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장
첫 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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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호는 상을 물리자마자 얼른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무슨 말을 꺼낼가보아서 바쁜척하며 서둘렀다. 아버지는 지금 속으로 이미전부터 말이 있었던 그 처녀와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바라는것같았다. 그러나 천호는 그럴수가 없었다. 아무렴 그 녀자말고 처녀가 없겠나 하는 배심이였다.
물론 그 처녀하고는 정이 들었었다. 녀자 작은건 흠이 아니라더니 키가 자그마한 그 처녀는 본 첫날로 마음이 끌렸다. 무엇보다 귀엽게 생긴것과는 달리 처녀는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급양관리소의 부원인 그는 한 단위를 책임진 소장으로 일해볼 꿈을 지니고있었다. 한마디로 처녀는 공상가였다.
그와 같이 있을 때면 옆에서 행복의 새가 끝없이 지저귀는듯 마음이 즐거워졌다. 날자를 정해 아버지앞에 내세을 계획을 하고있던 천호는 좀 만나자는 처녀의 전화를 받자마자 약속된 장소로 자전거를 몰아댔다.
처녀는 천호를 보자마자 좋은 일이 해결됐다며 어디 알아맞춰보라고 생글거렸다. 처녀의 기분에 자연히 마음이 들떠난 천호는 무슨 일인가고 따졌다. 처녀는 누에실 풀리듯 슬슬 말도 잘했다.
소장이 되려는 꿈이 당장 실현될 가망이 있다는 말을 먼저 꺼낸 처녀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시급히 천호의 직업을 옮겨야 된다는것이다. 소장이 되면 어떻게 시외에서 출근하겠는가. 그러니 이번 기회에 동무의 직업도 생각해보자는것이였다. 천호는 처녀의 그 말에 기분이 잡쳐졌다. 사실 그가 제일 싫어하는건 이런 말이였다. 할아버지의 뜻대로 공장에서 마음껏 일을 해야겠는데 뭐 직업을 바꾸자구?!
천호는 단호하게 자기의 립장을 밝혔다.
《난 두단땅을 절대로 떠날수 없소. 여기서 나의 희망을 꽃피워야 하오.》
그 말에 처녀는 발끈했다. 아니, 그 땅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그러는가, 시내로 나오면 좀 좋은가, 세칸짜리 집도 있겠다, 이제 삼촌이 동무의 직업두 좋은데 잡아줄텐데 뭐가 싫어서 그러는가.
처녀는 숨기지 않고 자기 본색을 드러냈다. 소장이요 뭐요 하는건 순전히 자기를 홀리려드는 낚시였던것이였다.
그만에야 당장에 정이 떨어져나간 천호는 자전거를 끌고 부득부득 동뚝으로 올라갔다.
뒤에서 처녀가 따라오며 찾는데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껏 허영에 뜬 그런 처녀의 홀림에 빠졌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닭살이 돋는것같았다. 동뚝까지 올라온 그는 훌쩍 자전거에 올라 냅다 밟아댔다. 두번다시 처녀의 생각을 하고싶지 않았다.
천호는 아버지가 이제라도 무슨 말을 꺼낼것같아 조바심치며 우정 아침상을 내가고 부엌에서 서성거렸다. 늘 새벽밥을 지어놓고 가내반으로 나가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아버지가 부엌동자질을 도맡군 했지만 오늘은 자기가 설겆이도 할 생각이였다.
이럴 때 전화종소리가 났다. 자기를 살려준 그 소리가 고마와 천호는 얼른 송수화기를 들었다. 석태인의 처에게서 걸어오는 전화였다.
석태인은 공장의 현대화를 위해 나온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인데 천호와 단짝이였다. 나이는 천호보다 다섯살이나 우이지만 몸이 체소하고 키가 작아서인지 천호와 묻어다니면 너나들이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생김새도 다르고 나이차이도 있지만 그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석태인의 처와도 가까왔다.
그 전화를 핑게로 천호는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요즘 공장에서는 많은 로력이 살림집완성에 달라붙어 사람들이 겅중겅중 뛰여다니는것처럼 바쁘게 다녔다.
오리사건설과 함께 중단되였던 주택건설에도 로력이 돌려졌고 벌써 아빠트 한동은 다 완공되였다. 연구사들의 숙소로 계획되였던 그 아빠트로 엊그제엔 이사까지 했다. 아직 준비가 불비해서 식당을 시작하지 못했을뿐이였다.
마침 공장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끝낸 대학의 연구사들이 구내로 나오고있었다.
천호는 처녀와의 어석버석한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숱한 공장사람들이 다 알고 자기를 쳐다보는것같아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속으로는 아니라고, 내가 관두었지 그쪽인가고 항변하고싶었지만 어쨌든 온 공장에 소문이 났던 관계가 실패로 끝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래서 여느때보다 시간을 앞당겨 공장으로 나가고 어두워서야 들어오는것으로 어색한것을 모면했다.
오늘은 좀 늦은감은 있지만 구내로 나오는 저 사람들은 다 연구사들이여서 자기를 알 사람은 없었다. 눈여겨보니 어느새 앞으로 빠져나오는 태인의 모습이 인차 눈에 띄였다. 태인에게 다가간 천호가 낮은 소리로 알렸다.
《태인선생, 형수님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천호는 태인이에게도 깍듯했지만 그의 처보고도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보다도 군대에서의 절제있던 언행이 습관으로 되여 누구에게나 하대조로 대하지 못했다.
《전화가?》
자기의 감정이나 속심을 감출줄 모르는 태인인지라 인차 새물거리는 눈가에 반색이 어리였다.
그의 처는 시내의 양복점에서 재단사로 일하는데 남편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극진했다. 그들은 오누이쌍둥이처럼 생김새도 어딘가 비슷했다. 삽삽하기 이를데없는 그 녀인은 남편의 일에 대해서와 그가 하는 일에 대하여 속속들이 알고싶어하지만 공장에 나와있는 남편을 매일 전화기앞으로 불러낼수는 없었다. 그래서 태인네 부부는 전화상면장소를 천호의 집으로 정하고 혹간 전화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봄계절양복을 새로 했답니다.》
《쓸데없는 생각. 여기서야 작업복을 벗을 사이도 없는데 새 양복이라니. 녀자들이란 참.》
《그래두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좋기야 하지.》 이번에도 태인은 자기의 속을 그대로 말짱 드러냈다.
《그래서 천호두 빨리 장가를 가라는거야. 그까짓 허영에 들뜬 녀자와 인연을 끊은건 차라리 잘됐지. 이제 멋있는 처녀가 절로 굴러오지 않나 두고보라구. 참, 천호동무, 저기 새로 온 당비서동지가 오시누만. 이제 같이 만나자구.》
태인의 그 말에 고개를 돌리니 정말 부지배인과 이야기를 하는 당비서가 보였다. 첫날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이야기며 오자마자 종업원들의 생활문제에 관심을 돌리고 주택건설에 로력을 돌리게 했다는 당비서에 대한 소문은 종업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짜하게 번져갔다.
그런 당비서를 만나보고싶기도 했지만 될수록 공장사람들도 피하는 판인데 지금 새로 온 당비서를 만날 용기는 없었다. 더우기 얼마전엔 아버지가 새 당비서를 만나 처녀와 있었던 일까지 말짱 털어놓은것같아 호기심조차 사라졌다. 처녀에 대한 말은 이젠 두번다시 입에 담고싶지도 않는데 당비서가 그걸 물으면 그것처럼 딱한 일은 또 있을것같지 않았다.
그러나 태인의 경우는 자기와 달랐다. 이번 현대화를 위해 공장에 나온 태인은 설비제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단번에 박사론문을 쓰자는 야심을 가지고있었다.
태인의 희망을 잘 알고있는 천호는 그에게 통채로 기회를 마련해주고싶었다.
《아니, 혼자 만나십시오.》 하고 얼른 돌아서려는데 그만 한발 늦었다. 벌써 당비서가 곧바로 오고있으니 어차피 인사라도 해야 할것같았다.
석태인이가 한발 앞서며 인사를 했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삽니다.》
《혹시 석태인선생이 아닌가요?》
당비서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아니, 제 이름을 어떻게?》
태인이가 의아해졌다.
《이적기설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숙소에 나간김에 만나려댔는데 선생은 없더군요.》
《그걸 벌써 보셨군요.》 석태인의 얼굴이 감탄으로 환해졌다.
《좋은 설계더군요. 아직 공장에서는 고체배양기질을 대대적으로 생산할념도 못하는데 선생은 이적기설계를 내놓았으니 대단합니다. 이적기가 인차 현장에서 은을 내도록 합시다.》
《놀랍습니다. 새로 오신 당비서동지가 우리 대학 연구사들이 한 자그마한 설계까지 관심을 돌릴줄은…》
《그게 왜 작은것이겠습니까. 현대화에서 설비개조와 먹이문제를 푸는것이 기본인데. 우린 현대화의 첫 목표인 배합먹이생산에서 복합미생물발효제생산에 기본을 두자고 합니다. 바로 선생이 구상한 이적기는 고체배양기생산품을 기계로 뒤적여주어 손로동을 없애는것은 물론 무균화공정에서의 목표를 달성하는건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대단한데?! 태인은 물론 천호도 은근히 놀랐다. 새 당비서가 한 연구사의 창조품인 이적기의 합리성을 놓고 전문가이상으로 파악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