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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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처럼 조용한 방안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탁상시계의 명랑한 음악선률이 울리였다. 김형규는 일손을 놓으며 박사원생들에게 식사하러 가라고 일렀다. 그는 채호명아바이가 우리모두를 저녁식사에 초청했으니 배를 될수록 비우라고 말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콤퓨터탁우에 산만하게 놓여있는 기술문헌들을 정리하고난 형규는 신정을 찾았다. 고온공기연소가열로의 련동모의시험을 할수 있는 프로그람제작이 끝나면 신정이와 토론해보기로 약속했던것이다. 손전화기에서는 봉사구역밖이라는 친절한 알림음성이 나온다. 어디에 있을가, 또 열간압연직장에 가있는가?
김형규가 매양 느끼는것이지만 신정은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에 비해 일단 론리를 펴면 빈틈없이 정연했고 설득력이 강했다. 여기에 남자들도 무색케 할만한 대범성은 얼마나 형규를 놀라게 하였던가.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도입안이 드디여 책정이 되고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현장지휘부가 구성되였으며 형규는 설계분과의 책임자가 되였다. 그런데 그후 분과의 사업분담을 위한 회의를 열었을 때의 일이였다. 사업조직을 하려고 연탁에 나와 회의장을 둘러보던 김형규는 불쾌감이 치밀어올라 한동안 발언을 하지 않았다. 금속연구소며 김책제철련합기업소를 비롯하여 련관단위들에서 선발된 기술일군들이 거의나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대리로 참가한 이들은 부서와 단위에서 말직에 있는 사람들이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주체가 되여 밀고나가는 일이니 그저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된다는 심리가 충분히 엿보이는 광경이였다.
맥이 풀리는것을 가까스로 다잡은 김형규는 사업수첩을 펼치고 구체적인 분담을 시작하였다. 김형규의 발언은 10분이 채 안되여 끝났다. 신정이 설계분과의 부책임자였으므로 김형규는 그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처녀가 일어나 입을 열었다.
물론 기성의 고온공기연소기술에는 금속연구소와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과학자, 기술자, 로동계급의 피땀이 깃들어있다. 그러나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도입방식이 우리가 완성한 기술보다 훨씬 앞섰고 경제적으로도 실리에 맞다는것을 인정하면서도 손이 시려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이것은 본위주의일뿐더러 하나의 시기이고 질투이며 나아가서는 우리의 연료, 우리의 기술에 의한 철강재생산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사상문제로 떨어진다. 옳지 못한 이런 견해를 대담하게 버리자. 현장도입에서 우리가 얻은 귀중한 경험을 보충해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고온공기연소기술안을 완성하자. …
그리 길지 않은 말이였으나 내용은 이렇게 자못 심각하였다.
김형규는 이날 신정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였다. 귀중한 처녀시절을 이 기술개발에 바친 처녀, 그 나날 애인까지 잃은 신정, 이런 처녀가 우리의 도입안을 적극 지지하는데로 돌아섰고 사람들에게도 같이 행동해줄것을 절절히 요구한다. 자기들의 창조물을 선뜻 포기하고 견해를 바꾸기 전까지 신정은 얼마나 큰 고민과 번뇌속에 시간을 보냈겠는가. 아직도 형규는 김책공업종합대학도입안이 책정되였을 때 처녀의 창백한 얼굴빛이며 눈가에 맺힌 물기가 눈에 선하였다.
어데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처녀의 모습, 중키에 좀 가늘사한 눈, 어딘가 애수가 깃든것같은 타원형의 얼굴, 늘 보게 되는 잠바형식의 쑬쑬한 작업복차림, 그러나 신정은 평범한 녀성이 아니였다. 외형은 비록 평범하였으나 신정에게서는 정신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이 진하게 발산되고있었다.
과학앞에 성실하고 량심적이며 순결한 인간! 김형규는 그의 정신세계에 감심이 되였고 존경이 갔다. 그와 직접 손을 맞잡고 일해오면서 김형규는 자기의 평가가 옳다는것을 시시각각 체험하게 되였다. 신정이 가지고있는 높은 실력, 현장도입경험은 모의시험에 필요한 프로그람제작에 큰 도움이 되였다.
김형규는 신정을 만나고 머리도 쉬울겸 열간압연직장에 나가보기로 결심하고 려관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되였는데도 가열로개조전투장은 여전히 들끓는 분위기였다. 한켠에서는 해체한 오물을 실어내가고 다른켠에서는 가열로를 들여앉힐 기초콩크리트타입과 함께 설계도면의 요구대로 제관작업을 진행하고있었다.
강괴관리직장의 야적장을 지나 현장에 도착한 김형규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기초콩크리트작업장부근에서 무엇을 공급하는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있고 한켠에서는 지게차와 소형화물차들이 꾸물거리며 분주히 나드는것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까닭을 알게 되였다. 가열로를 해체하고 개조하는 과정에 내화물문제가 물망에 올랐는데 론난이 있었다. 기업소의 내화물직장에서 생산하자니 량이 아름찼고 시간이 부족하였으며 사오자니 자금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국가의 도움을 바란다는것은 곧 당에 손을 내미는것으로 되는것이다.
결국 본래의 가열로가 차고있던 내화벽돌을 재생해서 쓰는것으로 토론되였다. 하지만 재생해야 할 내화벽돌량이 엄청나서 현장지휘부와 열간압연직장로력을 가지고는 어방없었다. 이것을 알게 된 련합기업소당위원회가 대중에게 호소하였는데 녀성과외지원대가 맨 처음 호응해나섰고 그뒤로 하루교대를 마친 이웃직장사람들이 합세해나섰다. 이제는 여기에 일군들과 가두녀성들, 출장자들까지 자원적으로 동원되였다. 그러다나니 요즘 가열로현장은 늘 재생할 내화벽돌을 타러 오는 차들이며 사람들로 붐비군 하였다.
김형규는 함경도사투리가 유별나게 심한 녀성과외지원대장의 높은 음성이 들려와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였다.
눈매가 억실억실한 대장녀성은 내화벽돌을 섬겨주며 한창 강창길반장에게 지청구를 하고있었다.
《아이- 이 아주바이 무슨 욕심이 그리 많소. 용광로에선 일은 안하구 내화벽돌만 주무르구있을셈이요?》
창길반장은 소형화물차 두대를 끌고왔는데 적재함이 볼썽사납게 찌그러질 정도로 박아싣고도 그옆에 세워놓은 달구지만한 손수레에 또 싣고있었다.
《이런 욕심이야 뭬라오. 아이들한테두 댓장씩 줄라 그러오.》
김형규는 창길반장의 일손을 덜어줄 생각으로 팔소매를 걷어붙이였다. 가녁이 긁히고 몸뚱이에 혼합물찌꺼기가 가득 달라붙어 둥그런 바위같이 생긴 내화벽돌을 한장 집어들고 눈인사를 했는데 어찌된셈인지 아무런 표정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못봤는가?)
무안해난 형규는 몇장을 뒤사람에게 섬기다가 《요즘 쇠물 잘 나옵니까?》 하고 이번에는 말을 건넸다. 한번 흘낏 돌아보고는 묵묵부답이다.
(이상하군. 무슨 옥한 일이 있어 그럴가, 확 트인 남자성격인데.)
강창길반장과 대상하면서 처음 보게 되는 모습이였다.
소형반짐차 한대가 강창길이네 뒤를 물고 산같은 내화벽돌무지앞에 굴러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정구철이였는데 그는 웃동을 활활 벗으며 호기있게 소리친다.
《자, 대김철의 녀장수들, 제꺽 한차 실어주.》
《언제 봐야 부기사장동진 냅다 올려추구는 일시킵니다. 우리네들 배가죽이 어디 붙은줄 압니까?》
대장녀성이 《힐난》하자 정구철은 차적재함을 가리켰다.
《그래 내 뭘 좀 실어왔소. 우리 과외지원대가 상차작업을 한다는 말 들으니까 내사 가만있으면 되오?》
《엄마나- 나는, 기차라.》
적재함을 기웃이 들여다보고난 대장녀성이 탄성을 질렀다. 적재함에는 댓개의 과자마대와 단물 세 지함, 고아댈가봐 술을 잔뜩 먹였는지 눈이 게슴츠레해가지고 네발을 묶이운채 누워 씩씩대는 100kg은 실히 될 돼지 한마리가 실려있었다.
《성희야, 오늘 저녁엔 혼자 가오, 부기사장동지는 우리가 모시겠다. 큰걸 받으면 인사있어야 되지 않소.》
성희란 정구철의 딸이름이다. 정구철의 안해도 과외지원대원이였다.
《여보, 대장 말대루 합소. 내 오늘 저녁은 혼자서 과외지원대를 다 치르겠어.》
녀인네들의 걸죽한 롱담을 잘 받아넘기는 정구철이다. 그는 불룩불룩한 팔과 가슴근육을 두드려보였다.
《아직
몸이 갈람한 정구철의 처가 내화벽돌을 안고 적재함으로 가며 주의를 준다.
《래일 아침에 어떤 모습으로 내앞에 나타나겠는지 눈에 선합니다. 필경 대장잔등에 업혀올거야.》
모두들 제나름대로 크게 웃어댔다. 웃다가 재채기를 하는 녀인도 있었다. 정구철이도 우스운지 하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러던 구철은 무르팍을 철썩 갈겼다.
《잊었구만. 하나 또 있소, 이게 진짜 기본인데. 16시경에 우리 회관에서 공연을 하오, 국립연극단의 경희극 〈산울림〉을 말이요.》
주위에서 요란한 환성이 터졌다.
적재함에 거지반 싣게 되자 정구철은 형규의 손을 잡아끌었다.
《저리 좀 가기요.》
김형규는 팔소매를 내리우며 그를 뒤따랐다. 내화벽돌무지에서 예닐곱걸음쯤 가자 정구철은 돌아서며 대뜸 본론에 들어간다.
《선생은 어째 사고조서수표를 회피하오?》
《무슨 사고조서 말입니까?》
《거 있지 않소, 배풍기날개개작에 관한거 말이요.》
《아, 알만합니다. 그런것두 사고조서가 필요합니까?》
정구철의 얼굴에 어이없어하는 한줄기의 기색이 스쳐지나간다.
《거기엔 뭐 사고방지대책규정이 적용 안되는줄 아오?》
《예, 예, 알겠습니다. 수표합시다.》
정구철은 형규를 일별해보고나서 온다간다 소리 한마디없이 작업장에 돌아갔다. 인차 그쪽에서 롱담조의 힘찬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맙소, 녀장수님네들. 불이 번쩍나게 해치웠구만. 우린 떠나갑니다. 아참 대장아주마이, 좀 있다 내 차가 오문 거기에 한 열댓장 싣소. 주영호내각부총리동지가 부탁한거요. 현대화진척실태를 알아보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까 자기도 손을 보태겠다고 하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