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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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호는 오늘도 현장에서 또 하나의 기술을 익혔다는 자부를 안고 아침밥을 먹으러 들어갈 차비를 했다. 어제 그는 갓 넘어온 새끼오리들의 상태를 관찰하느라 호동에서 밤을 꼬바기 밝혔던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아버지가 아침밥을 가지고 직장에 나타났다. 천호는 늙은 아버지에게 이런 부담을 끼친것이 미안해서 사근사근한 인사말 대신 괜히 툴툴거렸다.

《아버지두, 구내식당이 있는데 밥을 못먹을가봐 이런 걸음입니까?》

《어서 먹기나 해라.》

아버지는 휴계실 한복판에 밥보자기를 펼쳐놓았다.

먹을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던것이 밥을 보는 순간 식욕을 참을수가 없어 볼이 미여지게 떠넣었다.

《오늘 네 밥심부름을 한 덕에 공장에 선선히 들어왔다. 네 밥을 가져왔다니 어서 들어가라고 하더구나. 이제부터는 공장의 출입질서가 그전같지 않나보더라.》

《아버지두 안들여보내요?》

천호는 눈이 덩둘해서 볼부은 소리를 했다.

《이제야 오리들을 들여놓기 시작하지 않았니. 공장의 질서가 있지. 네 덕에 새 우리에 들어온 오리들을 보게 되니 그게 어디냐. 오리사가 멋있구나. 이제 오리사가 다 완성되고 오리가 그득 차면 볼만하겠다. 요즘은 공장의 모습이 하루하루 달라지는구나.》

천호는 목구멍이 확 달아오르는 바람에 방금 넣은 밥이 도로 튀여나올번했다. 눈앞이 뽀얗게 흐려오는 바람에 연신 눈시울을 끔뻑거리며 어방대고 찬그릇에 저가락을 짚었다. 공장에서 기사장을 한 아버지는 일생 오리밖에 몰랐다. 오리와 관련되는 책은 다 사들였고 오리가 좋다는건 다 구해들이군 했다. 그렇게 오리를 위해 자기를 다 바치고 오리를 사랑했고 오리에 미쳤다고 소문을 낸 아버지였다. 결혼도 오리를 놓고 했다는 말을 천호는 그후에야 들었다.

그렇게 오리를 사랑했던탓인지 아버지는 오리때문에 일생의 마무리를 잘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지금도 오리에 대한 연구사업을 놓지 않고 온 집안을 오리우리처럼 만들어놓고 새 자료를 자기에게 주는맛으로 살고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사소한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늘 왼심을 쓰는데 오늘은 이렇게 밥심부름까지 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간 후 천호는 부지런히 작업조직을 했다. 오늘은 직장장이 기사장의 과업을 받고 자리를 뜬탓에 직장장사업에 기술부원의 일을 하느라 바삐 돌아갔다.

점심때가 돼서야 숨을 돌린 천호는 부랴부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점심은 집에 가서 아버지와 같이할 생각이였다.

천호가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오는데 석태인이가 불쑥 나타났다.

《아니, 벌써?!…》

천호는 반갑게 태인을 맞았다. 태인은 오늘 비육호동에 설치할 오리먹이공급기부속때문에 시내의 기계공장에 나갔었다.

그는 요전날 당비서가 과업을 준 호동에서의 먹이공급을 기계화하는 사업을 바로 천호네 비육호동에서 실현할 계획을 가지고 하는중이였다. 자연히 천호와 공동으로 하게 되였다. 그 과정에 그들은 대담하게도 기계화가 아니라 자동화를 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난감했던 혼합기며 스크류도 다 완비되였는데 세밀가공품인 축만은 힘들어서 시내의 기계공장에 맡겼었다. 그걸 찾으러 나간 태인이가 저녁중에나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온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다가가던 천호는 의아해졌다. 웬일인지 태인은 비맞은 장닭모양이였다. 가뜩이나 체소한 몸이 그 모양이니 사람이 하루새에 절반으로 졸아든것같았다.

《왜, 일이 잘 안되였습니까?》

천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같아 다급히 물었다. 스크류를 설치할 곳은 여러군데였다. 수다하게 들어가는 축을 깎아야 먹이공급기의 자동화를 실현할수 있는데 저런 표정이면 일이 튀였다는것을 의미하는게 아닌가.

《천호동무, 담배 좀.》

태인이가 손을 내밀었다. 어안이 벙벙할 일이였다. 태인은 조만해서 담배를 안피웠다. 확실히 무슨 일이 생겼구나.

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아무말없이 담배갑을 통채로 내밀었다. 그러나 태인은 담배는 받을 생각을 않고 직장앞마당의 블로크무지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감추지 못하는 제 성미그대로 갑자기 울분을 터뜨렸다.

《그 사람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그 사람이 글쎄 이 공장에 오지 않았겠나. 말하자면 떨어졌지. 이젠 나이도 적지 않은데 그런 일이 생겼으니 어쩔텐가.》

태인은 밑도 끝도 없이 알지도 못할 그 누구인가의 말을 꺼내고는 한숨을 내쉬였다.

《아니, 어떤 사람이게 그럽니까?》

《어떤 사람?》

그제야 태인은 자기의 실수를 알았는지 말없이 담배 한대를 뽑아냈다.

《그 사람은 나의 은인이요, 잊지 못할 사람이지.》

이렇게 시작을 뗀 태인은 어깨를 떨구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였다.

천호는 태인의 말이 길어질것 같은 짐작이 들어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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