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장
첫 상면
5
(2)
태인이가 눈을 슴벅이며 앞으로 나섰다.
《어제밤에 당비서동지가 대학 연구사들 숙소를 찾고 연구사들을 다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연구사들을 위한 대담한 조치를 두고 모두 고마워합니다.》 태인은 자기 설계에 대한 과찬을 이런 식으로 인사했다.
《외지에 나와서 불편한것이 많겠는데요.…》
《이젠 없습니다. 저는 현대화기간에 한번 야심을 가지고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제가 이적기제작설계를 하면서 노린건 무엇보다 높은 산도와 습도에 의한 견딜성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발효제원료를 손쉽게 뒤적여줄수 있겠는가 하는겁니다. 사실 기계장치의 성능을 보면…》
열에 뜬 태인은 기계장치들의 성능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산능력, 전원, 전압이며 하는것들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당비서는 태인의 말을 주의깊이 들었다.
《좋습니다. 적극 지지합니다. 이적기날개의 각도에 대해선 좀더 연구해본건 없는지요?》 언뜻 당비서가 기대어린 눈길로 태인을 주시했다.
《그러니 그 부분이 부족하다는 의견인데…》
태인은 당비서가 자기의 말을 귀담아듣자 부쩍 기운이 나서 주머니에서 착착 접은 종이를 꺼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생각하던중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야 오리공장이고 저는 기계공학이 전공이니 설비에서 현대화를 실현하자면 먼저… 참, 당비서동지가 제 말을 리해하시겠는지…》
석태인이가 갑자기 주저하며 말끝을 얼버무리였다. 그 생각은 천호도 같았다. 과연 당비서가 기계공학이 전문인 석태인의 말을 알아듣겠는지, 여기 선 자리에서 저 종이에 그린 설계를 설명해야 괜한것이 아닐가?
당비서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반갑군요. 사실 나도 전공이 기계입니다. 농기계.》
《그렇습니까? 글쎄 이제 방금 이적기에 대한 평가를 들으면서 통한다 했는데.》
태인은 운명의 귀인이라도 나타난듯 벙실거리더니 그제야 천호 생각이 났는지 돌아보았다.
《이 동문 비육직장의 기술부원입니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려던 천호는 별안간 자기에게 시선이 쏠려지자 당황해서 고개를 굽석해보였다. 그러면서도 당비서가 처녀에 대해서 물을가봐 은근히 가슴을 조였다.
《중요한 직무에서 일하누만. 공장에 식구들이 누가 있소?》
당비서가 천호앞으로 돌아섰다.
《아버지는 이미 년로해서 들어오고 어머니는 공장가내반에서 일합니다.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천호는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면서도 온지 얼마 안되는 당비서가 공장실정을 꿰뚫고있다는것을 놓고 은근히 감탄했다.
두연오리공장은 시외에 있는 공장이다나니 가족이 같이 일하는것이 특징이였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며느리앞에서 시아버지 욕을 할수도 있었고 부부나 자식들이 다 참가한 회의장소에서 맏형을 난처하게 하는 경우도 있을수 있었다. 실제로 언제인가 우에서 나온 지도일군이 만장앞에서 집안의 가장을 비판하여 가정불화까지 일어난 례가 있었다. 그런데 새로 온 당비서가 공장에서 누가 일하는가 묻는것을 보면 벌써 이런것을 포착했다는게 아닌가?
《이름을 어떻게 부르오?》
《차천호라고 합니다.》
《아, 동무가 차천호였구만. 그러니 차로인의…》
《예. 저의 아버집니다.》
《그렇군.》
당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천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진지한 그 눈빛은 하많은 물음을 던지고있었다. 천호는 시그러운 해빛을 피하듯 눈가를 좁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물을게다. 아버지에 대해서, 또 처녀에 대해서.
《농업대학 가금과를 졸업했다지요?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기술도 익혔으니 공장현대화에서 한몫 든든히 할수 있겠구만.》
이럴 때 태인이가 가만있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당비서동지, 이 동무는 대학에서두 소문을 낸 수재였고 아버지한테서 현장기술두 많이 터득해서 도대체 막히는게 없습니다. 지금은 복합미생물발효제시험을 하느라고 밤을 패고있습니다.》
천호는 태인이가 미처 막을 사이두 없이 칭찬을 쏟아놓는 바람에 얼굴이 벌겋게 타들었다. 크지 않은 체격에 몸매가 호리호리한 석태인은 행동이 민첩했지만 말도 그렇게 빨리 했다. 그가 말을 시작하면 꼭 수채통으로 물이 흘러나오는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음.》
당비서가 무엇을 꿰뚫듯 유심히 천호를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에 찬탄뿐아니라 따뜻한 미소가 어리는것을 보자 천호는 코마루가 찡해서 겨우 한마디 했다.
《전 그저 아버지의 자료대로 하고있을뿐입니다.》
《음, 공장에서는 젊은 새세대 기술자들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당비서는 많은 이야기를 짧은 이 말에 담아 표현했다.
《우리 서로 공장의 현대화를 빨리 앞당기기 위해 마음을 합칩시다. 앞으로 또 만납시다. 사실 지금은 급히 가볼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량해를 구하는듯한 당비서의 표정에 천호는 뒤로 물러섰다. 태인이도 쾌히 종이를 도로 접어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이적기날개각도에 대해서 저도 좀더 연구를 하겠습니다. 어서 일을 보십시오.》
태인이가 뒤로 물러섰다. 그찰나 맞은켠으로 승용차가 다가왔다. 키가 껑충한 경리과장이 부리나케 승용차앞으로 달려가는것이 보였다.
그들은 인차 차에 올라 정문을 빠져나갔다.
천호는 멀어지는 승용차를 보며 당비서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자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묻지 않은것이 무엇보다 고마왔다. 속이 깊은것같았다.
《기계전문가라.》
천호의 곁에 있던 태인이가 손바닥을 맞비비더니 무용수마냥 빙그르르 한바퀴 돌았다. 사기가 나면 의례히 하는 동작이였다.
이윽고 태인은 대학연구사들과 함께 그 자리를 떴다.
걸음을 옮기는 천호의 머리속에서는 방금전에 당비서가 하던 말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껏 가슴속에서 떨어지지 않고 괴롭히던 처녀생각은 언제 사라졌는지 알수 없고 먹이생산의 현대화라는 말만 귀에 박혀있었다. 아직은 먹이생산에서의 현대화를 어떻게 실현할지는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자기가 주인이 되여야 할 몫이였다.
천호는 지금 자기가 하고있는 발효제연구사업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배합먹이를 먹일 때와 복합된 미생물을 발효시켜서 먹인것과는 오리증체률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고있었다.
미생물발효먹이는 오리생육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는 여러가지 균들과 기타 재료들을 배합하여 만든 먹이이다.
발효먹이를 어떤것으로, 어떻게 섞어서 쓰는가에 따라 그 효과는 각이했기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미생물발효먹이와 량을 찾아내야 했다.
방금전에 화제에 올랐던 이적기란 바로 이 미생물발효제를 고체로 생산한 복합미생물배양기질을 기계로 골고루 뒤적여준다는건데 생산도 하기 전에 태인은 벌써 기계화, 자동화단계에 들어서고있는것이다.
천호는 연구사업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뭉개고있는 점을 놓고 자책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하고 공장에서는
직장의 기술부원사업을 보면서 동시에 중요한 이 사업을 하는것이 난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구실에 불과하다. 전심하자. 이것저것 잡생각에 묻힌다면 무엇을 똑바로 할테인가.
방금전에 공장의 현대화에서 젊은 기술자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하던 당비서의 말을 다시 상기한 천호는 분주히 그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