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2
강수려는 이사짐을 실은 차가 《부르릉!》 소리와 함께 떠나자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까지라도 따라갈 자세로 점점 더 속도를 냈다. 차우에 앉았던 언니가 그만두라고 만류하다말고 손으로 입을 막는 모습이 뿌잇한 망막속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그는 멈춰서지 않았다.
수려는 강시연의 막내딸이다.
지금 수려는 떠나는 차를 따라가고싶은 마음뿐이였다. 이길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늘 밤을 어디서 보내는가를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서는 견뎌낼것같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아버지이기에 술친구가 없었고 명절이라고 해도 놀러오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술안주가 어떤것이 좋은지도 잘 몰랐다. 어쩌다가 시간이 있으면 아버지는 독서에 파묻히는것이 큰 락이였다.
정말 아버지는 자기가 맡은 본신일밖에 몰랐다. 가정일도 거의 어머니가 했고 남자손이 가야 할 일은 언니가 아저씨와 함께 와서 해주군 했다. 그렇게 자기 일을 하는것밖에 모르는 성미인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수 없었다. 아, 아버지-
작년에 수려는
이젠 어쩔수없이 대학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다. 집에 와보니 벌써 자기 집이 아니였다.
면목이나 있던 젊은 부원네 부부가 당황하여 집안으로 잡아끌었지만 수려는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이 된 그곳으로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미리 이불짐이며 책들을 기숙사로 옮긴것이 다행이였다.
불룩한 배낭가방 하나만을 어깨에 멘 수려는 총총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뻐스를 타고
홀로 공원의자에 앉아있으려니 또다시 아버지 생각이 돌짬으로 삐여져나는 독풀처럼 집요하게 솟구쳤다. 무엇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났을가. 아버지의 과오란 무엇일가. 정말 아버지가 과오를 범했을가?
이제까지 수려는 스물다섯해를 살아오면서 온실안의 화초마냥 비가 오는줄도 모르고 눈보라가 치는줄도 모르고 안온하게 살아왔다. 아니, 그런걸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섭게 과학을 탐구하는데만 열을 냈다. 전공과목은 물론 외국어에서도 첫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늘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견주고 경쟁하는 심정으로 학업에 열중했다. 아버지처럼 실력가가 되자는것이 그의 속생각이였다. 아버지는 그의 학업과 생활의 거울이였다. 자연히 한창나이 처녀들의 호들갑스런 성미가 아니라 주위의 일에 무관심하고 말을 하는것보다 행동이 앞섰고 겉으로 표현하는것보다 속으로 사색하는것을 더 좋아하게 되였다. 제또래보다 상급생연구사들의 론쟁을 듣기 좋아했다. 차츰 말이 적어지고 누가 범접하기 힘든 랭랭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그런 수려를 동무들은 《장미가시》라고 부르기 좋아했다.
《수려, 어느 남자가 네 장미가시에 찔리우게 되겠는지 궁금하구나.》하고 호기심을 나타낼 때에도 수려는 말없이 눈길을 내리깔았다. 동무들이 시까스르는 말에 그는 일일이 대꾸하는적이 드물기도 하지만 자기가 장미처럼 곱다고 생각한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장미가시라는 소리가 싫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런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호하는 가시라면 얼마나 좋아.
대학졸업식을 하고 박사원으로 출근하던 날 한 남동무가 그에게 쪽지편지를 슬쩍 쥐여준 일이 있었다. 펴보니 어느날 어디서 만나자는 글이 씌여있었다.
약속한 시간에 그를 만난 수려는 제먼저 《고맙군요. 난 동무와 따로 만나 할 얘기가 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어요.》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그다음부터 랭랭하다느니, 너무 도고하다느니 하는 딱지가 덧붙었지만 오늘까지 그 자세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또 접어드는 남자도 없었다. 아마 장미가시에 찔리울가봐 두려워하는 모양이였다.
그 장미가 비바람 불어치는 시련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여있을가. 오가는 바람을 다 맞으며 생소한 땅에 뿌리를 내린 장미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려면 반드시 이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것이다.
원래 나긋나긋한 성미가 아닌 수려이기에 찬바람이 불어친다고 해도 당장에 쓰러지지는 않겠지만 집안의 자랑, 자기의 자랑이던 아버지의 배경은 없어졌다. 눈굽이 뜨끈해오며 눈물이 쏟아지려는걸 강잉히 참아냈다.
다른 생각을 말자. 아버지도 떠나면서 얼마나 강조했던가. 연구사로서의 자질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과제를 맡는다 해도 대학생시절처럼 제 몫을 해야 한다. 보란듯이 연구사업을 하고 반드시 은을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이것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다.
입술을 사려무는 수려의 모습은 그야말로 노을빛에 색도 더 진해지고 가시끝도 더 뾰족해지는 한송이의 진분홍장미를 방불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