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첫 상면

3

(1)

 

그 시각 지배인 박순배는 단백먹이서식장에 있었다. 공장에서 제일 구석진 곳에 있는 이 서식장은 그가 현장기사시절에 자기의 땀을 아낌없이 바친 곳이다. 여기서 지렁이를 서식하여 오리먹이에 단백성분을 보충하는 일을 했던것이다.

공장에서 30년나마 일한 박순배지만 지배인으로 임명된지는 몇달밖에 되지 않았다.

공장에 입직한 때부터 박기사로 통하면서 연구사업, 시험사업을 하고 직장장이며 행정사업도 해본 박순배지만 막상 지배인으로 임명되자 육중한 바위밑에나 깔린듯한 숨가쁨을 느꼈다.

해를 넘기고서도 아직 결속하지 못한 공장의 현대화가 직접적으로 자기의 어깨우에 얹힌것이다.

박순배는 시당회의에 참가하면 의례히 가슴을 조이군 했다. 이제 또 무슨 독촉이 있을테인가. 또 따지겠는데.

그런 찰나 새로 임명된 당비서가 래일부터 출근한다는 소식이 왔다.

그 소식을 듣고 곧장 여기로 온 박순배다. 이번 공장의 현대화에서 이 단백먹이서식장은 중요한 개건대상으로 계획되여있다. 그것은 공장적으로나 또 박순배개인으로 보아도 좋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박순배는 너무 막연하게만 생각되여 자기의 옛 일터를 찾아와서도 기분을 전환시키지 못했다. 이번 현대화에서 중요대상으로 내밀고있는 축사건설과 직장건물들, 기계와 새 설비의 설치를 비롯한 기본건설도 아직 끝내지 못하고있는데 이 단백먹이서식장을 언제 시작하랴. 당비서가 이런 곳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 순간 가슴속이 방금 돋아난 새순으로 가득 차는듯하던 당비서와의 첫대면때가 생각났다. 당비서의 온몸에서는 생기가 흘렀었다. 젊은 사람이 무슨 세파를 겪어봤으랴 하는 점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공장에 오래 있은 전 당비서의 나이가 많았던탓에 젊은 당비서의 모습은 그의 가슴에 봄바람을 가득 채워주었다.

갑자기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렸다. 당위원회 운전사였다. 이제 곧 당비서가 찾아갈것이라고 전한 운전사는 인차 전화를 껐다.

(당비서라니?)

어리벙벙해졌던 박순배는 황황히 일어났다. 그러니 래일 온다던 당비서가 벌써 공장에 왔다는건데 그가 구석진 여기 단백먹이서식장을 못찾을것같아 부랴부랴 구내길에 나섰다. 밤이지만 현대화를 하는 공장은 전등불이 환하고 자동차소리, 여잇싸 하고 힘주는 소리와 으하하 하는 웃음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박순배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였다. 승용차불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박순배는 다시 서식장으로 돌아왔지만 거기엔 누구도 없었다.

무슨 일인지 알수 없어 박순배는 운전사를 찾을 생각으로 손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아, 여기 계셨군요.》

반가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던 박순배는 눈이 둥그래졌다. 분명 전번 시당에서 인사를 나는 당비서였다.

《아니 이런, 언제 오셨습니까?》

순배는 환성이라도 터칠듯한 심정을 안고 당비서 앞으로 다가갔다.

《방금전에 왔습니다.》

박순배는 방금전에 왔다는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몰라 두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깨가 홀가분해지는감을 느끼고 자기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난 이제껏 단백먹이서식장에서 지난 일을 돌이켜보고있댔습니다.》

《참, 지배인동지는 그전에 거기서 일을 시작했다고 했지요. 그럼 거기부터 볼가요? 그곳에서 지배인동지의 젊은 시절이 흘러갔는데.》

《아, 그건 보실게 못됩니다.》

박순배는 황급히 막아나섰다. 벌써부터 볼편이 뜨끈해왔다.

《그곳이 현대화에서 기본인데 봐야지요. 어서 앞서십시오.》

어쩔수 없이 박순배는 다시 서식장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바람으로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시크무레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코를 싸쥘 정도지만 당비서는 아무 내색없이 여기저기를 세심하게 여겨보았다. 어둑침침하고 습진 곳을 좋아하는 지렁이의 먹이는 소똥이였고 구데기의 먹이는 페사된 오리새끼였다. 썩어문드러진 고기점들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가 아직도 나는것같았다.

박순배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랐다.

황아장사의 망신은 고불통이 다 시킨다고 현대적으로 일어서는 공장의 체모를 여기 서식장이 다 말아먹는것같았다.

아직도 구석진 곳에서는 지렁이가 굼실굼실 기여다니는것같아 잔등이 서물서물해왔다.

《지배인동지는 여기서 구접스러운 단백먹이연구사업을 했군요. 그땐 총각시절이였겠는데, 생각되는게 많습니다.》

당비서의 진중한 목소리에 박순배는 한껏 당황해났다.

《뭘 그렇게까지, 공장에 특별하게 도움을 준것도 없는데. 게다가 이젠 낡았지요.》

얼굴이 뜨끈뜨끈한걸 겨우 참고 견디였는데 오히려 감심하니 불판에나 오른것같이 안절부절해왔다.

《아니지요. 좋은 경험으로 되지요. 난 기계가 전문이니 오리부문은 생소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아, 당사업이야 오리고 기계고 상관있습니까. 하여튼 됐습니다.》

박순배는 가슴이 뭉클해나 고개를 젖혔다. 당비서가 이 어둑시근하고 구석진 옛 서식장부터 돌아보는것이며 자기의 경험을 높이 사주는것이 무엇보다 고마왔다. 첫대면에 밤길동무까지 된다더니 박순배는 당비서한테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갔다.

《지배인동지, 우리 공장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속에서 태여났고 발전해온 공장이 아닙니까. 우리의 임무가 큽니다. 》

《예.》

《어버이수령님께서 여기 공장에 오시여 만경봉을 바라보시였다던데 그곳이 어딥니까? 그 자리부터 가보고싶습니다.》

《이리루 가면 됩니다.》 박순배는 얼른 정문쪽으로 향했다.

잠시후에 그들은 저 멀리 바라보이는 만경봉을 마주향해 섰다. 어둠속에서 마주보이는 만경봉은 전에없이 웅건하게 안겨왔다.

《이 자리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 지배인을 보고 참, 수령님께서는 그 지배인을 <두단령감>이라고 불러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그에게 저기 보이는 곳이 어딘가고 친히 물어주셨습니다.

만경봉이라고 말씀드리자 맞다고, 여기는 만경대 앞동네라고 하시며 한동안 서계시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앞으로 만경대 앞동네답게 일도 잘하고 오리도 잘 길러서 잘살라고 축복해주셨답니다.》

《예, 정말 가슴이 뜨거워납니다.》

당비서가 오래동안 만경대쪽을 바라보며 숙연한 기분에 잠겨있자 박순배는 새삼스레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속에서 변모된 두단땅과 공장에 대해 생각이 깊어졌다.

《지배인동지, 그때 수령님을 뵈온 연고자들이 누가 있습니까?》

당비서가 여전히 만경봉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조용히 물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두단령감>이라고 불러주신 최성준아바이는 이미 사망하고 그때 기사장을 하던 로인은 아직 정정합니다.》

《아, 차학선동지 말이지요?》

《그를 압니까?》 박순배는 놀랍고 기쁜 마음이 앞서 다우쳐물었다.

《그저 이름을 들었을뿐입니다. 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그가 재촉했다.

《허참.》

박순배는 난감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좋은 일이라면 성수가 나겠는데 전 기사장에 대해서 말하려니 입안의 침이 다 말라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당비서가 의아해서 바라보는바람에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그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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