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1 장

첫 상면

7 

 

우덕진은 팔을 휘저으며 빠른 걸음으로 당비서방을 나왔다. 방금 당비서와 지배인과의 협의회가 있었는데 거기서는 얼마후에 있게 될 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 참가하게 될 인원들을 선발하는 문제가 론의되였다.

당비서가 자기는 아직 초급일군들과 기술자들에 대해서 잘 모르니 지배인과 기사장이 각기 참가인원을 제기할데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기사장동무는 기술자들에 대해 잘 선택하시오. 회의에 참가할 인원은 10명이니 앞으로 공장운영에서 한몫할수 있는 사람들로 선정해야 하겠습니다.》

당비서는 이렇게 강조했었다.

사실 의견을 제기하라고 했지만 기술자들에 대해서는 자기가 선발하는거나 같다는 생각이 든 우덕진은 팔을 휘둘러대며 활기있게 걸어갔다. 겨우내 걸치고있는 깃털을 댄 솜덧옷을 아직도 벗지 않고있는것은 그 옷이 틀지고 위풍이 있는 자기의 모습을 부쩍 살려주기때문이다.

불현듯 책임기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 시절 우덕진은 기술사업에서는 제노라고 하면서 많은 흔적을 남기였다. 지금도 오리공장의 골치거리이던 새끼오리콜레라를 막기 위해 장기예방약을 만들던 때를 자주 돌이켜보군 했다. 새끼오리콜레라는 날나이에 관계없이 생기지만 주로 20~45일나이에 발생률이 높고 피해도 컸다. 그가 고심하여 만들어낸 장기예방약을 접종한 시험구에서는 대조무리에 비해 병발생률이 훨씬 줄어들고 키우기률이 30%이상 높아졌다.

이 일을 통해 이름을 날린 우덕진은 그이후 공장부지배인으로 승진했다.

부지배인은 기술일군의 사업과 완전히 다른 일이였다. 늘 외지에서 새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사귀고 자재, 먹이문제때문에 뛰여다니다나니 사업범위가 넓어졌고 분주했다. 그속에서 조직력과 외교술은 더 높아졌다. 그것이 그리 싫지 않았다. 파고 세운 장나무처럼 한자리에 있는것보다 외부와 낯을 넓히면서 돌아가는 자재사업을 하는것이 성격적으로 더 맞았다. 이럴바에는 기술적바탕도 있는데다 경영관리를 터득해서 공장의 한쪽변두리가 아니라 맨앞에 서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마침 지배인자리가 아직 결원상태에서 날자를 끌었다. 자기라고 지배인이 못된다는 법이 없었다. 기술도 원만하고 전개력도 있으니 우에서도 생각이 다 있을것이였다. 만약 지배인이 된다면 한번 해볼만하다는 속생각이 조용히 움트던찰나 우덕진은 지배인이 아니라 기사장으로 임명되였다. 자기의 과녁이 빗나간듯한 실망감이 없지 않았지만 우덕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경영을 하자고 해도 기술적으로 안받침되지 못한 일군은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였다. 이런 큰 기업소의 기사장을 하면서 기술적으로도, 경영관리도 막힘이 없이 자기 실력을 키울 생각이였다. 지배인자리는 한동안 결원으로 그냥 남아있어 기사장인 우덕진이가 대리로 일을 보았다. 기사장을 하면서 실제로는 지배인권한까지 같이 쓰니 마치 마음속은 지배인이 된것같은 기분이였다. 그래서인지 후에 박순배가 지배인으로 임명되였어도 우덕진은 공장일에서 일인자이면서 경영사업을 좌지우지하던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기술사업보다 단시간에 제껴야 하고 조직력을 발휘해야 할 일감속에 뛰여드는것을 좋아했다. 공장에서 배합먹이문제를 비롯하여 무슨 일이라도 제기되면 서슴없이 나서군 하는 바람에 기술사업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새로 나온 기술잡지는 펼쳐볼 사이도 없이 책상빼람속에 박혀버렸고 현장에서 제기되는 기술적인 의견은 사업일지에 적어넣은 그채로였다. 어쨌든 빨리 공장의 현대화를 끝내고 보자는 생각으로 발등의 불부터 끄는 식으로 돌아갔다.

우덕진은 걸어가는 속에서도 머리속타산을 해보았다. 종금1, 2, 비육1, 2를 비롯한 생산단위의 직장장들, 거기에 기술부원까지 하면 여덟, 그러니 아직 두명이 있군.

누구인가 지나치려다말고 나부시 인사를 했다. 수의사의 딸인 회계원이였다.

우덕진은 누구든 만나면 그저 지나치지 않았다. 그 대상에 따라, 자기 기분에 따라 무슨 말이든 해야 마음이 놓였다. 지어 기분이 나쁜 때라고 해도 웃음을 짓고 아무 일도 없는듯 딴전을 피우군 했다. 초급일군들이 인상이 좋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종업원들의 말밥에 오를지 알게 뭔가.

《오, 금순이구만. 요즘 점점 고와져?!》

우덕진의 성미를 알고있는 처녀는 그저 알릴듯말듯 눈인사를 하고는 살짝 빠지려들었다. 코대를 높이는 아버지처럼 이 처녀 역시 새침해서 잘 웃지도 않았다.

또다시 앞을 스치는 사람이 있어 눈을 들었다. 단백반의 통계원인 조현숙이였다.

《아이참, 혼자서 뭘 그렇게 중얼중얼하십니까?》

《오, 조동무요?》

우덕진은 그와 할말이 없으면서도 버릇처럼 미소를 지었다. 흰살색이 열허물을 가리운다고 아직도 바래지지 않은 그의 살색이 쉰이 넘은 조현숙을 한창나이로 착각하게 했다.

게다가 이번에 숙소꾸리기 책임자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그의 인기가 아이들의 손에서 둥실거리는 고무풍선마냥 하늘로만 자꾸 올라가고있다는것을 상기하자 우덕진은 훌 지나치고싶지 않았다.

《어델 그렇게 바삐 가오?》

《지배인동지를 만나려구요, 식당을 다 꾸렸는데 저녁부터 식사를 낼가 해서요.》

《벌써? 조동무의 실력이 대단한데!》

아빠트 한동을 다 꾸리고 연구사들을 이사시킨건 이 조현숙을 떼놓고 생각할수 없다. 그런데 식당까지 다 전개하고 저녁부터 식사를 보장할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였다.

지배인이 직접 준 과업이여서 그렇게 열성을 냈을가.

이번에 당비서가 그를 책임자로 찍었지만 우덕진은 이미전에 지배인이 추천했다고 짐작했다. 새로 온 당비서가 아무리 같이 왔다고 해도 조현숙이를 다 알수는 없는것이다. 사실 청진에서 살던 조현숙이가 여기로 옮겨온데는 지배인과 얽혀있는탓이였다.

《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의 말이 싫지 않은지 눈가에 웃음을 지었다.

《조동무, 그런데 내가 준 과업은 아직두 감감이요?》

《무슨 과업? 오, 그거야 뭐 과업입니까, 부탁이지. 그건 좀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조현숙이가 웃어넘기며 돌아서는 바람에 우덕진은 뻔히 보기만 했다. 이제 조현숙이가 표현한대로 그가 한 부탁이란 의학대학을 졸업한 처남을 보건부문에서 일인자로 소문을 내는 외과과장에게 소개하는것이였다. 그 외과과장이 바로 조현숙의 오빠였다. 그가 나서면 처남이 바라는 문제는 떡먹듯 쉬울것같아서였다.

(전화 한통이면 되겠는데 뭘 시간이 걸린다구. 지배인일이라면 우정 가서라도 들어주었겠지.)

조현숙이가 자기 일엔 별로 손이 시려한다는 생각을 하며 우덕진은 종금직장으로 들어가는 구내길에 들어섰다. 놀이장앞에 별로 사람들이 등덩굴 엉키듯 몰켜있다 했더니 맨앞에 있는 차학선의 모습이 보였다.

(저 령감이 또 왔나?)

그 순간 그의 아들인 천호의 얼굴이 곁따라 얼른거렸다.

생산직장 직장장들이 기본인원이니 자연히 직장기술부원들도 열성자회의 참가대상으로 선발되여야 했지만 그를 선뜻 짚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차학선이가 싫으니 자연히 그 여파가 천호에게로 튕겨났다. 싫은 리유란 엄연히 년로보장으로 넘어갔는데도 기술자로서의 인기는 기사장인 자기를 릉가했다. 그 아버지를 턱대고 천호가 별로 고분고분하지 않는다는것으로 자연히 아니꼬왔다.

우덕진은 차학선과 마주치는것이 싫어서 비육호동으로 들어가는 구내길로 돌아섰다. 허나 조약들을 피하니 수마석이라고 호동앞에선 수의사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있는데 그와 마주서있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천호였다. 그렇다고 우물거릴 우덕진이가 아니였다.

먼저 수의사가 알아보고 인사를 하자 우덕진은 수의사를 마침 만나기라도 한듯 그자리에 서서 말을 걸었다.

《수의사동무, 요즘도 해부를 정상적으로 하겠지요?》

《예, 그건 저의 정상적인 사업인걸요.》

《그런데 말이요.》 우덕진은 수의사와 긴히 할말이라도 있는듯 말주머니를 열었다. 이것은 우덕진이가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기의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필요할 때마다 쓰는 수법이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는 수의사와 아주 중요한 말을 해야 하는 기사장이라는것을 아래사람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자기의 위신을 자연스럽게 올릴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수의사의 사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한동안 늘어놓고보니 천호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유유히 그자리를 뜨던 우덕진은 수의사는 어쩔수 없으나 천호는 대상자명단에서 단호하게 지워버렸다. 너무 젊었다는것이 적절한 구실로 될수 있었다. 이번엔 사무실성원들에게 돌려졌다.

생산과와 계획과는 공장기술진영의 핵심들이였다.

생산과의 과장으로부터 한명한명 훑어보던 우덕진은 생산과의 한미순을 점찍었다. 후에 사무실성원들을 대폭 제한한다고 해도 한미순만은 꼭 참가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드니 학선이를 둘러싼 관리공들이 우르르 다른 호동으로 밀려가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마가 절로 찌프러졌다. 그는 더 지체하지 않고 정문으로 씽씽 걸었다.

지령총화때마다 수의방역체계를 철저히 세우자고 말은 하면서도 질서가 없다는 생각으로 정문에 나와있는 방역대처녀들에게 와락 역증을 냈다.

《질서가 없소, 왜 아무 사람이나 들여보내?》

《외부사람이 들어간건 없습니다. 단지 차아바이가 들어갔을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 가리지 못하면 사택마을에서 밀려와도 다 통과시키겠구만.》 괜히 심술기를 살린 우덕진은 눈을 부라렸다.

휭 돌아서는데 언제 나왔는지 우뚝 서서 굳어진 지배인의 모습이 띄웠다. 무척 아연해하는 표정이였지만 피할수도 없어진 우덕진은 그대로 내처걸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