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2 장

18

(2)

 

×

 

0시가 훨씬 넘었지만 제철소로 통하는 도로는 조용하지 않았다. 이따금 전야근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자전거들이 열댓명씩 혹은 예닐곱명씩 큰도로쪽으로 지나가고있었다.

아빠트현관문을 열고나서자 채호명이 형규를 찾는다. 현관안에서는 마누라와 신정이들이 무엇인가 가득 꿍져싼 보따리와 배낭가방을 내밀고 거절하는 싱갱이가 벌어지고있었다.

《한마디 합세.》

채호명은 담배 한대를 붙여물고는 깊숙이 빨았다.

《형규선생은 김철사람들을 노여워하는데 난 사실 달리 생각하지요. 원인은 선생께 있소. 형규선생한테는 확실히 과학기술적면에서 보나 사람 대하는 면에서나 뭐라 할가, 좀 깔보는게 있는것같소. 김철현장에서 고온공기 도입하면 여기 사람들과 어울릴줄 알아야지 그 옷차림부터 봅소.》

진회색잠바차림에 속에는 눈같이 하얀 샤쯔를 받쳐입고 새것은 아니지만 윤기가 도는 밤색구두. 김형규는 저으기 면구스러웠다.

《첫인상이 그런데다 여기 나와 구체적으로 료해하지 않고 대뜸 추궁하고 잔소리만 하고. 특수용접봉문제 하나만 봅세. 형규선생은 몰라서 그러는데 기실 그게 거칠게 보여도 대단한거라오, 금속연구소사람들이 만들어내놓았지. 숱한 외화를 절약했소.

다른 문제도 같소. 이런게 눈에 거슬리기때문에 형규선생 그런 대접을 받소. 선생은 이런걸 알고있어야 합지.》

형규는 속이 후더워났다. 이런 말을 어디 가서 들어보겠는가. 채호명이 말해주어서야 김형규는 모든것을 깨달을수 있었다.

《채아바이, 좋은 말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이젠 알겠습니다. 아바이의견 꼭 명심하지요.》

《나같은게 선생한테 이런 말 한다구 탓하지 맙소. 지내보니까 형규선생이 사람이 진국이기때문에 하는 소립지. 쇠때 만드는 기업소가 돼놔서 김철사람들이 거친데는 있소만 속은 통짜배기고 맘이 곱소.》

채호명내외의 바래움을 받으며 형규네들은 제철소병원앞도로에 나왔다.

박사원생들이 신정실장동진 자기네가 바래다주겠다며 형규더러 먼저 들어가서 쉬라고 권한다. 신정은 금속려관에서 침식을 하고있었는데 여기서 려관까지는 거리가 어지간하였다.

김형규는 왜 그런지 그들에게 신정을 바래주는 일을 빼앗기고싶지 않았다. 원래 채호명의 집을 나서면서 그런 생각은 하고있었는데 제자들이 선수를 쓴것이다.

《가만, 동무들이 먼저 들어들 가오.》

형규는 그답지 않게 덤빌사 하며 그들을 불러세웠다.

《내 아까 론의를 마저 끝내지 못해 그러니 힘들어도 뒤를 맺어야 할게 아니요.》

스승을 념려하여 그냥 우길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들은 선수를 넘긴다.

둘은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김형규는 방금 작별할 때 채호명이 곡진하게 조언주던것을 입에 올리였다. 형규는 채아바이가 고마왔다.

그가 조언을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쩔번 했는가.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향방없이 헤염치며 돌아다녔을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그 본새로 그냥 대해주었을것이고. 이런 판에 무슨 일이 잘되겠는가.

형구는 그 형용이 생각히워 소리내여 웃었다.

《왜 웃습니까?》

《나자신이 가소로와서 그럽니다. 글쎄 보십시오.》

그는 자기의 견해와 상반되는 채호명의 조언을 설명해주었다.

《제 견해와 별반 차이없군요.》

《그래요? 그러니까 이대로 나갔다간 난 완전히 랑패를 볼번했겠습니다?》

《그 지경까지는 이르진 않습니다. 대신 배로 일이 힘들게 될번했어요.》

《절 속으로 많이 탓해온게 아닙니까?》

《첨엔 그랬습니다, 사람이 교만하고 차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러나 과학적주장이 옳은데야 뭘 자꾸 제가 옳다고 우기겠습니까.》

김형규는 쭈밋거리다가 다소 소심하게 한번 더 파들어갔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교만하고 차보입니까?》

처녀는 입을 가리우고 다른 한손으로는 허리를 껴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 김형규는 이때에야 비로소 자기가 신정의 녀성적매력을 발견한듯싶었다.

처녀는 약간 빈정거리는듯한 롱담을 하였다.

《오늘은 이상하군요. 산울림에서 나오는 기선이 같습니다.》

《내가요?》

《네, 선생은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풋내기총각처럼 행동하는군요, 기선이보단 좀 낫지만.》

이번에는 김형규가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따라웃는 신정이였다. 처녀는 형규가 웃음을 거두기를 기다렸다가 계속하였다.

《생활에서는 종종 첫인상이 차거나 교만해보이는 사람을 보게 되는 법이 아니겠어요.》

《그야 그렇지요.》

《그러면 다른거 있겠어요?》

《저,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김형규는 또다시 소심하게 말을 꺼냈다.

《어째서 아직 장래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는게 좋을것같군요.》

둘사이 흐르던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뚝 끊어져버리였다. 어색한 침묵이 길게 흘렀다. 무엇으로 이을것인가고 바재이댔는데 다행히 신정이 그를 구원해주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선생은 내가 입학했을적에 박사원을 다녔더군요. 한데 내가 왜 보지 못했을가?!》

《그럴수 있습니다. 박사원시절엔 계속 실습을 나갔댔으니까요.》

그다음 전공담임이며 금속공학부의 학자들, 은퇴한 스승들 그리고 동창생들의 안부며 사업화제였다. 그들은 묻고 대답하고 걱정하고 기뻐하며 오래간만에 같은 대학출신으로서 회포를 나누었다.

신정은 말머리의 키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었다.

《형규선생이 안타까와하는 문젤 도와 못드려서 미안합니다.》

《건 무슨 뜻입니까?》

《가열로모의시험프로그람 말입니다. 저는 안되겠습니다.》

《아, 그거요? 걱정마십시오, 되겠지요.》

《형규선생이 데리고온 박사원생들이 모두 보기 드문 수재들이더군요. 일해보니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처음엔 그렇겠거니 했댔는데 난 2선에 물러나야겠구나 하는 자격지심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제자들을 높이 쳐주어서. 한데 그들에게도 풀지 못할 수수께끼문제들, 이를테면 제 아까 말씀드린 가열로모의시험프로그람은 여기 앉아서는 힘들어합니다. 대학에 올라가 다른 자매공학의 콤퓨터전문가들과 광범한 론의를 해야 합니다. 신정동무가 어련히 아는것이지만 전화기나 인터네트상에서의 토론과 정보교환이라는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성이 있지 않습니까.》

《해결책은 찾았습니까?》

《대학과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 제기하려 합니다.》

《!》

신정의 걸음발이 떠지였다.

《다 왔군요.》

처녀는 멈춰서며 두손을 모두어잡았다.

김형규는 30분나마 처녀와 걸었으나 그래도 아쉬웠다. 신정에게서 많은것을 듣고싶었고 많은것을 터놓고싶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김형규는 처녀가 모르게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형규는 신정이 작별인사를 하려 하자 《잠간.》 하며 막았다.

《어디 한번 들어봐주시오, 신정동무. 내 여러가지로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래일 아침 현장을 돌아보고 적합한 곳에 거처지를 옮겨야 할것같습니다. 호명아바이 조언에 일리가 있거던. 동무생각엔 어떻습니까?》

《찬성입니다.》

《가열로굴뚝이 있는 주위가 좋을것같군요, 현장이 시야에 모두 들어오고. 겨울이 닥쳐오기 전에 빨리 집부터 지어야지.

그럼 자, 꿈을 잘 꾸기 바랍니다.》

처녀와 헤여져 려관에 돌아온 김형규는 인차 잠들수 없었다. 채호명이며 신정이들에게서 들은 조언들은 그로 하여금 앞으로의 사업을 놓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던것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