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첫 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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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장막같은 어둠이 시당청사구내를 채우는 시각에 누군가 자전거를 밀며 밖으로 나오고있었다. 보통키에 얼굴이 단정해보이는 그는 얼마전에 두연오리공장 당비서(당시)로 임명받은 신형일이다.

임명받은 그날 마침 시당에 회의왔다가 찾아온 두연오리공장의 지배인이며 기사장과 인사를 나눈 신형일은 인계사업을 끝낸 즉시 공장에 나갈것을 약속했었다.

사품정리까지 다 끝낸 오늘 신형일은 곧장 시당위원회 책임일군을 만났다. 나이가 지긋한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저 현대화를 하고있는 공장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는 한마디였다.

그속에 자기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깃들어있음을 느낀 신형일은 방금전까지 퇴근하려던 생각을 달리했다. 이밤으로 공장에 나갈 생각이 불쑥 들어서였다. 그래서 자전거를 끌고나오는 길이였다.

불빛 환한 정문으로 시인민위원회 부장인 강시연이가 들어서는게 보였다. 신형일은 자전거손잡이를 쥔채 그 자리에 멈춰섰다.

뽑아올린듯 쭉 빠진 그의 체격은 미츨한 수삼나무를 련상케 했다. 기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번듯한 그도 신형일을 알아보았다.

신형일은 자전거를 끌며 앞으로 나섰다. 그와는 지도소조에 망라된 적이 있어 지나칠수가 없었다. 그보다도 강시연은 아버지와 상하급관계였었다. 부대장이였던 아버지의 부대에서 신입병사 강시연이가 복무했었다. 단지 신형일이 그 말을 하지 않아 강시연이가 모르고있을뿐이였다.

《두연오리공장의 당비서가 됐다지? 부서에 매이는것보다 한 단위를 맡는게 해볼만하지 뭐.》

강시연이가 신형일을 내려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그는 지난때의 지도소조시기 책임자처럼 하대조로 대했다. 하긴 그것이 친근감으로부터 오는 감정인지도 몰랐다.

《글쎄, 꽤 해내겠는지. 그런데 어떻게 퇴근시간이 넘었는데 오십니까?》

신형일이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키가 큰 강시연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일이야 어디 정해진 시간이 따로 있나. 이번에 시내 몇개 공장을 료해했는데 그때 제기된게 있어서 오는중이요.》

말은 간단했지만 어딘가 침침해보이는 얼굴이였다.

강시연은 더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돌아섰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모양이였다.

신형일은 오늘따라 별로 다리가 휘친거리는듯한 그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업에서나 개체생활에서 흠잡을데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있는 강시연이였다. 그런 그에게 별다른 큰일이 있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신형일은 자전거를 앞으로 끌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후에 바뀌여진 환경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정문앞까지 나온 신형일은 문득 멈춰섰다. 이길로 공장에 나간다면 집에 언제 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손전화기를 꺼냈다.

안해는 자리를 떴는지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신형일은 공장에 나가는 사유를 간단히 전했다. 공장말이 나오자 아버지가 곡진하게 당부했다.

《그래? 그럼 전에 말했던 그 사람을 알아보거라. 이젠 기사장직을 내놓았겠지만 그 고장이야 뜨지 않았겠지. 기회를 봐서 내 안부를 전하거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심한 정으로 가득차있었다.

오리공장의 당비서로 임명되였다는 소식을 들은 첫날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있는 공장의 기사장에 대해 추억했던것이다.

(그의 이름이 차학선이랬지.) 신형일은 이렇게 입속으로 외우며 곧추 난 큰길로 자전거를 달리였다. 립춘이 지난지도 스무날이 지났지만 어둠이 깃든 거리에는 쌀쌀한 바람이 제세상처럼 돌아쳤다.

시내길이 끝나고 대동강동뚝우로 달릴 땐 가방속에 넣은 솜덧옷을 껴입고싶을 정도였다. 강바람은 흡사 겨울로 돌려세울 심술이라도 부리는듯 자전거를 맞받아 불어쳤다. 동뚝밑에 자리잡은 오리공장이니 이제부턴 이런 바람세례는 늘 받아야 할것이다.

마치 강바람은 새 주인이 이 고장에서 살 자격이 있는가 하고 검토라도 할듯 접어들었다. 강바람아, 불어라. 나는 여기서 살 주인이란다. 내가 꽤 견디겠는지는 앞으로 두고보자.

신형일은 자전거우에서 몸을 쭉 폈다. 대번에 가슴속으로 써늘한 바람이 새여들어왔고 볼이 얼얼해났다. 그래도 신형일은 발디디개를 힘있게 돌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다리가 뻐근해난 신형일은 자전거의 속도를 늦추었다. 이 상태로 얼마나 더 가야 공장에 가닿겠는지 궁금해났다. 그는 누구에게라도 물어볼 생각으로 두리번거렸다.

달빛에 반사된 강물덕으로 훤한 길거리엔 례외로 인적이 많았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이 연줄연줄 이어졌는데 대개가 녀인들과 학생들이였다.

마침 목청을 돋구며 마주오는 세 녀인이 눈에 띄우자 신형일은 자전거에서 내렸다.

키도 생김새도 각각인 그들은 모두 산 오리를 쥐고있었다.

《아이구나, 그래도 보기야 얼마나 좋니.》

무슨 말을 하던중인지 키가 큰 녀인이 긴 목을 뽑으며 하는 소리였다.

《정말 그래. 늘 봐야 인상두 좋구. 사내싸게 생긴 사람이 싱글싱글 하니 얼마나 보기 좋아.》

가운데 선 몸이 부한 녀인이 맞장구를 쳤다.

《흥, 좋긴. 공장에서 자기가 제일인것처럼 옷자락을 날리면서 돌아가다가 틀을 차릴 땐 정말…》

맨끝의 녀인이 지지 않고 입을 삐쭉거렸다.

《그러게 그를 보고 <대틀>이라구 그러지 않니?! 그 사람의 체격에 딱 어울리누만.》

《그러니 더 우쭐해서 그러는것같아요.》

그 녀인이 토라진 소리를 하자 이번엔 뚱뚱한 녀인이 한팔을 내두르며 앞으로 쑥 삐여져나왔다.

《아따, 혼자만 싫다구 할게 있어? 그럼 우린 <웃는 대틀>이라고 하자꾸나. 너도 좋구 우리도 좋구.》

《<웃는 대틀>! 그거 좋구나.》 키가 큰 녀인이 맞장구를 치고 곁따라 다른 두 녀인이 깔깔거리며 팔을 흔들어대자 이제껏 늘큰해있던 오리가 대가리를 쳐들며 박박거리였다.

《하하!》

《호호…》

녀인들이 왁자하게 웃음판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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