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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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철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예술공연은 12시에 끝났다. 김형규는 신정이와 맨 마지막으로 회관을 나섰다.

《좀 걷지 않겠습니까?》

형규는 자전거보관소로 가려는 처녀의 팔소매를 다쳤다. 둘은 압연지구정문에 이를 때까지 그저 걷기만 하였다. 정문을 지나자 신정이 먼저 입을 떼였다.

《공연을 본 소감이 크겠습니다. 박사원생들한테서 듣자니 음악예술에 조예가 상당하다고 하던데.》

《왜 크지 않겠습니까. 조예가 깊기보다 늘 들어오던 노래들이 바로 우리를 위해 불리워진다니 감동이 더 크지요. 사실 난 아침에 몇가지일을 목격하고나서 심리적부담이 자못 컸습니다.》

형규는 시험당일날 기업소의 한다하는 열관리전문가들을 동원하여 강판질을 검사하려는 정구철부기사장의 계획, 감시구를 내달라는 채호명아바이의 요구, 후방물자를 들고 열간압연직장으로 찾아오는 련합기업소의 각 직장 가족들의 모습, 심지어 강창길작업반장의 기대어린 고무도 례를 들었다.

《내가, 아니, 우리가 꽤 해낼수 있겠는가, 정말 가열로가 밥을 잘 익혀낼가 하는 걱정이 갈마들었지요. 공연이 그걸 다 없애주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불러준 김철의 축하의 노래는 그대로 힘과 고무였습니다. 신정선생은 뭐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처녀의 눈빛에서 미소가 내비치며 두입귀가 곱게 들린다.

《내가 제일 감동깊게 들은것은 주영호부총리동지가 부른 노래 전사의 길이였습니다.》

철의 도시 밤하늘에 붉은 눈이 내리네도 좋았습니다. 장군님을 직접 만나뵈온 동무가 부르니 더 실감있었어요.》

《아- 강편절단기로 강편을 자르다가 장군님께서 물으시자 함북도 사투리로 말씀드려 그이께서 크게 웃으시였다는 동무 말이지요?》

《네, 2강철의 김경호라고.》

《내 심정과 같군요. 옳습니다. 그 노랜 가사나 곡이 좋습니다. 한데 난 우리 시인들에게 늘 한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내 우리 나라 4대 야금공장에 다 가보았는데 철의 기지를 형상한 노래에 불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들 강선의 노을을 두고서는 확실히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노래라는것을 인정하는데 이 철의 도시 밤하늘에 붉은 눈이 내리네는 김철이나 성강, 황철이 제마끔 자기네 노래라고 주장한단 말입니다. 이걸 정확히 갈라주든지 아니면 매 기업소에 다른 노래를 지어주든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인들이 그걸 왜 모르고있겠습니까. 그 노래이상으로 좋게 지을수 없어 그러지 않을가요.》

《그럼 내가 짓지요. 내 여기 와 생활하면서 상이 떠올라 좀 적어놓은것이 있는데 아는 작곡가들에게 보일텝니다. 까짓거 뭐, 작곡가들에게 찾아갈거야 있나. 가사, 곡 내가 다 짓고말겠습니다.》

김형규는 처녀의 얼굴을 돌아다보고는 자기의 장담이 빈소리가 아니라는것을 서둘러 증명하였다.

《왜 웃습니까. 내 말이 허풍같아서요? 몰라서 그러는데 난 피아노를 칠줄 압니다. 반주쯤은 자신있고 체르니련습곡연주는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수준입니다.》

《내가 뭐라고 나한테 그걸 증명하느라고 애쓰는겁니까? 자신있으면 노래를 지어서 내놓으면 되겠는데.》

김형규는 열적은 웃음을 지으며 긍정하였다.

《하기야 그렇지요.》

한무리의 청년남녀들이 자전거를 타고 형규네들을 지나친다. 열간압연직장사람들이였다. 그들중 애어린 처녀 하나가 뒤돌아다보며 《신정선생님!- 강좌장선생님, 오늘점심은 2강철직장에서 영양제식당을 통채로 우리 직장에 내놔줘서 식사는 거기서 한답니다. 빨리 오십시오.》라고 소리친다.

《숙소에 가 우리 동무들에게두 좀 알려주-》

김형규는 손나팔로 소리치고나서 혼자 중얼거리였다.

《맨날 더부살이 한다구 시뚝해하더니 큰 선심을 쓰는구만.》

《우리와 열간압연직장성원들을 최우대하는거야 기업소적인 일인데 2강철이라고 례외가 되겠습니까.

참 강좌장선생, 3차련동시험까지 잘 치르었는데 시험은 언제쯤 예견하고있습니까?》

김형규는 대답이 궁하여 괜한 헛기침을 깇었다. 비록 완전무결하게 준비를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이번시험이 모두가 바라는대로 된다고 누가 함부로 장담할수 있겠는가. 그래서 형구는 정철이처럼 신정을 예측할수 없는 이 마지막시험에 참가시키지 않기로 결심하였던것이다.

《공연소감 마저 나누어야지 흥이 깨지는구만요.》

그는 입에서 주먹을 떼며 딴전을 부리였다.

《하긴 그 화제도 막물이 졌지. 음- 무슨 얘기를 하다가 끊어졌댔던가. 오! 그렇지. 신정선생, 아까 한 말 계속인데 중학시절에 내 꿈이 무엇이였댔는지 압니까? 음악이였습니다.》

말머리가 돌아가는 바람에 의아해하던 신정이였으나 끌려들지 않을수 없었다. 처녀도 박사원생들에게서 김형규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고 어릴적 꿈이 음악이였다는 말을 들어 알고있어 호기심을 품고있었던것이다. 하여 그는 알고싶었던 문제를 잠간 뒤로 미루고 들어보기로 하였다.

《글쎄 동주동무랑 철민이들이 얘기해줘서 더러 압니다. 음악가가 될 꿈을 지니고있었다더군요.》

《맞습니다. 그래 금성중학교를 다녔고 졸업후에는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 작곡학부를 지망했댔습니다. 유명한 작곡가가 되는것이 소원이였지요.》

《한데 무슨 연고로 판판 다른 부문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였습니까?》

《좀 창피한 얘기인데.》

김형규는 한손으로 뒤더수기를 긁다가 시원스레 뇌이였다.

《에라, 모르겠다. 신정선생한테야 말 못할거 없지. 말해줍시다. 거 뭐라고 할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난 불가능생이였습니다.》

《?》

《욕망만 앞섰다고 할가. 작곡가가 되자면 우선 피아노를 잘 다루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손가락이 길어야 합니다. 조건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제 손가락을 보십시오, 얼마나 평범합니까.》

신정은 그의 손을 피끗 보고는 시까슬렀다.

《진짜 그렇군요. 그렇다고 해서 락심할거야 있겠습니까. 외국의 어느한 음악가는 피아노를 다룰줄은 몰랐지만 세계적인 가극음악작곡가로 명성을 떨치지 않았습니까?》

《아아, 세계까지는 가지 말구 내 말을 다 들어보십시오. 여기에 청음감각이 완전히 망태기란 말입니다. 졸업학년때 내가 작곡한 작품을 음악무용대학의 한 교수에게 보인적이 있는데 그가 뭐라고 평한줄 압니까?

한 반시간 들여다봅디다, 이따금 피아노로 연주해보기도 하고. 그러더니 돌아서오. 청음을 한번 해봅시다.라고 하더군요. 10분 아니, 몇분만에 빵짱이 났습니다. 3화음계통에서 파생되는 화음에 들어가서는 아예 엉터리로 대답했거던요.

피아노뚜껑을 닫은 교수는 그우에 팔굽을 얹더니 볼에 주먹을 대고서는 한참이나 앉아있더군요. 그러다가 지시손가락을 세워들며 나는 지금 격분을 겨우 가라앉혔소. 음악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내 하두 친구가 동무를 춰올리며 봐달라고 간청해왔기때문에 그 사람 얼굴을 봐서 꾸중은 안하겠소만 들어두오. 슬프겠지만 말이요.

학생, 꿈을 깨시오. 손가락길이는 대단히 평범하고 귀는 아주 무식하오. 게다가 모방재간은 혐오스러울 정도로 유치하오. 학생이 가야 할 길은

신정은 그만에야 참지 못하고 입에 손을 가져가며 웃음을 터뜨리였다.

김형규는 벌씬거리며 처녀의 웃음이 잦기를 기다렸다가 신랄한 말투로 계속 이었다.

학생이 갈 길은 음악이 아니요. 가시오. 내 말을 그 사람에게 그대로 전하시오. 그리고 내 다시 그 사람하구 대상하지 않겠단다고 이르시오.〉 하 이러더란 말입니다. 리유는 이게 답니다. 김형규는 이런 쓴 체험을 한 뒤끝에야 마침내 자기를 알아차리고 길을 돌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젠 리해가 됩니까?》

《고명한 그 교수선생이 중학생에게 정말 그런 식으로 수준없이 말했을가요. 온통 모순투성이여서 어느것이 진짜인지 모르겠군요. 하여간 재미는 있습니다.》

《재미있다니 됐습니다.》

저쪽 다리밑에서 쇠물을 실은 바가지차량을 단 소형증기기관차가 나타났다. 3호용광로에서 떠나오는 기관차였다. 소형증기기관차는 이내 꽥- 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르더니 칙폭거리며 그들앞을 지나 2강철직장의 인입선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신정선생, 내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래일 아침차로 우리 동무들이 론문을 변론하러 평양에 올라가야 합니다. 채아바이에게 부탁했으면 좋겠는데 할머니가 몸이 불편해하는것같애 그러지 않습니까.》

《준비 말입니까? 해드리지요.》

《하나 더 있는데, 어느틈에 꼭 한번 한다는게 이자야 생각나는군요.》

김형규는 침목을 잘못 디디여 휘우뚱하는 처녀를 손을 잡아 부축하였다.

《축열체문제 말입니다. 내가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할 때 선생이 원칙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것에 많은 의지가 되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난 이렇게 생각했지요. 금속연구소의 도입방식에서도 참고된것이 많았는데 구형축열체라고 왜 우점이 없겠는가. 또 구형체의 우점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면 평양에서 내려왔던 일군들에게도 뭔가 할 말이 있을거라고 말입니다. 참… 생각이 짧았습니다. 앞으로도 사정보지 말고 채찍을 드십시오.》

《무슨 그런 말씀을 다. 내겐 금속연구소의 도입방식에서 우점이라면 자그마한것도 높이 쳐준 강좌장선생앞에 더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신정은 겸양을 하며 바람결에 젖혀진 자색봄가을잠바의 목깃을 여미고나서 알고싶었던 문제를 다시 파고들었다.

《시험날자는 언제로 정했습니까.》

이제는 피할수가 없었다.

《3차련동시험을 성과적으로 치르었다고 해서 준비가 다 된건 아닙니다. 더 해야 합니다.》

김형규는 신정의 의아한 시선을 피하며 낯색 하나 달리하지 않고 태연하게 뒤를 박아 곱씹었다.

《확인, 또 확인을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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