다. 할수없이 다른 나라에서 기술자, 기능공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이제 다시 대표단을 파견하여 면담을 하려면 손해배상부터 해야 하며 기술자, 기능공들을 데려왔다 해도 약차한 로력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자는대로 덧없는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말씀들 해보시오. 동지들, 그래 대표단을 보내는게 옳습니까?》
이것은 후날 사실로 증명되였다. 해당 나라에서는 기계설비는 반입하였으나 《와쎄나》에 구실을 대고 이 기계설비와 함께 주게 되여있는 종합조종체계를 떼버리고 넘겨주었다. 말하자면 박토처리능력은 크지만 콤퓨터에 의한 종합조종체계를 떼버렸으므로 수동식으로 조종하게 되여있었다.
주영호의 말이 정작 자기들의 사활적인 문제에로 접근하자 장내는 물을 뿌린듯 조용하였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할 정적이 길게 흘렀다.
지루할 정도로 흐르는 정적을 깨치며 중간쯤에서 천리선이 일어섰다. 그런데 리선은 회의흐름과는 다르게 맨앞 두번째줄의 의자에 머리를 짓수그리고앉은 돌격대를 책임진 부기사장을 부르는것이였다.
《이보게 양원일부기사장, 동문 어째 한마디 못하나.
《…》
《
《…》
그를 한참이나 응시하던 천리선이 쉭쉭 새는 소리를 내며 심정을 털어놓는다.
《양동근이라고 저 사람 아버지는 지금 젊은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면 그야말로 무산골동이지요, 해방전부터 있었으니까요. 왜정말기에 섬오랑캐들의 극도에 이른 정광략탈에 분노해서 〈명치끝에 대장염이 와 소화 못시킨다〉는 노랠 지어불렀다가 〈천황〉모독죄루 잡혀가 왜놈헌병들에게서 곤욕을 치렀다는 사람이 바루 저 사람의 아버지지요.
내 저 부기사장의 아버지에게서 배운것이 많고 들은것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전쟁때 3광구채굴장에 올라가 품위높은 쇠돌을 찾느라 애쓰던 일이랑 청진제강소에 등짐으로 혹은 달구지로 날라갔다는 이야기랑 잊혀지지 않지요.
한발의 수류탄을 더 생산하려구 교대전에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가며 연장작업을 했다는 얘기도 그렇지요. 수류탄생산을 늘이기 위해서 자체로 1. 5t짜리 용선로를 제작하다가 로폭발로 부기사장의 아버지는 한팔을 잃고 전신화상을 입었댔수다.
이보 부기사장, 자네 어릴적에 부친의 의수를 놀이감처럼 가지고놀다가 제 모친에게 혼이 났던 생각이 나나?》
《아바이.》
부기사장이 갈린 음성으로 밀막았다.
《그건 오늘 협의회와는 다른 화젭니다.》
《다르긴 뭘 달라. 과학기술도 어쨌든간에 신념에 관한게 아닌가. 이자 부총리동지가 한 얘기를 못들어봤나, 우리 나라가 강국으로 일어서는게 배아파하는것들이 어떤 무엄한 요구를 꺼리낌없이 내드는지. 난 오늘 협의회에 참가해서 왜 내 기술자가 되지 못했는가 후회가 들어. 천리선이 기술자라면 자네처럼 행동하지 않아.》
《그만하십시오.》
부기사장이 또 밀막더니 몸을 일으킨다. 그는 주영호에게 직판 들이대는것이였다.
《방금 부총리동지가 말씀을 했는데 궁극에는 대표단을 보내지 말자는거지요?》
《그렇소, 내 립장은 바로 그거요.》
《그럼 끝까지 무산사람들을 믿어야 할거 아닙니까.》
부기사장은 앞사람의 의자등받이에 얹었던 손을 떼였다.
《사실 저는 련합당위원회로부터 현대화돌격대를 조직하고 책임질데 대한 과업을 받고서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저는 1980년대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제가 과연 콤퓨터조종체계를 갖춘 현대파쇄기의 시운전지도서를 작성할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것을 배워낼수 있겠는가 이런것이였지요.
이런 속에 현대화지휘부의 여러 일군들이 다른 나라의 기술자, 기능공들을 데려온다고 하길래 손맥을 놓기보다는 그들이 조작하는것을 보면서 연구하면 더 좋지 않는가 하는, 한마디로 의존심이 생겨 속도를 늦구었댔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알았습니다. 부총리동지가 말씀하는걸 들으니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새 기계설비를 시동시키는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소극성과 기술신비주의를 비롯한 잡사상과의 투쟁이며 나아가서는 당의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고 민족적자존심을 지키는 사회주의수호전이라는것을 말입니다.
우린 해낼수 있습니다. 제자체가 현대화돌격대가 조직되여 재교육을 받는 과정에 많은것을 알게 되였으며 더우기(여기서 그는 서너줄건너에 앉아있는 돌격대원들을 가리켰다.) 여기 이 젊은 동무들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작으나마 저의 조언을 주며 함께 일하는 과정에 기술적담보를 적지 않게 축적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부총리동지.》
부기사장이 애젊은 돌격대원들에게 몸을 반쯤 돌린다.
《광성이, 철수 그리고 동무들, 우리가 해낼수 있는지 없는지를 온 광산이 다 듣게 말해보라우, 응?》
기다린듯 용수철마냥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 돌격대원들이다.
《옳습니다. 우리에게는 당의 믿음이면 됩니다.》
《무산사람들을 믿으십시오. 해내겠습니다.》
《우리는 당이 바라는것이라면 해내야 하며 해낼것입니다. 우리 광산의 력사가 그걸 증명하고있습니다.》
감동과 흥분으로 술렁이던 장내가 주영호가 박수를 치자 소낙비와 같은 박수소리로 화답한다. 박수소리는 오래동안 울리였다.
로천분광산에 올라갔던 방송선전차가 내려오는지 창밖에서 노래소리가 들리였다. 선률에 담긴 결사의 감정이 순식간에 장내를 휩쓸었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가 심장의 피를 끓게 하였다.
고난의 행군길 피로 헤쳐
사령부 지켜낸 7련대
성새와 방패된 그 정신
이 길에 떨친다
혁명의
오늘의 오중흡7련대 7련대 되리라
협의회는 원래 원추형파쇄기시운전과 관련된 문제가 중점이였는데 격앙된 대중의 분위기를 포착한 현대화지휘부와 련합당위원회일군들이 또 다른 난사인 대형원추형파쇄기와 100t기중기수송문제를 두번째안건으로 내놓았다. 대중의 심장이 하나로 끓어번지는데야 무슨 묘안인들 나오지 않았겠는가. 추레라에 파쇄기를 싣고 앞에 두대의 불도젤, 뒤에 한대를 세워 서로 견인지지하며 수송하자는 안, 대담하게 세 부분으로 해체해서 수송하자는 안을 비롯하여 소극과 보수, 의존을 짓부시는 수많은 안들이 속속 나왔다. 협의회는 저녁늦게야 끝이 났다.
《수고했습니다, 부총리동지.》
회관앞마당가녁에 서서 담배를 꺼내들던 주영호에게 최정봉이 다가온다.
《어디서 그런 멋있는 정치사업을 배웠습니까. 하기야 당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분인데 어련할라구.》
《경험이 뭐요, 진실을 말했을뿐인데.》
《합격입니다. 수송대에 들어갈만 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파쇄기수송대 말이지요. 강무리서부터 높고 험한 령들을 넘어야 하는데다 파쇄장까지 올리자면 생명을 내대야 합니다.
부총리동지 성미에 가겠다고 할건 뻔한데 원래는 빼놓으려 했지요. 내 합격이라는건 그 소리입니다.》
《원, 최동무두. 내 무산개건현대화 맡은 사람인데 위험하다구 몸을 뺄것같소? 같이 갑시다.
참, 이자 들었소? 동무네 기술자들이 외국기술자들은 물론 중앙의 도움도 거절하는걸 말이요.》
《그러게 내 합격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내 말은 전연 믿질 않는군.》
최정봉이 괴춤에서 눈에 익은 알루미니움담배곽을 꺼내들었다.
《좋습니다. 합격이라는 의미에서 부총리동지에게 좋은 담배 드리겠습니다.》
《아아, 그 담배라면 싫소. 날 이번엔 아예 길바닥에 쓰러지게 만들 작심이군.》
손을 내젓는 주영호의 태도에 의아해하던 정봉은 지나간 일을 기억하고서야 내밀던 담배대를 내려다보았다.
《아하, 내 그걸 잊었군. 부총리동지가 다른건 다 센데 무산독초엔 약골이지.》
《뭐, 약골? 이 사람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인주우.》
주영호는 불끈 밸이 나서 담배를 앗아들고 라이터를 켰다.
혼이 난 경험이 있는지라 살살 얼리면서 삼켰으나 올데갈데없는 모양을 보이고야말았다.
최정봉은 그의 객기를 혼내준것이 시원한지 목을 뒤로 젖히고 크게 웃어댔다. 주영호도 연해연방 눈물을 씻어가며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