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4

(2)

 

점심때 집에 간다는건 벌써 시작부터 틀린 일이였다.

《동무에게 말 못했지만 난 그전에 지방의 어느 공장의 공무반에서 일하고있었소. 그때 나의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하는거였소. 그런데 공장의 실정이 내가 대학으로 훌 떠나게 되지 않았소. 공장에서는 만들고있던 전차를 다 끝내고 가야 한다는거요. 내가 없으면 당장 조립이 곤난한 상태에 있었던거요. 다 됐는가 하면 실패하고 또 실패를 거듭하면서 일을 끝내고나니 시험이 벌써 시작된게 아니겠소. 당조직에서는 아직 추가시험이 있으니 실망하지 말라고 나에게 힘을 주었소. 동무들도 등을 밀면서 저들이 추가날자를 알아가지고 와서 날 떠나보냈다오. 그런데 대학에 도착하니 오히려 얼마나 추궁하겠소. 규률이 없다느니, 대학에 올 자격이 없다느니 하면서 시원한 결론을 주지 않더란 말이요. 꾹 참았지. 그들의 말대로 규률이 없는건 사실이니까. 할수없이 추가시험날만 기다리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나는게 아니겠소. 너무 아파서 견딜수가 있더라구. 그래도 가지고있던 약을 다 먹으며 견디여냈소.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이틀을 보내는데 마지막엔 정신까지 혼미해지지 않겠소. 끝내 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소.

그후에 눈을 떠보니 아니글쎄 내가 병원에 있는게 아니겠소. 급성충수염에 걸려서 수술했다는거요. 하마트면 복막염에 걸릴번 했다나. 난 너무 기가 막혀 입도 벌리고싶지 않았소. 일시 위기는 물러났지만 시험을 못친게 제일 큰일이 아니요. 내 일이 왜 그렇게 자꾸 꼬여들겠소. 그래 하루는 간호원을 졸라 알아보았더니 그사이 추가시험이 다 끝나고 합격자들 발표도 다 끝났다는거요. 이런 변이 어디 있소. 더는 견딜수가 없어 남의 옷을 빌려입고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대학에 찾아가서 사정을 했소. 어디 내 말이 통하던가. 누구도 들어줄념을 안했지. 그저 간단한 대답은 래년에 다시 오라는거요. 무슨 사정인들 안했겠소, 누군들 안만났겠소. 마지막으로 대학당위원회에 찾아갈 생각으로 층계를 올랐소. 당위원회는 4층에 있었소. 그러나 난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푹 주저앉고말았소. 그 순간 지하로 주르륵 미끄러지는 환각속에 빠지고말았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누군가 나를 부축하고있더군. <이제야 정신을 차렸군, 다행이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소. 알고보니 대학의 층계에 쓰러진 나를 바로 그 사람이 발견했다오. 그 사람은 대학에 일보러왔던 시인민위원회사람이였소. 나와는 초면이고 대학과는 련관도 없을뿐 아니라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이였소.

그러나 물에 빠지면 지푸래기라도 잡는다는 격으로 난 그에게 실토정을 하질 않았겠소. 그 사람이 나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었소. 그러더니 어디론가 갔다오더구만. 후에 안데 의하면 그는 대학당위원회에 들어가서 사실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는거요. 내 문제가 다시 심중히 론의되였소. 중요한건 그 사람의 주장으로 내가 시험을 치게 된거요. 너렁청한 강당에서 나 한사람을 위한 시험이 진행되였소. 결국 이 시험에서 합격되여 나는 대학생이 되였소. 그가 아니였더라면 나는 그때 대학생이 되지 못했을거요. 나를 알지도 못할뿐 아니라 대학에 일보러온 그저 평범한 사람이 나를 위해 그렇게 사심없이 뛰였던 그 점에 감동되였고 큰 충격을 받았소. 대학에서도 그걸 높이 사주었던것같소. 후에 보니 그가 하는 일은 다 그렇게 정확했소. 보다는 인재를 귀중히 여기는 그의 정신이였소. 대학 다니는 기간 집에도 자주 다닐 정도로 가까워졌는데 생활은 그지없이 소박하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였소. 그후 부장으로 되였는데도 달라진건 없었소. 그런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해임되여 여기 공장에 왔다누만. 그런 사람이 해임되다니. 그 집에 딸 둘이 있는데 지금 종합대학에 있는 작은딸이 얼마나 상심하겠소.》

천호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인생의 전환점인 대학입학을 도와준 사람이라면 은인이라고 할만했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렇게 속을 태울수도 있었다. 천호는 그와 한심정이 되여 우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아이, 여기 있었군요. 오늘 농산직장에서 봄시금치를 내준대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직장통계원이였다.

《봄시금치?》

그 순간 천호는 벌떡 일어났다. 이런 부식물을 내줄 때는 개별적으로 다니지 않고 직장적으로 공급되군 했다. 태인의 경우 역시 연구사들이 집체적으로 타올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자기가 해주고싶었다.

《태인선생, 내가 봄시금치를 타올게 집에 다녀오십시오. 양복도 입어볼겸, 형수님이 얼마나 기다리겠어요. 그럼 준비하십시오.》

천호는 태인이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휙 자전거에 올랐다. 태인의 기분을 전환시킬 일이라면 농산직장이건 어디건 마다치 않을것같았다.

아직 흔치 않은 봄시금치를 가지고 처도 만나고 새 양복도 입느라면 잠시라도 울적한 기분에서 벗어날수 있다.

그러나 일은 농산직장 온실앞마당에서부터 틀어지고말았다.

온실에는 낯선 사람이 혼자 서성거리고있었다. 천호는 온실마당을 휘둘러보다가 《아바이, 주인들은 어디 갔습니까?》하고 물었다. 이 물음이 그의 노여움을 자아냈다는걸 천호가 알리 없었다.

후에야 그가 새로 온 경비원이라는것을 알았을 때에도 천호는 자기의 실수를 느끼지 않았다.

《아하, 그렇습니까. 요새는 새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니 경비원도 새사람이군요. 남새를 타러 왔습니다.》

키가 큰 경비원은 아무말없이 명단을 펼쳤다. 그전에는 무슨 명단을 보고 확인하는 일이 없었던것으로 알고있는 천호의 눈에는 그의 행동이 별스럽게만 보였다. 그래도 사유를 밝혔다.

《김책공업종합대학 연구사 몫을 타러 왔습니다.》

《누구 몫?》

《석태인연구사의 몫을 가져가려고 그럽니다.》

《태인이? 그런 말이 없었는데…》

새로 온 경비아바이가 석태인연구사를 다 안다? 천호는 그것이 신기한듯 아바이를 올려다보고는 《나하고는 얘기가 있었습니다.》하고 앞에 몫몫으로 놓은 시금치단을 집으려고 했다.

《동문 누구요?》

그의 목소리가 어지간히 높았다.

차천호는 슬그머니 약이 올랐다. 외부에서 동원된 사람은 알면서도 자기 종업원보고는 신분을 확인하는 이런 사람을 과연 뭐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버지같은 늙은이이기에 한껏 자중했다.

《비육 하나에 있습니다.》

《비육 하나라는건 또 뭔고? 안돼, 자기 몫이 아닌 경우에는 신분이 확인돼야지.》

《무슨 확인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천호는 의아해졌다.

《나야 동무를 모르지 않소.》

경비원은 그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랭랭하게 말했다. 기름한 얼굴의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바늘 들어갈 빈틈도 있는것같지 않았다.

《뭐라구요?》

언성이 높아지려는찰나에 농산직장장이 온실안에 들어온것은 다행이였다. 그러나 이미 천호는 마음이 돌아선 때였다. 시금치 한단때문에 자기의 자존심이 여지없이 짓밟혀진 천호는 입을 꾹 다물고 자전거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직장장에게 한마디 했다.

《내거라면 오지도 않습니다. 태인선생한테 좋은일 하려댔는데.》

붙잡으면 더 기가 나는 식으로 직장장이 만류할수록 천호는 더 펄펄 뛰다가 휭하니 자전거를 타고 빠져나왔다.

이제 태인을 어떻게 만나랴하고 은근히 걱정하는데 누군가 앞에서 무거운 축꿰미를 메고 힘겹게 가고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름아닌 석태인이였다.

《아니, 태인선생!》

천호는 깜짝 놀라 자전거에서 내렸다. 지금도 직장앞의 마당에서 한숨이나 쉬고있을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걸 빨리 붙잡소. 오늘 다해야 하는데 내가 그 부장동질 만나는 바람에 다 잊었댔지.》

태인이가 오히려 독촉했다.

《오늘 다 조립하자고 계획하지 않았소. 빨리 합시다. 그도 내가 자기 할 일을 못하고 한숨만 쉬고있는것을 바라지 않소.》

그러더니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아마 우연이겠지, 워낙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이미 태인에게는 봄시금치 생각이 안중에 없었다. 천호도 그에게 별난 경비원에 대한 말을 할 경황도 없었다. 다같이 오늘 40호동에 설치할 스크류생각밖에 없었다.

얼마후에 축꿰미를 맞든 그들은 나란히 비육호동으로 향했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