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제 3 장
28
(1)
김형규네며 금속연구소, 김철의 기술집단은 대를 두고 전해갈
사실 구철은 시험일지를 읽어보고서야 자기의 엄청난 곡해를 알게 되였으며 신정의 심정도 리해할수 있었다. 그래서 그후로는 구형체를 더이상
입에 올리지 못하였다. 허나 그의 가슴한구석에는 동생의 귀중한 생이 허무하게 묻혀버리였다는 쓰라린 아픔이 그냥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근간에 그의 걸음새에는 박력이 없었고 무거운 침묵이 그의 입을 꾹 틀어막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영호와 함께 해당 부서의 일군들이
다시 내려와
정구철은 끝내 눈물을 쏟고말았다. 그는 새로운 기술도입을 온곱지 않게 대하였던 일들을 쓰겁게 돌이켜보았다.
정구철이뿐 아니라 신정이며 김형규도 마찬가지였다.
동지적의리와 과학자적량심을 가지고 정철의 연구성과를 무겁게 대하여준 김형규나 마음속아픔을 누르고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면서까지도 애인의
방안을 부정한 신정이도 다같이 아름다운 도덕륜리를 지닌 사람들이라고 평가해주신
김형규네며 금속연구소, 김철의 기술집단은
시내에 있는 정보기술연구소에서 밤샘을 하고나서 먹는둥마는둥하게 식사를 마친 김형규는 이 아침에도 기업소에 들어서자바람으로 현장걸음을 하였다.
질러가려고 강괴관리직장의 강편야적장으로 들어서던 그는 아연하여 서버리고말았다. 그새 가열로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나니 야적장에 밀지 못한 강편이 산같이 쌓인것을 보지 못하였던것이다. 형규는 안다, 이 강편을 하루빨리 밀어내야 희천발전소며 창전거리, 대계도간석지건설을 비롯하여 경제전반이 활성화된다는것을.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리고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무엇때문에 시험을 드티고있는것인가. 형규는 자격지심에 싸여 발길을 떼였다. 강편무지들을 에돌아가니 배풍기주위에 스무나문명이 더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몇걸음 떨어져 주영호내각부총리와 정구철부기사장이 서있는것이 눈에 띄운다.
열간압연직장으로 빠지려면 어쩔수없이 그리로 가야 했다. 다가가 인사를 하려는데 둘이 한창이야기를 나누느라 이쪽을 볼념을 하지 못한다. 걸음을 멈춘 형규는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가까운 거리여서 그들의 목소리가 잘 들려왔다.
《일전에 채동무한테서도 단단히 꾸중을 들었다면서?》
롱담기가 다분한 주영호의 물음이였다.
《들을 말을 들었는데 뭐랍니까. 이번에 정말 생각이 많았습니다. 채아바이가 옳습니다.》
아주 널직하게 받아들이는 정구철이였다.
주영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다가 정구철의 등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한데 이 동무들은 누구들이요?》
《예, 우리 기업소의 열전문가들입니다. 이 동무들속에는 한생 강판을 다뤄봐서 측정기요, 시편분석이요 하는게 없이도 눈으로 강판질을 알아맞추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요.》
김형규는 그제야 배풍기주위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낯이 익었다.
《그렇소? 허- 정동문 여전히 형규동무네의 성공을 믿지 않는게 아니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 난 그들을 돕자는거지요. 밥가마가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밥을 지어봐야 압니다.》
《동문 암만봐야 그 영화 있지 않소? 최관배아바이가 나오는 영화 말이요.》
《〈군당책임비서〉지요. 날 보군 거기서 나오는 박우필기사장처럼 논다고 말씀하고싶을거구. 일없습니다. 박우필이문 뭐랍니까. 내야 제할바를 하고있는데.》
정구철부기사장의 퉁명스러운 대답이였다. 그의 말은 옳았다. 강판의 질을 검사하는것은 응당한 공정이였다. 전같으면 형규는 이 응당한 일을 놓고서도 자기에 대한 일종의 불신으로 짐작하며 불쾌해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쩐지 정구철부기사장이 뒤에 있어 더욱 배심이 생기는것만 같았다.
도로를 따라 열간압연직장에 들어서니 가열로근처에서 채호명이 근심이 가득 낀 얼굴을 해가지고 찾는것이였다. 또 무슨 일인가. 강편가열시험날자가 가까와오니 전에없이 잔걱정이 많은 아바이였다.
《제기된것이 있는가요?》
《있구말구. 형규선생, 그거 말이요.》
채호명은 갑자르다가 속을 털어놓았다.
《가열로에 중유가열로처럼 감시구를 한 댓개 내줄수 없을가? 감시구가 없는 가열로가 습관이 되지 않아 마음이 편하지 못하구만.》
며칠전에 피뜩 지나가는 소리처럼 했던 우려였다. 김형규는 그러는 아바이에게 《육안이 아니라 콤퓨터로 감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직장에 종합조종실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지요. 과학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안심을 시켰었다. 그런데도 안심을 놓지 못하겠다고 한다.
(참 습관이란 집요하거던. 하기야 감시구를 달아준다고 해서 별다른 일은 없으니까.)
《좋습니다. 7개면 되겠습니까?》
형규의 선선한 대답은 채호명의 얼굴에서 근심기를 가셔버리기에는 충분하였다.
《7개까지야 뭐. 3개면 충분하오. 그럼 내 속이 편안해지지.》
갑자기 가열로굴뚝어방의 현장출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지 이고진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현장 여기저기서 일을 하던 로동자, 기술자들이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웬 사람들입니까?》
《형규선생이 어제저녁에 정보기술연구소에 가 일을 봤으니까 모를게야. 오늘 낮에 고온공기연소식가열로의 3차련동시험을 축하하는 기업소예술선동대공연이 있게 되는데 나중에 강편가열시험을 앞두고 참가자들을 한주일가량 푹 휴식시키자는 론의가 있었습지. 그래 기업소 후방부와 각 직장들에서 저렇게 휴식보장용후방물자를 가져오는거지. 가세. 우리두 저들의 성의를 보고만 있으면 안되지.》
호명을 따라 출입구로 간 김형규는 반색을 하며 아이어른 합해서 열명이나 되는 일행속에 유난히 키가 작은 할머니의 두손에서 보짐을 받아들었다. 이들은 3호용광로 강창길작업반장네 가족들이였다.
《할머니까지 걸음을 하셔야 합니까. 강창길반장동무는 어디 갔습니까?》
숨이 차고 허리가 아팠던지 두손으로 뒤허리를 잡고 상체를 뒤로 제끼며 긴숨을 내불던 할머니가 한손으로 뒤켠을 가리켰다.
《가긴 어딜 가. 저기서 흔들거리며 오잖나.》
과연 배낭식가방을 멘 강창길이 손에 구럭지를 하나 달랑 들고 팔자걸음을 하며 술렁술렁 걸어오고있었다.
《가족끼린데 반장동문 왜 떨어져옵니까.》
《에그- 저게 그걸 달았다구 재세가 아닌가. 뭐 녀자들하구 다니문 창피하다나. 제 꼬투리 낳는 재간이 없는건 탓하지 않구 생천 우리들보구 눈을 찌프린다이.》
김형규는 웃음을 머금었다. 할머니의 말은 사실이였다. 강창길이는 3대독자외아들이였는데 창길이대에 와서 그만에야 대가 끊기는 일이 벌어졌다. 아들을 바라고 줄창 진지하게 《농사》를 지었건만 바라지 않는 딸이 거퍼 넷이나 그의 가슴에 안겨들었기때문이였다. 하여 온 가문이 달라붙어 창길이를 몰아주는바람에 그는 밸이 나서 《농사》를 포기해버리고말았다. 그러다나니 그들가족이 휴식일이나 명절날에 어디든지 놀러 나갈 때면 강창길은 아주 《커다란 고통》을 당하군 한다. 딸 넷에 처와 3호용광로 작업반장인 아저씨를 큰 인물처럼 대하는 세명의 처제, 할머니까지 9명의 녀성을 거느리고 거리를 걸어갈 때면 가고오고하는 사람들이 한번씩 여겨보며 씨물거린다.
언젠가 부반장이 그걸 띠여보고 《반장, 직장축산기지 가서 닭무리 본적 있소? 본적이 없다문 어느 기회에 자세히 보오. 똑똑한 수닭은 암닭무리와 섞이지 않소. 떨어져 돌아다니다가 제 무리속에서 무슨 일이 나면 달려오우. 이게 무슨 뜻인가 하니 가족과 다닐 때는 좀 떨어져걸으라는거요. 보기가 별나오.》라는 충고를 주었다가 화가 불끈 난 창길이 사나흘이 넘게 말을 안하는통에 《사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강창길은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온 가족과 다니는 일이 생기면 잊지 않고 부반장말대로 하였다.
《너무하구만요. 할머니까지 모시고오면 함께 와야지. 왜 떨어져옵니까?》
김형규가 모르는체 하고 롱을 건네자 강창길이 례의 은색틀이를 번쩍거리며 늘어지게 하는 대답이 걸작이였다.
《그간 내가 짬짬이 새 가열로에 바친 정성을 하나둘 추억해보니까 걸음이 떠집데.》
형규는 소리내여 웃었다.
《강좌장선생, 맨 첨에 내 뻣뻣하게 대한거 탓하지 맙소.》
《아니요. 창길반장동지가 그리 안했더라면 내 큰 오유를 범할번했습니다.》
구럭지를 바꿔든 강창길이 손을 내저으며 겸양을 한다.
《좌우간 과학기술이 좋긴 좋소. 선생, 새 가열로 성공하문 이런 벙어리시늉이 없어진다는게 사실이요?》
그는 한손으로 이런저런 시늉을 내며 물어본다. 수동식으로 조종하는 중유가열로는 소음이 너무 커서 생산지휘나 서로간의 련계를 대체로 호각과 손시늉으로 하군 하였다. 례하면 직장장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호각을 한번 불고는 머리꼭대기를 두세번 두드렸고 반장은 어깨를 두드리는것으로, 부문당비서는 심장을, 고압랭각수계통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위장부위에서 대장부위쪽으로 내리쓰는 등 생활과 생산공정 구석구석까지 이런 불편한 신호방법이 있었다.
《사실입니다. 벙어리시늉이 없어질뿐더러 기름을 안때니까 환경보호측면에서도 하나 먹고들어가지요. 로동자들이 이전과는 달리 소음공해가 전혀 없는 현장에서 깨끗한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게 될겁니다.》
《강좌장선생, 내 고온공기연소가열로루 강편을 뽑은 날에 제1번으로 구경오겠수다. 강판색갈만 봐두 강창길이는 질을 아오. 난 잘될거라고 믿수다.》
《고맙습니다. 꼭 오십시오.》
선선한 응답은 했으나 김형규는 심리적중압감을 느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