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첫 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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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녀자 셋에 게사니 세마리면 장마당이라더니 바로 그 녀인들이 신통히도 그 격이였다. 꿱꿱거리는 게사니와 박박거리는 오리가 무슨 큰 차이가 있으랴.
누구를 두고 그렇게 승벽을 부리는지는 알수 없지만 오리를 든걸 보니 오리공장의 녀인들이 아닌지. 여하튼 오리공장에 대하여 알수 있을것같아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주머니들, 말 좀 물읍시다. 오리공장이 아직 먼가요?》
《오리공장이요? 아직 한시간은 가야 하는데…》
《무슨 한시간, 자전거로 가는데.》
키가 큰 녀인이 방금 입을 연 뚱보녀인의 팔굽을 치며 핀잔했다.
《그렇구나. 자전거로면 인차 가닿게 돼요. 그런데 오리공장엔 왜 깜깜할 때 가나요?》
《별걸 다.》
이번에도 키 큰 녀인이 또다시 녀인의 팔굽을 치며 돌아보았다.
신형일은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옳아, 오리도매군. 맞지요?》
녀인이 알아맞추었다는듯 동료들을 바라보며 해죽 웃었다.
《나한테서 오리 냄새가 나는가보군요.》
《맞아요.》 녀인들이 호호거렸다.
신형일은 허 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갔다. 하지만 오리공장에 가기도 전에 자기한테서 오리냄새가 난다는 녀인들의 말이 싫지 않아 저도 모르게 기분이 떴다.
《아주먼네들도 오리공장에 다니는가부지요?》
《아저씨가 딱 알아맞추네. 우리한테서도 오리 냄새가 나지요?》
신형일은 그에 대답할 생각보다 오리공장 종업원들인 그들이 어디에 가는가가 더 궁금하여 다시 물었다.
《어디 가다니요, 집에 가지. 요즘은 현대화를 하는 바람에 매일 이렇게 늦어져요.》
《아니, 걸어서요?》
《걷지 않으면 무슨 차가 있나요? 지나가는 차라두 있으면 얻어타련만…》
맨끝에 선 녀인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얻어타다니, 아니, 향옥인 전번 일을 벌써 잊은게 아니야?》
첫눈에도 이미 처녀시절이 지났다고 보이는 그를 아이들 이름으로 불렀는데도 녀인은 심드렁해서 한숨만 내쉬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요?》
신형일이 녀인들의 말허리를 끊고 다급히 물었다. 오리공장에 다니는 종업원들이라 어느것도 무심해지지 않았다.
《짜하고 소문이 난지 며칠이나 됐는데 아직 모르나요? 며칠전에 우리가 다른 공장 차를 타구가는걸 보구 경리과에 있는 녀자들이 따라오다가 넘어지는 일이 생겼지요 뭐.》
《한명은 저기로 굴러내리기까지 한걸요.》 향옥이라는 녀인이 언덕아래를 가리켰다.
《심하게 다쳤는가요?》
신형일은 다급히 물었다.
《둘다 병원에 입원했어요. 팔두 상하구 또 한명은 가슴에 금이 가서 오래동안 안정해야 돼요.》 이번에도 향옥이가 끼여들었다.
《아니, 공장에 통근차는 없나요?》
《어야나, 통근차같은 말씀 다 하시네.》
《통근차가 없으니 이 고생이지요.》
저마끔 한마디씩 하는데 《흥, 다니다 싫으면 그만두지요 뭐.》하고 가운데 선 녀인이 대수롭지 않게 내쏘듯 말했다.
《그만둔다구요?》
신형일은 자기의 목소리가 어방없이 커진다는걸 느끼면서 앞으로 쑥 나섰다.
《맞아요. 힘든데 정신나갔다고 그냥 다니겠나요? 그래두 괜찮을 때도 있어요. 이따금 이렇게 오리를 가져갈 때두 있구 집에 먼저 가는 멋두 있구요. 오늘은 지배인동지가 우리 통일거리사람들만 면회를 조직해서 이제라도 가는거야요.》 향옥이라는 녀인이 참지 못하고 미주알 고주알 일러바치는 애들처럼 자상히 설명했다.
그러더니 녀인들은 후르르 날아가는 참새무리처럼 지나갔다. 그들의 목소리가 신형일의 귀에 고스란히 들려왔다.
《향옥아, 너 무슨 말을 그렇게 끊임없이 하니. 그 사람이 간부라면 어떻게 하겠니?》
《간부? 무슨 간부가 자전거로 공장까지 다 오겠어요. 간부라면 차를 타고다니지.》
《하긴 그렇다.》
녀인들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신형일은 녀인들의 뒤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저렇게 걸어가서 언제 병원에 가고 또 저녁밥을 지을텐가. 향옥이라고 하던 녀인의 목소리를 상기하며 신형일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문득 《웃는 대틀》이라고 떠들던 녀인들을 상기하며 그가 누굴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이때였다. 동뚝아래쪽에서 갑자기 《천호동무, 아니, 천호동무-》 하는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생천 찢기는듯한 무척 되알진 목소리였다.
동뚝길로 누군가가 자전거를 끌며 올라오고있었다. 헉헉하는 거친 숨소리가 신형일이한테까지 마쳐왔다. 희붐하게 비쳐드는 달빛속에서 해말쑥해보이는 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옆에 누가 있는지 살필 생각도 없는지 자전거만 끌고 올라왔다.
《그대로 가는가요? 정말이야요?》 동뚝아래 목소리는 집요하게 청년의 발뒤축을 물고 놓지 않았다. 청년이 멈춰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좀 내려와요.》
《아니, 이젠 그럴 필요가 없소. 우리 관계는 끝이요, 잘 가오.》 청년이 단호하게 선언하듯 하고는 휭하니 자전거에 올랐다.
《아니, 천호동무-》 애절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토닥거리는 발자국소리와 합쳐졌다.
그러나 청년은 멈춰서지 않고 내처 자전거를 몰고 사라졌다.
신형일은 어리벙벙한채 그자리에 서있었다.
《천호구나.》
멀지 않은곳에서 어떤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우리가 갈 때도 다리목에 있었지?》
《요전날부터 말이 많더니…》 끌끌 혀를 차는 녀인들의 목소리에 신형일은 의아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몸매다부진 녀인과 날씬한 녀인이 세운 자전거를 잡은채 동뚝아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러게 말이 나면 제꺽 잔치를 해야지 질질 끌면 재미없어.》
《서른이 넘은 천호가 저 처녀를 놓치면 어떡해.》
《걱정두, 이제 얼싸한 처녀가 나타나지 않을라구.》
그들의 말을 듣고나니 어지간히 짐작되는 일이였다. 천호라는 총각과 오늘까지 끌어오던 처녀와의 관계였다.
갑자기 《어마나, 단백반 통계원엄마네.》 하는 녀학생들의 차랑차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신형일은 자전거에 오르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