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3 장
22
(1)
오늘 황해제철련합기업소는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지원물자더미가 쌓여있는 기업소후방부앞마당에 각 직장들과 기업소안의 사업소들이 끌고온 화물차며 반짐차, 지게차들로 붐비고있었다. 받으러 온 단위는 많고 반면에 후방부로력이 딸려 로동과에서까지 동원되여 물자를 공급하고있었다.
설계실의 콤퓨터에 마주앉아있던 함승일은 물자를 타가라는 후방부의 련락을 받고나서야 기업소분위기를 알게 되였다. 옆방들이며 식당으로 리용하는 칸에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낮에 운반식사를 내간다고 했으니 다들 현장에 나간 모양이였다. 한방에서 일을 보던 송림공업대학 졸업반 학생들의 손을 빌려야 할것같았다.
그들 둘을 데리고 후방부마당에 도착하니 마침 로동과의 낯이 선 젊은 부원이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대상을 확성기로 불러대고있었다.
《이제부터 제가 부르는 단위에서 온 동지들은 제가 주는 표를 가지고 왼켠에 가 후방과장동지에게서 물자를 타가야 하겠습니다.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청년돌격대, 강철직장, 청년선제, 중량레루, 이건 뭐야, 고온공기?》
여기까지 냅다 불러대던 책임부원이 고온공기라는게 무슨 소린지 몰라 곁에서 입출고대장을 정리하는 같은 과의 머리가 량껏 벗어진 책임부원에게 물어본다.
《오- 그거 있잖소, 가스발생로직장이란 소리요.》
《근데 왜 여기엔 고온공기라구 썼습니까. 가스발생로직장이 뭐 고온공기직장이나? 쳇, 요새사람들은 고유명칭이라는게 무슨 뜻인지 모른단 말이야. 그저 입에 붙으면 불러댈판이거던. 어디 있습니까, 가스발생로!》
대답소리가 나자 그는 고유명칭을 불러야 한다는것을 오금박는것을 잊지 않았다.
《산열!- 산열!- 가만, 이건 또 뭔가?》
부원이 청을 높여 부르다가 책임부원에게 눈길을 돌린다.
《책임부원동지, 산열이라는 단위도 있습니까?》
《오- 그런거 있지.》
《우리 과의 문건에는 없지 않습니까.》
《동문 새로 와서 모를수 있는데 차차로 알게 되오. 비상설적으로 무은 집단이야. 아주 중요한 단위지. 빨리 표를 내주라구.》
(다 모를 사람들이군.)
함승일은 책임부원에게서 표를 받아쥐면서 웅얼거리였다. 다시 기업소에 들어와 일해보니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가서인지 알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로동과며 후방부를 비롯해서 몇몇을 내놓고는 낯선 얼굴들이다. 하기야 내가 몸을 담그고 일하는 산소열법기술집단만 해도 성남아바이 내놓고 누가 있는가. 처음에 승일은 자기가 별로 밖에 나다니지 않아 그럴거라고 생각했으나 오늘 여기 와보니 역시 기업소가 그사이 세대교체를 많이 했다는것이 알리였다.
《이걸 가지구 어림있나?》
역시 처음보는 기업소후방과장이 승일이네가 끌고온 어지간히 큰 손달구지를 흘겨본다. 열둬명밖에 안되는 산소열법기술집단의 인
《좌우간 되는것만큼은 실어보자구. 아주마이들, 산소열법걸 제꺽 실어줍시다.》
신통히도 하나같이 절구통같은 몸집을 가진 중년의 녀인들이 우르르 몰려와 물자를 싣는다. 후방부에서 일하는 녀인들이였다. 함승일은 손달구지에 실리는 물고기블로크들이며 흰쌀, 콩포대들을 정리하며 녀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였다. 산소열법시험이 화제의 중심이였으며 도중도중에 자기 말이 약국의 감초처럼 끼워있었던것이다.
《산소열법 오늘 시험 또 한대? 5평방때처럼 악사를 먹는 모양이야.》
《글쎄 그렇대. 나오긴 나오는데 오줌처럼 실실 흐르다가는 뚝 멎는다잖아. 어떤 땐 쇠물 내보내지 않구 용광로가 우들우들 몸만 떨다가 멎어버리구.》
《그래도 우리 지배인 눈섭 하나 까딱 안하더라지?》
《그랬대. 외려 울상이 된 기술자들에게 주춤한다구 욕사발을 퍼부었다누나.》
《그게 다 함승일이란 사람하구 성남아바이 믿구 그러는게 안야.》
《그렇잖으문. 우리 세대주 말하는데 지배인이랑 여기 자주 출장오는
합영투자위원회 부
《그 함승일기산 확실히 사람복 있어. 병팔지배인때는 그의 오른팔이여서 든든했구 지금지배인과는 친구이니 뭐가 무섭겠어. 아침에 지배인 평양 가면서 후방부에 들려 하는 말 들었지? 우리 부지배인이 소눈알을 제때에 가져다주지 않았다구 댑다 몰아대는걸.》
《지배인말이 옳지 뭐. 산소열법 하는 사람들한테 소눈알이 다 뭐이가. 필요하다면 상어간이라도 얻어줘야 할게 아니야. 머리허연 부지배인이 젊은 지배인한테 움쩍 못할만두 하지.》
《자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두구 다 실었으면 제일이나 하오.》
후방과장이 말허리를 꺾으며 쫓아보내다싶이 하지 않았더라면 녀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을것이였다.
《동무가 거기서 무슨 일을 보는지 모르겠는데 이건 지배인동지가 함승일이라는 기사에게 보내라는거요.》
승일은 후방과장이 내미는 커다란 마분지곽을 얼결에 받아들었다.
《소눈알이요. 나머지 물자는 산소분리기직장차편으로 보내주겠소.》
손달구지는 일단 바퀴가 움직이자 길이 좋으니 승일이까지 손을 붙이지 않아도 잘 굴러갔다. 승일은 처음에 밀어주고나서는 학생들의 권고를 쫓아 슬슬 따라걸었다.
그는 어쩐지 마음이 송구스러웠다. 아낙네들의 걸쭉한 입심속에도 산소열법성공을 애타게 기다리는 황철사람들의 심중이 엿보였던것이다. 자기같이 구실 못하는 사람때문에 결국은 그 간절한 소망이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고개를 들수 없는 함승일이였다.
김중건은 함승일이 황철에 다시 오자 그를 위하여 많은 왼심을 썼다. 비록 이전에 살던 서너간이나 되는 아빠트보다는 못했지만 큰 터밭이 있고 마당에 우물까지 있는 시내교외의 단층집을 배정해주었다. 안해의 직업 역시 이전의 부업농장 축산기수가 아니라 산천리에서의 가축경험을 귀하게 여겨 축산반장사업을 맡겨주었다. 사업에 들어가서는 어떠했는가.
김중건은 5평방을 완성시키는 나날에 김병팔 전 지배인이 한것에 비할바없이 자기 역할을 하고있었다. 거듭되는 실패에 기가 꺾이고 주눅이 들세라 힘과 용기를 주고 필요하다면 기술적방조까지 아끼지 않고있는 그였다.
(기술적방조라?…)
함승일은 요즘 때없이 뇌리에 갈마드는 이 문제를 놓고 세월이라는 힘과 무정함을 강렬하게 느끼군 한다. 기업소에 와 어느날 론문 하나 봐달라는 중건의 부탁을 받고 읽어보니 제목은 《초고전력전기로에 의한 강철생산체계확립》이였는데 저자는 다름아닌 그였다. 며칠밤을 우정 시간을 내여 읽어본 승일은 몇년사이에 달라져도 아주 달라진 김중건의 학적탐구심과 진지성, 론문의 실효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달라진것은 그뿐이 아니였다. 시험을 하는 과정에 승일이 느낀것은 중건이 자기와 성남아바이 도면을 완전히 도통하고있을뿐만 아니라 실패에 따른 분석과 총화에서 명백하고도 정확한 대안을 속속 내놓는 그것이였다. 실력가형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피타는 노력을 경주하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는 언행이였다.
그런데 이 함승일이는 어떠한가. 농촌에 들어앉아 그 어떤 의분과 량심을 가지고 자기딴의 10평방식을 완성하느라 했는데 와보니 과학은 세월과 함께 그를 아득히 떨구어버리였다.
승일은 김중건이와 얼굴을 붉히며 헤여지던 일이 상기되였다. 증건에게 내뱉았던 자기 목소리까지 그대로 생생히 기억되였다.
《그러니까 산소열법을 중도에서 그만둔다는건가?》
《…》
《리유가 있을테지. 난 그걸 알고싶어.》
《괴롭히지 말라우. 동무가 왜 몰라? 현행생산을 바로 못해 기업소의 존망이 론의되는 자리에서 산소열법이 다 뭔가. 나도 산소열법을 제기하려고 별렀는데 정작 내각과 성, 우리 기업소책임일군들의 견해를 들어보니 포기하게 되더군.
어쩌겠나, 기업소형편이 이런걸. 대책이 나지겠지. 앞으로 나라가 허리를 펴면 기업소가 활성화될테니까 그때를 기다리자구.》
《일인즉은 그렇게 되였구만. 믿어지지 않아, 내 눈이 의심스러워. 5평방식의 성공으로 누구보다 당의 신임과 배려를 많이 받은 동무가, 온 나라가 읽어보는 〈로동신문〉에 산소열법의 공업화단계에 당장 착수하겠다는 맹세의 글을 올린 동무가 어쩌면 그런 태도를 취한단 말인가?》
《거야 그랬지. 그렇지만 조건과 분위기가 그런데 어떡하란 말인가. 산소열법 계속하자는 주장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야. 내 심정두 리해해줘야 할거 아닌가.
이자두 말했지만 그 간부회의에선 산소열법같은건 셈에도 없있어. 그리고 난 어디까지나 부기사장이야. 때문에 내겐 발언권이 없었고 또 일어나 말했댔자 귀기울일 사람두 없었을거요.》
《아니야. 내 김중건이 성격을 몰라서? 눈치놀음을 하며 보신했겠지, 제기했다가 상급일군들의 눈에 덧날가봐. 동문 그새 제 책임을 우에 미는것까지 배웠구만. 무섭지 않아, 중건동무? 동무가 온 나라에 대고 거짓말을 한거 말이야.》
《아무 말이나 탕탕. 날 어떻게 보구 그래? 내가 그럼 나쁜 놈이라는건가?》
《나쁜 놈이 뭐 이마빡에 써붙이고다닌대? 동무같이 청청대낮에 거짓말을 하구두 시치미를 떼며 자길 정당화하는 인간은 그렇게 불러도 무방해. 동무는 시험로적성공이후부터 변해도 무섭게 변해가고있어. 직권에 눌리워 눈치를 보고 여기저기 잘 둘러맞추고 직심스레 파고들던 산소열법공부도 집어치우고 동무에게서는 변하는 냄새가…》
《뭐야? 변했다구? 말 다했어?》
《…》
《당장 이 방에서 나가라우.》
《좋아, 싫다면 그만두지. 걱정말라. 이 방에서 나갈뿐 아니라 기업소에서 내스스로 나갈테니까. 그러지 않아도 그런 생각 하던중이야. 몸두 불편한데다 산소열법도 걷어치웠는데 설계가 있어선 뭘해. 너같은걸 믿구 행여나 하여 기업소에 붙어있은 내가 어리석지. 하지만 명심해둘건 그런 머리통 해가지군 산소열법은커녕 그 부기사장노릇두 힘들다는걸 알라우.》
(그날 내가 지나친것같다. 지내보니 김중건이 산소열법을 한번도 잊은적이 없었던게 아닌가.)
《어델 갑니까, 함기사동지.》
승일은 찾는 소리에 펀뜩 정신을 차렸다. 지나간 이러저러한 일에 두서없이 집념하다보니 발길이 저절로 해탄지구의 페허쪽으로 가고있었다.
어떻게 하나 제철소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